법제도의 맹점 "미국생활 적응에 힘든 시간 보냈던 그들에게 추방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생명보호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입양은 아름다운 동행의 전형입니다. 미디어펜은 입양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입양에 대해 고민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가정아이와 다를 바 없는 입양아 및 입양에 대한 그릇된 인식 바꾸기에 나서려고 합니다. 특히 친부모와 생이별 후 입양된 아이가 성장해 정체성 혼란·정신적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할지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입양아들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값진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미디어펜 연중기획-아름다운 동행]- "더불어 사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

[입양아③]시민권없어 한국으로 추방되는 미국입양아의 현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한국에서 태어난 김상필씨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8살 무렵 1983년 미국 필라델피아 한 가정에 입양됐다. 하지만 김씨는 2차례 파양 끝에 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2012년 결국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된 그는 지인이 전무했고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그는 알콜 및 약물 남용 등 정신질환과 양극성 장애에 시달렸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약물중독으로 여러번 경찰서를 오갔던 김씨는 한국에 온지 5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십년 미국에서 살아왔지만 시민권을 받지 못해 쫓겨나는 미국 한인 입양아들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위 이야기는 최근 미국 언론이 소개한 실제 사례다.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중앙입양원의 헬렌 고 수석상담사는 이에 대해 "미국생활 적응에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들에게 추방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관건은 미국의 관련법조항이 개정되지 않은 가운데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국제 미아로 전락한 이들을 실제로 도울 '입양송출국' 한국의 법제도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58∼2012년간 아동 11만여명을 '입양 후 시민권 취득절차'를 따로 밟아야 하는 IR4 비자로 미국에 입양 보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까지 미 시민권 취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중 17%인 1만942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앞서 나온 김상필씨도 같은 경우다.

미 정부는 이같은 불이익을 받은 입양아를 3만50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인 사회는 이중 60%에 달하는 2만1000여명이 한인 입양아라고 보고 있다.

   
▲ 사진은 새로운 양부모를 만나기 전까지 위탁가정에서 돌봄을 받고 있는 입양대기아동./사진=홀트아동복지회 제공


뒤늦게 우리 정부는 2013년 중반부터 시민권을 자동으로 취득하는 IR3 비자를 받게 했으나, 앞서 55년간은 국적 취득에 대한 확인이나 보장 없이 입양 보냈고 그 진행은 홀트아동복지회와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등 4대 입양기관이 도맡아했다.

미 정부는 2001년 2월부터 'CCA2000(Child Citizenship Act of 2000)' 법안을 시행해 미 국적자의 18세 미만 자녀(부모 중 한 명만 미 국적자라도 성립)가 영주권을 소유한 상태로 부모 슬하에 있는 경우 시민권을 부여했으나, 2001년 2월 당시 18세 이상(1983년 2월 이전 출생) 입양아들에게는 소급적용하지 않았다.

2015년 미 하원은 이를 보완하고자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중인 모든 입양아들에게 미 국적자에게 입양된 경우 시민권을 보장하는 '입양아동시민권법(ACA: Adoptee Citizenship Act)'을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그간 입양했던 양부모가 직접 신청해야 했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해 시민권 신청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성인이 되어 직접 시민권을 얻는 것도 범죄기록이 있다면 쉽지 않다.

미 정부가 강제추방하면서 입양아 출신이라는 것을 한국에 알리지 않았고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장난감총으로 은행을 털려다 잡히거나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입양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한인 입양아들의 이러한 실정에 대해 2012년 인지했다.

   
▲ 미국에서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해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한인 입양아들은 2만여명에 달한다./사진=홀트아동복지회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제공


그간 해외입양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던 정부는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을 계기로 입양아 추방에 대한 대책으로 입양아 미국 시민권 취득에 대한 전수조사를 첫 실시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출신 입양자인 조이 알레시는 "어떤 선택도 못하고 입양됐지만 미국 정부가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전했고, 8년 전 한국으로 추방된 애덤 크래프서는 "한국은 수십 년 전 미국시민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며 입양보내놓고 미국의 입양아 강제추방에 맞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은 서울대 로스쿨 박사는 "미 정부가 한국의 입양절차가 취약한 것을 알면서도 한인 입양아 입국을 허용해왔고 이에 대해 충분한 아동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세계 최대의 입양송출국과 수령국인 한미 양국이 헤이그협약 등 국제규범을 회피해 이들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동인권 침해의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외교부와 복지부에 따르면, 외교부는 작년 11월부터 추방 한인들을 대상으로 입양인 여부를 확인해왔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미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ACA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미국 입양의 경우 국적은 연방정부 소관이며 입양은 각 주별 소관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미국에서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해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한인 입양아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미 의회 입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