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카오스-1        

출옥을 한 손양원의 향후 진로를 두고 갈등을 겪으며 잠시 우왕좌왕 했던 애양원 식구들은 그가 어느 날 애양원 문을 열고 성큼 들어서자,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복귀로 애양원은 활기를 되찾아 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애양원 바깥세상은 이념의 대립과 격돌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진흙탕처럼 세상이 매우 혼탁했다. 

학생은 학생들대로, 선생은 선생들대로, 관리는 관리들대로, 군인은 군인들대로 제각기 찢어져서 세상은 흉물스럽게 너덜거렸고, 제 편이 아니면 서로를 노려보며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념은 어제의 친구를 오늘의 적으로 만들었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념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 만능주의 세상이 온 것이다.

순천 사범에 다니고 있는 손양원의 장남 동인도 피가 한창 뜨거운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라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겨울 방학을 맞자 잠아 집에 들른 동인은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자리를 같이 한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며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냥 아버지 생각이 궁금해서요."   

동인은 어려서부터 주관이 뚜렷했고 신앙심도 여느 형제들보다 깊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념 문제에 대해 자기 아들만은 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들의 물음이 왠지 뜬금이 없이 느껴지기고 했지만, 인생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스무 살 청춘인 걸 생각하면 아들의 질문을 뜬금없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하도 세상이 어수선한 터라 자기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아들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아들에게 되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손양원은 마주하고 앉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선 좌·우익의 이념 대결로 온 나라가 갈가리 찢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고심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날 일본 유학을 갔을 때 자신도 사회주의 이념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이 탓에 사회주의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대략 알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혁명 과정을 알고 나서 그는 사회주의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자는 그들의 숭고한 뜻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신을 부정하고 증오를 부추기고 계급투쟁을 일삼는 그들의 급진적인 행태만은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득권층의 폭력도 문제지만 그들의 폭력도 폭력인 것이다.

특히나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그들의 믿음은 생각만 해도 손양원에겐 섬뜩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혁명 이후 체제에 저항한다는 이유를 들어 죽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다. 

사회주의가 아무리 이상적인 이념이라 해도, 이처럼 꼭 피를 꼭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j처럼 잔인하고 가혹한 이념은 신앙인으로서 손양원은 결코 지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 그는 잠깐 사회주의에 흥미를 가졌다가, 곧 회의론을 가지며 거리를 둔지 오래였다. 

"잘은 모르지만 사회주의 사상은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게 좋다는 거니?"
"다 같이 더불어서 잘 살자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왜 사회주의를 묻니?"
"친구들이 남로당에 가입하고 하는데 아버지 생각을 먼저 묻고 싶어서요."
"뭐!"

손양원은 아들에게 남로당 가입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넌 가입하고 싶니?"
"예"
"정말이니?"  
"예"

손양원은 난감했다. 아들의 생각이 너무 확고했기 때문이다. 손양원은 할 말을 잊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가 대구 폭동 사태를 보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가? 어떻게 이놈의 생각을 바꾸어주지!'

대구 폭동 때 죽은 사람이 수십 명 이었다. 다 인민재판의 이름으로 죽인 것이다. 인민재판이란 무엇인가? 일종의 여론 재판이다. 정의를 내세우면서 약탈과 방화는 기본이다. 작년에는 위조지폐를 유통시켜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지 않았던가. 사회정의를 외치는 이들의 모순된 행동을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사회주의에 마음이 기울고 있는 아들의 얼굴엔 당당함이 묻어났다. 이것은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고 있다는 청년으로서의 자부심과 불타는 정의감에서 나온 것이다. 아들의 덩치는 자신을 닮아 땅꼬마같이 작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어떤 청년의 눈빛보다 이들의 눈빛이 더 강렬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참으로 때 묻지 않는 맑고 순수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기저귀를 차고 애양원 사택 앞마당을 아장 아장 걷던 아들이 이젠 자신과 함께 나라 정세에 대해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한편으로 뿌듯했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아들의 관심을 생각하면 가시방식에 앉아 있는 듯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영화 '남부군' 스틸 컷.

