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분노의 시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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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의 아내 양순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녁 밥쌀을 앉히려 조리로 쌀을 일다 말고 앞치마를 부뚜막 위에 벗어 놓고는 손 목사가 있는 교회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가 제주도 폭동 진압을 위한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여수, 순천은 물론이고 광양·곡성·구례·벌교·고흥까지 모두 반란군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남편이 사람을 보내어 순천에 있는 아이들의 사정을 알아본다고 했는데, 아직 남편에게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반란 사건이 하루가 다 되어가자 그녀는 속이 바짝바짝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교회당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니 남편 손 목사는 강대상(주: 교회에서 목회자가 설교할 때 놓는 탁자)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에 몰입하고 있는 남편을 부를 수 없어 그녀도 남편 곁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정신이 산만해서 도무지 기도가 나오지 않았고 웬일인지 눈앞에 있는 예수님 상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머릿속을 잠자리처럼 뱅글뱅글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큰 아들 동인과 둘째 동신이 얼굴뿐이었다.

'제발 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반란군들이 기독교인들을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며 마구 처형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남편 손양원은 여수는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이름이 난 유명한 목사였다. 천지 사방 벌떼같이 몰려와 남편을 모시지 못해 사람들이 안달을 할 때는 자신의 어깨가 으쓱거려졌는데, 정작 이 난리를 만나고 보니 남편의 유명세 때문에 자식들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정말 아버지 일로 자식들에게 불똥이 튄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답도 없고 방법도 없는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남편의 유명세가 이젠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환거리가 된 것 같아서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의 유명세에 잠시 취해서 우쭐한 마음을 가졌던 것도 지금 따지고 보면 천지분간을 못하고 한 치 앞도 내다 볼 줄 모르는 얼치기의 철없는 허영심 같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 위험에 처한 두 아들을 생각하면 아주 잠깐이나마 가슴에 헛바람이 잔뜩 들었었다는 것이 순천에 있는 두 아들에게 그저 민망하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이념적인 생각이 바뀐 뒤로 큰 아들 동인은 말할 것도 없고 둘째 동신이도 신앙심이 깊어 학교에서 기독교 학생회 활동을 아주 열성적으로 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킨 좌익들의 타깃이 될 우려가 컸다.

기도 중에 아내의 기척을 느낀 손양원은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생각해 서둘러 기도를 마치고는 눈을 떴다.

그의 아내는 여수와 순천에서 좌익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좌불안석이 되어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온 종일 한 술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입안의 밥알이 꺼끌꺼끌한 게 모래알이나 다름없었지만 제비새끼처럼 올망졸망 늘어서서 부모 눈치 보는 눈이 새까만 철부지 자식들을 생각해 억지로 숟가락을 들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 근심으로 가득한 아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하룻밤 사이에 눈알이 십리는 쑥 들어가 있어 안색이 파리했다.

"집에 있지, 왜 또 나왔소?"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인데, 엄마가 되어 갖고 어찌 그냥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있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주님이 도와주실 거요."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하지만 소문이 흉흉한데 어찌 마음 편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

그의 아내 양순씨의 말 속엔 은근히 가시가 있었다. 공염불하듯 아무 실익도 없는 기도에만 의지하지 말고 가장으로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아들을 억지로 순천 중학으로 전학을 시켜 둘째 동신까지 위험에 처하게 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 다분히 있었던 것이다.  

"여보, 박 집사를 보냈으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좀 기다려 봅시다."
"새벽에 길을 떠난 양반이 아직도 소식이 없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요? 그 양반 오길 기다렸다간 숨넘어가겠어요, 차라리 내가 가서 한번 알아볼께요."
"당신, 답답한 건 알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박 집사가 얼마나 야문 사람이요?"
"......"  

그의 아내 양순씨는 남편의 말에 달리 할 말이 없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었다. 아이들의 안위를 알아보려 손양원이 순천으로 보낸 애양원의 박 집사는 순천이 고향이었다. 부모형제들이 지금도 모두 순천 시내에 살고 있는 그야말로 순천의 토박이였다. 

