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월·목요일 주 2회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아버지의 비밀 2

"박 형, 이거 얼마만이야, 대포 한잔 해야지."

포목점 오 사장은 한 달 만에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를 보자마자,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가게 문을 열고 달려 나왔다.

오 사장은 아버지와 동갑내기 술친구인데, 요즘 세월이 좋은지 배가 유난히 불룩해졌고 통통한 얼굴에 기름기도 잘잘 흘렀다. 요즘 그가 돈깨나 만지고 있다는 시장 사람들의 말이 허언은 아닌 듯  싶었다.

아버지와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서로 사는 처지도 하는 일도 달랐지만 동향인데다 아버지가 당시로는 배운 것이 많은 인텔리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 오 사장은 아버지와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아무튼 달포  만에 보는 친구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사장, 오늘은 좀......."

아버지는 그를 보고 반색을 했지만, 장을 보고나서는 지체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의식한 탓에 그가 잡은 손을 슬그머니 흔들어 뺐다.

"왜 무슨 일이 있어?"
"일은 무슨......"
"보아하니 장도 다 본 것 같은데......" 
"허허, 다음에 하지......"

아버지가 손사래를 차는데도 오 사장은 끝내 아버지의 손을 풀어주지 않고 기어코 대폿집으로 잡아끌었다.

대폿집의 요란한 주모가 눈웃음을 치며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금방 탁자 위엔 먹음직스런 술상이 차려졌다. 금방 삶아냈는지 순대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잔을 비우던 아버지의 술잔이 비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고, 말도 좀 많아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술을 즐기는 모습을 오래도록 곁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취기가 오르고 있다는 것을 대충 알았다. 이 때문에 걱정이 되어 조비심이 났고 인절미보다 더 쫄깃한 그 찰진 순대 맛이 뚝 떨어졌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툼을 하게 되는 일이 벌이지지나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나는 젓가락 장난을 치면서 먹는 둥 마는 둥 순대만 깨작거리다가, 두 사람의 긴 술자리에 지쳐서 그만 길게 늘어지는 하품을 연신 쏟아냈다. 얼굴이 홍시가 된 오 사장이 날 보고 피식 웃었다.  

"이 녀석 무척 지루한 모앙이네, 야,  경호야, 요 길 앞에 나가면 솜사탕 장수가 있을 거야, 나가서 사 먹고 와!"

아버지도 내게 미안했던지 홍조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라 했다. 아버지와 오 사장의 술자리가 자꾸만 길어지는 게 목구멍에 가시 걸린 듯 마음에 딱 걸렸지만, 솜사탕이라는 말에 그만 정신을 잠깐 놓쳐버렸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내 머릿속에서 스멀거리던  여러 걱정들이 한순간에 하늘로 증발하듯 다 사라졌다.

솜사탕 만드는 기계가 얼마 전에 상계동 일대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맛을 본 사람들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난리였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장터는 인사인해다. 발에 치이는 게 사람이고 눈에 잡히는 게  산같이 쌓인 물건들이지만, 나는 다른 것들에는 어떤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아홉 살 소년인 나의 눈앞에는 꽃같이 피어난 하얀 솜사탕만이 아른거렸다. 나는 호주머니에 든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지금까지 네 번이나 그냥 모른 척 하고 스쳐 지나쳤던 솜사탕 기계를 향해 달려갔고, 삥 둘러선 사람들 틈새를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비집고 들어갔다.

털모자를 푹 눌러쓴 털보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나를 보고는 귀엽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그가 이 솜사탕기계의 주인인 것이다. 나는 솜사탕을 동화 속의 백설 공주 같은 이미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탓에 솜사탕 장수 털보의 모습은 솜사탕과는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튼 그가 숟가락으로 한 스푼 설탕을 떠 기계에다 부었다. 그리고는 발판을 밟으니 물레로 누에고치 실을 뽑듯 기계 안에서 백옥 같은 설탕 실이 술술 풀려나와 실패에 감기듯 둘둘 말리면서 내 머리통만한 솜사탕을 금방 만들어 냈다.

'하아, 신기하다!'