대구 폭동이 실패한 이후 남로당은 남조선에서의 세력 확대를 위해 당원을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이 와중에 아들이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된 남로당의 선전선동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동인아, 하나 묻자, 너는 왜 남로당에 가입하고 싶니?"
"세상을 바꿀 수 있잖아요!"  

그의 아들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곧장 답을 했다. 매사 생각이 깊고 말 수가 적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동인의 재빠른 대답이 그에겐 의외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도 피가 펄펄 끓는 조선의 젊은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방법엔 꼭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란다, 사회주의 운동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단다."
"......"

아들의 얼굴엔 순간 실망의 빛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동인이 아버지에게 바란 대답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버지에게 원했던 것은 자신이 생각에 대한 아버지의 확고한 지지와 자신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었다. 

아들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동인이, 이 아버지한테 실망한 눈치네?"
"아니오."
"아니긴. 남자가 좀 솔직해야지."
"......"

아비지의 말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동인의 앳된 얼굴이 홍시처럼 붉으래졌다. 그는 철이 나면서부터 아버지 손양원을 지신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도 아버지였고, 아버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는 철석 같이 믿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아버지가 그린 삶의 궤적보다 자신에게 더 큰 감동을 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남로당에 가입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도 아버지에게 의견을 다시 구하고 나선 것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허락과 더불어 그에게 분명한 지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은근한 불만이 함께 교차하고 있는 아들의 시무룩해진 얼굴을 보니 손양원도 적잖이 마음이 쓰였다. 한 번도 자신 앞에 싫은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는 마음이 진중한 아들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옥살이를 할 적에 연필 대신 망치를 손에 들고 밤낮없이 묵묵히 일을 하며 가족을 돌본 사람이 동인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아들에게 진 마음의 큰 빚을 갖고 있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탓인지 아까보다 훨씬 복잡해 보였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당장엔 아들에게 아프겠지만 약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동인아, 밥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아무리 급한 일도 서두르면 항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아버지가 본 사회주의 혁명이 그렇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계급투쟁이란 것이 무엇이겠니? 기존의 질서를 한꺼번에 다 허물어버리자는 것이 아니겠니? 그렇게 한순간에 다 뒤집어 버리면 일이 끝나는 거니? 더 많은 문제가 생겨, 억울한 희생자가 많이 생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 그럼 눈앞에 버젓이 보이는 세상의 온갖 모순을 그대로 두고 보자는 거예요?" 
"그건 아니야, 언제 이 애비가 세상일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관심하라고 했니? 다만, 말이야,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도 말고 사람을 평가하거나 단죄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거야.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니? 몸을 팔며 살아가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누가 자신 있게 돌을 던질 수 있냐고? 주님 앞에 사람은 모두가 죄인인 거야,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천천히 가는 게 필요해, 예수님은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 하셨어, 그러니 남을 바꾸기에 앞서 먼저 내 자신을 바꾸는 게 순서라 생각해. 자기 자신의 허물은 알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겠니? 자신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이런 억지가 어디 있겠니?"

손양원은 아들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하여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읊조리듯 조용하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사회주의로 마음이 기운 아들의 귀에는 아버지의 얘기가 십 리 밖에서 흐르는 바람소리처럼 허공에서만 맴돌 뿐 그 어떤 느낌도 주지 못했다. 다만 그는 아버지의 생각이 몹시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사회주의를 아주 악질적인 나쁜 이념이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허허, 네가 너무 앞서 가는구나, 난 사회주의를 나쁜 이념이라 말한 적은 없다, 다만 사회주의자들이 보여 주었던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야. 지금까지 그 사람들은 마음이 급해 반동이니 계급투쟁이니 하며 사람을 편 가르고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추겨왔어, 아버지는 그런 점을 지적한 거야.
아무리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피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가치나 논리는 없단다. 지난 대구 폭동 때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거 너도 알고 있지? 대부분이 폭동 당시에 좌익들에 의해 임의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다. 반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죄상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란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거야, 우리가 할 일은 말이야, 우리 자신을 잘 살펴서 허물이 없는지 알아보고 있다면 우리 자신의 결점부터 하나씩 바꾸어 나가는 운동을 하는 것이란다, 더디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동인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피가 뜨거운 젊은이였다. 풋풋한 청춘의 머리로는 도저히 아버지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생전 처음으로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는 이것을 자신도 극복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세대차라 생각 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생각이 열려 있는 사람도 인습의 폐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했다.  