순천이란 곳이 오래전부터 교통 요충지로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긴 하지만 본시 땅바닥이 손바닥만 해서 한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박 집사라면 어렵지 않게 금방 아이들의 형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그를 보냈던 것이다. 그 역시 가족들의 사정을 궁금히 여긴 것도 있었다.

좌익들의 반란 때문에 여수와 순천을 오가는 교통편은 다 끊겨 있었다. 그래서 순천을 가려면 도보로 갈 수밖에 없지만, 애양원에서 순천까지 거리는 20여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멀다면 먼 거리이나 건강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하루 나절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손 양원이 보낸 박 집사는 스물네 살 한창 나이로 몸이 물 찬 제비처럼 가볍고 몸이 비호같이 날쌨다. 동 튼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길을 떠났고 지금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니 지금은 오고도 시간이 충분히 남을 시각이었다.

그런데도 박씨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어서, 갑갑한 마음에 그의 아내 양순씨가 하릴없이 남편 손목사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아내의 행동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로서는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마땅한 방도도 없어 손양원은 고삐 꿰인 송아지 마냥 아내의 손길을 따라 마을 어귀로 나갔다.

그의 아내 양순씨의 다급한 마음을 하늘도 불쌍히 여겼던지, 그들이 어스름이 짙게 내린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즈음에 양순씨의 애를 태우게 했던 박 집사가 좁다란 풀밭 길을 헤치고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니, 박 집사 아니에요?"
"아이구, 사모님, 나와 계셨네요."

온몸이 땀범벅이 된 박 집사는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자신의 몸은 살피지 않고 먼저 손 목사 부부에게 민망한 얼굴을 하고는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목사님, 지금은 도저히 순천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순천 들어가는 길을 국군들이 다 막아부러 길이 없당께요. 부모형제 땀시 내는 죽어도 꼭 들어가 봐야 헌다고 혀도, 안 된다고 허네요, 들어가면 좌익들헌티 이용만 당허고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못 들어가게 막는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는 길을 찾아 뺑글뺑글 돌았는 디 길이란 길은 다 막아 부러 도대체 지금은 방법이 없당께요, 참말 환장하것소!"

백리 길을 죽을 고생을 하고 오간 보람도 없이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박 집사는 낙담이 되었던지 펑퍼짐한 그의 납작코가 석자는 더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부모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돈에 팔촌까지 모든 일가친척들이 순천에 터를 잡고 사는  박 집사의 처지를 놓고 보면 그가 얼이 빠져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박 집사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던 터라,  양순씨는 박 집사의 말을 듣고는 실망감에 입술을 꼭 깨물고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사모님, 죄송해요."
"아니에요, 지금은 어느 누구라도 별 수가 없을 거예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양순씨는 자신을 위해 생고생을 다 한 박 집사 앞에 눈물을 보인 게 미안했던지 얼른 눈물을 훔치고는 그의 노고에 치사를 하고서는 다시 남편과 함께 예배당으로 돌아와 촛불을 켜놓고 십자가 앞에 나란히 앉았다.

온갖 상상과 생각으로 뒤범벅이 되어 어지럽게 춤을 추었던 양순씨의 머릿속은 아까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마음을 비운 탓이었다. 인간이 무력감을 절절하게 느끼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분명한 한계를 느낄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럴 때 거의 대두분의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 손양원의 아내 양순씨도 절박한 심정으로 신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 컷.