나는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껌뻑이며 그저 무언의 감탄사만 연발했다. 솜사탕 만드는 장면은 한편의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솜사탕 기계는 내가 좋아하는 쌀 튀밥 기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튀밥 기계는 열을 가해 쌀을 부풀려 튀기는 기계적인 단순한 뻥 튀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눈에 솜사탕은 설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털보의 솜사탕은 만들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솜사탕을 베어 문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행복해 보였다. 이 엄동설한에 예쁜 웃음꽃이 모두의 얼굴에 환히 피어있었다. 그 가운데는 손자와 같이 나온 할미꽃도 있었고 아기 똥 풀 같은 애기 꽃도 있었다. 덩달아 내 가슴에도 꽃이 피는 것 같았다.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괜히 기분이 좋아졌고, 쓸개 빠진 사람처럼 나도 헤벌쭉 웃고 있었다.

내 눈길이 내 또래 여자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방울 달린 털모자에 털신까지 신은 얼굴이 백설기 같이 하얀 여자 아이였다. 붉은 벨벳의 투피스에다 털 코트를 걸친 아이의 외모에서 눈이 부신 부티가 진동을 했다.

점프도 없이 까만 고무신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한 겨울을 나야 하는 나 같은 판자촌 아이들하고는 신분이나 처지가 다른 아이였다.

꽃 같이 한껏 예쁘게 웃고 있던 그 여자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가, 아휴, 냄새!"

그녀는 예쁜 눈을 가늘게 찢어져 곁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얼음같이 차가운 눈빛, 그녀의 눈엔 나에 대한 경멸이 빛이 그득했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외려 몹시 부끄러웠다. 얼굴도 화끈거렸다. 당혹감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찾아서 숨고 싶었다. 인파에 갇혀 피할 곳도 없었다. 이럴 때는 더 당황스럽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때는 내 아이큐와 상관없이 난 바보가 된다.

직사광선에 노출된 허수아비처럼 뻣뻣하게 서서 나는 그녀의 눈길을 그대로 다 받아내었다. 고작 내가 취할 수 있는 보신책이라곤 그녀의 눈길을 피해 머리를 숙이고는 그녀가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숨죽여 기다릴 뿐이었다.   

내 볼에는 여전히 비웃음을 띤 그녀의 눈빛이 바늘로 찌르듯 따갑게 느껴지기만 했다. 난 그녀의 눈빛이 너무 싫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이유를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애초에 신분이 달랐고, 반항을 알기 전에 굴종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늘에 사는 천사고 나는 시궁창에서 사는 지렁이 같은 존재다. 내게도 그녀가 사는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시궁창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을까? 나는 아직 그 길을 모른다. 어쩌면 그 길이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절망일 것이다.

다행히 아홉 살이란 어린 나이의 나는 절망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 만큼 성숙하지 않다. 절망을 모르니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차별적인 일과 현상을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라 생각했다.  차이와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었으므로, 난 태초에 모든 것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억압과 차별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왜 가난한가를 부모에게 물어 본 적도 없다. 내가 왜 찢어진 양말을 신고 다녀야 하는지도 물어 본적이 없다. 

난 절망도 몰랐고 모순도 몰랐고 반항도 몰랐다. 그러나 고통까지 모르지는 않았다. 내 눈으로 보고 머리에 기록된 작은 아픔들이 지금 환갑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가슴 시린 아픈  추억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잔 멸치처럼 삐쩍 마른데다 작았다. 얼굴색도 까맸다. 외모도 볼품없고 옷도 심하게 낡고 헤어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행색이 초라했다.

하지만 그녀가 날 보고 얼굴을 찡그린 것은 낡은 내 복장 때문은 아니다.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 흘렀지만 국내 섬유 사정이 좋지 않아 옷값이 비쌌다. 전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전쟁으로 파괴된 공장이 정상화되었어도 섬유 생산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옷을 사 입기보다 옷을 수선해서 입은 걸 즐겼다. 어느 곳을 가나 솜씨 좋은 아낙들이 간판을 내 건 옷 수선 가게가 동네 마다 하나씩 있었다.

내 옷도 여기 저기 손을 본 곳이 많다. 허나 남루하지는 않았다. 좋은 바느질 솜씨에다 패션 감각 까자 갖춘 어머니의 손을 탔기 때문이다.
 