"그럼 아버지는 이 세상에 혁명이란 것이 필요 없다는 말씀인가요? 민중들이 가진 자들의 수탈에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어도 눈을 감고 침묵한 채 하느님의 계시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까?"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동인의 목소리가 다소 거칠어졌고, 손양원도 숫제 벽창호 같기만 한 아들과 이야기하는 게 답답한지 큰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는 구나, 동인아, 아까도 내가 말하지 않았니?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땅히 나서서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때에 따라서는 나도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기왕 혁명을 한다면 성공해야 하겠지, 그런데 대부분의 혁명이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해서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곤 했단다, 왜 그런 줄 아니?"
"......"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않고 증오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란다, 러시아 혁명 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도 그랬어, 권력을 다투고 증오에 몸부림치다 혁명의 본질이 왜곡되어버리는 것이지, 사람들이 흥분하다보면 똥오줌도 구분 못하는 바보가 된단다, 감정 이입이 되어 문제와 증오를 구분 못하고 동일 선상에 두고 본단 말이지. 이럴 때 결과가 엄청 아프게 나타나는 거야, 러시아 혁명 이후에 죽은 사람이 수백만이야, 이유가 무어겠니? 다 증오 때문이야.

지금 이 나라 사회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에게 증오를 가르친다는 거야, 누굴 미워할 근거를 들추고 이유를 자꾸만 가르쳐 주는 거지, 증오심에 가득 차서 누군가를 죽이고 힘으로 세상을 뒤집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것, 이건 악마들이나 하는 짓이지, 이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와 뭐가 다르니?"

시종 차분하기만 하던 손양원의 목소리가 열변을 토하듯  톤이 높아졌다. 아들의 생각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과 더불어 이 나라의 장래가 몹시 격정이 되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나름의 정리된 견해를 갖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손양원의 설명은 일목요연했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명쾌한 설명에 일언반구 반박도 못하고 숨만 죽이고 있다가, 발끈 성을 내어 엉뚱하게 아버지의 말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졌다.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악마의 이념이라 보시는 모양이네요, 그렇다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대체 악마라는 게 뭐에요?"
"허허, 손동인, 이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악마라고 말한 적 없다, 난 다만 악마에 대한 분명한 견해는 있다. 증오를 가르치는 것,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 불신을 조장하고 신뢰를 파괴하는 것,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난 악마라고 생각한다."
"......"

바느질을 하며 부자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의 아내가 사회주의 이념을 두고 벌어진 부자간의 설전에 귀가 따가웠던지 미간을 찌푸렸다.

"여보, 그리고 동인아 이제 그만 좀 해, 이러다 부자간에 싸움 나갰어!" 

아내의 타박에 손양원은 자신이 괜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싶어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기왕 주책을 떨었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 한다 싶어, 겸연쩍은 웃음으로 아내에 대한 사과를 대신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동인아,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더하자, 무슨 일이든 일을 할 때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혁명이란 것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혁명이 화급한 일이라 해도 이것이 훌륭한 과실을 맺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이성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단다.

내가 말하는 합리적 이성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란다, 그런데 말이다, 이 합리적인 이성은 절대 증오의 땅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단다, 이건 오직 사랑 속에서만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거란다. 지금 네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회주의는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네가 사회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신앙적으로 볼 때 지금 좌익들이 보아고 있는 행태는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잖니? 폭동을 일으키고 사람까지 죽인다, 아무리 목적이 옳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이게 악마의 소행이 아니고 뭐겠니?"
"......." 

두 사람의 논쟁은 이슥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지만, 잠을 뒤척이던 동인은 첫닭아 새벽에 홰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경우 잠이 들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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