4    
 
달은 나뭇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정처 없이 흐르는 무심한 구름이 치한처럼 발버둥 치고 있는 그 놈의 몸뚱이를 확 덮쳐버린다. 그러자 그 미력한 쓸쓸한 빛마저 어디론가 허망하게 날아갔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 술에 취해서 바라보는 서글픈 하늘엔 서글픈 달이 없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사라진 달은 달이 아니라 이름 모를 영자가 안고 울었던 안고 없는 서글픈 찐빵처럼 고작 이름으로나 전설로만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누군가 술에 취해서 바라보고 있는 오늘 하늘은 참 서글프다. 아마 이런 날은 술주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이태백이도 가슴 무너지게 서글플 것이다. 아마 나도 서글프고 너도 서글프고 우리 모두가 서글플 것이다. 이런 날은 술주정을 할 수 있는 자라면 술주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서글픔이 뼛속에 오롯이 박혀 들 테니 말이다.

달이 사라진 하늘에 별이 뜬 것도 아닌데, 별들이 무슨 잔치를 벌이는지 나이트클럽의 사이키 조명처럼 알 수 없는 섬광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인데도 세상은 대낮같이 환했다. 한 손엔 총을 다른 한 손엔 횃불을 든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며 거리를 누볐고, 어떤 이들을 어깨동무를 한 채 러시아 민요 카츄사를 열창하면서 모닥불 주변을 빙글 빙글 돌며 춤을 추었고, 어떤 이들은 술에 취해 고함을 치다가 하늘에다 구멍 내기 시합이라도 하듯 방아쇠를 마구 당기기도 했다. 

전위대원들이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동인을 노리고 있다는 지인의 귀띔이 있어 동인과 동신도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달랑 등짐 하나만 챙긴 채 자취방을 나서서 방향을 동천 쪽으로 잡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늦가을이라 동천엔 갈대가 무성했고, 갈대 키는 어지간한 어른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순천에서 갈대밭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달빛도 없었다. 일단 이곳에 몸을 숨기기만 하면 길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어디로든 나갈 수가 있었다.

문제는 동천이 순천 시내의 서쪽 건너편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동천으로 가기 위해선 좌익들이 점거하고 있는 시내를 곧장 가로 질러가야만 했다. 둘은 몸을 웅크린 채 미로처럼 이어진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빠져 나와 현재 우체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층의 적산 가옥 담벼락 뒤에 숨어서 고개를 슬쩍 내밀어 거리를 살폈다.

수백 명이 넘는 청년들이 손에 든 횃불과 곳곳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어둔 밤하늘을 대낮같이 환히 밝히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가 잊을 만하면 하늘을 향해 총을 어지럽게 쏴댔다. 그 때마다 콩 볶는 소리가 천지간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인민재판을 받고 경찰서장이 처참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한 후로 동신은 거의 반 넋이 나가 있었다. 총소리가 다시 울리자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는지 동신은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형 동인의 품을 자꾸만 파고드는 것이었다.

"형, 무서워, 무서워!"
"동신아, 정신 차려!"

동인은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동생을 꼭 끌어안고는 손바닥으로 등을 도닥였다.

"동신아, 형이 있잖아, 내가 너 지켜줄게, 걱정 마!"
 
동인은 동생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려 자장가를 부르듯 같은 말을 반복해서 되뇌면서도 지신이 정말 동생을 지켜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시내에 진을 치고 있는 전위대원들이 너무 많아서, 그야말로 물샐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려 있던 동신이 바지에 오줌을 질기더니, 울음 섞인 목소리로 동인에게 읍소를 했다.

"형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더는 못하겠어, 그만 돌아가자, 형!"

성격이 밝고 누구보다 활달했던 동신은 경찰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위대원들의 잔인한 행동에 완전히 기가 꺾여있었다. 순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도 부족할 판인데,  동신이 얼이 빠져 있어 이 상태로는 순천을 빠져나가는 것이 무리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동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생을 도닥이면서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폈다. 젊은이들은 밤새 축제를 벌이며 혁명에 대한 의지를 다졌고, 그들이 격정에 휩싸여 떠들고 마시고 소리를 치는 사이에 어둠에 잠겨 있던 세상이 드디어 아슴아슴하게 그 희미한 형체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돌아가야만 했다. 첫닭 홰치는 소리에 동인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리고 있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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