그녀가 날 보고 눈살을 찌푸린 것은 오로지 내 몸에서 풍기는 냄새 탓이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의 몸에서는 다른 동네사람들에게서는 흔히 맡을 수 없는 야릇한 냄새가 은근히 났다.

구리기도 하고 누리기도 하고 비리기도 한, 다양한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진 특유한 냄새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직도 동네 인근 의정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소위 잔반을 끓인 꿀꿀이죽을 먹고 있다. 게다가 다른 데서는 좀체 보기 힘든 미국산 버터와 우유가루도 이곳엔 넘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몸에다 가만 코를 대어 보면 코끝에서 누린내가 묻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냄새를 양키 냄새라 불렀고, 이 냄새가 사람들 사이엔 이 동네의 표식이자 달동네의 또 다른 이름으로 통했다.

내 몸에서도 이 양키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참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역겨운 냄새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이 냄새를 맡고는 진저리를 치며 코를 막는다.

과잉 반응을 보이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은 우리와 자신들을 꼭 구분하려고 든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우리와 같이 힘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도 강하다. 한마디로 덜 된 인간들이고 하나 밖에 볼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많다.

아무튼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여 드는 이 시장을 사이에 두고 물과 기름같이 전혀 다른 두 세상이 마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건너편에 사는 부자 동네 사람들은 산골짜기 안쪽에 판잣집을 짓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일컬어 안골 사람이라 부르며 이들을 천시하고 경멸했고, 이들과 상대하거나 말을 섞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안골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는 한껏 굽실거리며 달려가 기꺼이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가정부가 되어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고 아이도 키워주고, 그들의 공장에서 날밤을 새우며 재봉틀도 돌리고, 돌과 모래를 한 짐씩 지고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그들에게 필요나 효용가치가 사라지면 안골 사람들은 가차 없이 그들에 의해 버려졌다. 이럴 땐 그들에게 안골 사람들은 기생충 같은 혐오스런 존재가 되거나 무엇이든 훔치는 손버릇 나쁜 기피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골 사람들은 질경이처럼 질겼다. 모진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제자리를 묵묵히 지켜 온 커다란  바위처럼 굴욕을 견디며 살아간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포도청이 된 목구멍 탓이다. 안골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자존심이나 저항이 아니다. 생존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이런 감정을 사치였다. 그들은 굴종을 택했다. 살아남기 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이 와중에도 난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내 가슴엔 그저 예쁜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그녀 때문에 상처받은 내 우울한 기분만이 어우러져 서글프게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난 바보였다. 난 증오를 몰랐다. 그녀와 나 사이에 놓인 높은 벽을 느끼며 난 돌아섰고 돌아선 내 눈에 또 다른 모습이 들어와 내 발길을 앞으로 잡아 이끌었다.

'설날 맞이 특별가 눈깔사탕 한 봉지 10원'

골판지에 삐뚤삐뚤하게 쓴 커다란 글씨, 난 이 글귀에 눈길이 붙들려서 광주리에 사탕을 수북하게 쌓아 놓은 난전 앞에 섰다.

난 호주머니에 든 10원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10원이면 솜사탕은 하나였지만, 알록달록한 알 사당 한 봉지는 족히 50알이 넘었다.

"아저씨, 알사탕 한 봉지요!"

난 조심스럽게 돈을 꺼내어 고사리 손으로 알사탕 한 봉지를 샀다. 바람 난 사람마냥 들떠 있던 솜사탕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지고 없었다. 내 가슴에 안겨 있는 알사탕 봉지를 바라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내 입가에 달 같이 환한 미소가 두둥실 떠올랐다.

난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행복으로 가득한 알사탕 봉지를 들고 누군가에게 으스대고 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던 그 어린 천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주길 바랬던 그녀였지만, 지금의 내겐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척 아쉬웠고, 의도치 않게 내 현실을 일깨워준 그녀가 한편으론 난 고맙기도 했다.

솜사탕에 눈이 멀어 하마터면 한 입에 털어 넣었을지도 모를 10원이었다. 이 10원으로 알사탕을 샀다. 이젠 집에 있는 동생들도 한동안은 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신용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