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아홉가지 감사 1·2

1

손 목사의 지시로 동인·동신 두 형제의 시신을 순천에서 확인하고 돌아 온 박 집사를 앞세우고 손 목사와 그의 아내 양순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리며 그 뒤를 따랐고, 여남은 명의 애양원 식구들도 손 목사 부부와 함께 자식을 잃은 슬픔을 나누기 위해 걸음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하늘빛이 희끄무레한 동천 강가로 허둥지둥 몰려갔고, 강변에 안치 된 시신을 운반하기 위한 달구지도 줄을 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너나 할 것 없이 침통했다. 이들은 모두 순천에서 일어났던 반란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었다.

강변에 가까이 다가서자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임시 시신 안치소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말이 안치소였지, 강변 모래사장과 자갈밭 빈 공간 여기저기에 시신을 안치하고 낡고 오래 된 거적때기 한 장을 달랑 덮어 놓은 게 시신 안치소의 모습이었다. 사망한지 사나흘은 다 지난 탓인지 강변엔 시신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아무도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강변에 어지럽게 널린 거적때기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는지 갑자기 노파 한 사람이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그만 풀밭에 쓰러졌고, 뒤이어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한 아낙이 누런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녀의 곡소리가 하도 슬퍼 저마다의 가슴에 흐르고 있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던 사람들도 끝내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두 눈물을 훔쳤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손양원의 아내 양순씨의 커다란 눈에도 눈물이 금방 아래로 굴러 떨어질 듯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지만, 그녀는 아이들의 생사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겠다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고지를 향해 가는 전사처럼 뚜벅 뚜벅 발을 내디뎠다.

이미 박 집사가 동인·동신 두 형제의 시신을 두 눈으로 보고 사망 사실을 확인하고 온 터였지만 그녀는 엄마의 눈으로 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믿을 수 없다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가는 길에 자식들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의 발목을 분질러놓고서라도 자신의 아들들을 데려가지 못하게 꼭 막고 말 것이라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이 모든 생각이 한순간 타오르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연기처럼 다 허망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이별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양순씨로서는 이런 부질없는 부정과 의심도 한번 가슴에 품어 보지 못하고 속없는 앙탈도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그냥 자식들을 떠나보낸다면 엄마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 이렇게 스스로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는 반대로 손양원은 속은 이미 몽땅 타서 시꺼먼 숯덩이가 되어 있었지만, 검은 색 뿔테 안경에 상고머리를 한 그의 단정한 모습과 차분한 얼굴 표정이 평소와 다름이 없어 그가 자식을 둘 이나 잃은 아버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답게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긴 채 가슴 한쪽에 품은 성경 한권을 구원의 징표로 삼고 묵묵히 방죽 길을 걸어 내려서고 있었다.

그들이 강변으로 들어서자 시신을 관리 감독하고 있던 무장 군인들이 다가와, 간단하게 두 사람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는 그들을 강변 거북 형상의 바위 옆 모래톱에 나란히 누워 있는 거적때기에 덮인 두 구의 시신 앞으로 안내했다.

시신 안치소를 강변에 설치한 까닭은 폭도들이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이번 난리 통에 자신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모두 차에 싣고 동천강변 갈대 숲 속에다 유기한 것인데, 반란을 진압한 국군들이 이를 알고는 시신을 발굴하여 강변에 다시 안치한 것이었다.

비가 오려고 하는지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고 바람도 거셌다. 이 탓에 강가의 갈대들이 어느 때보다 더 요란하게 몸을 서로 비벼댔고, 망자들의 황망했던 그 순간을 헤아리듯 서걱서걱 검은 빛깔의 슬픈 울음을 조곡(弔哭)처럼 쉼 없이 토해내었다. 

그들은 거적때기를 들추어 보지 않아도 한눈에 그들이 자신의 자식들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자신들을 닮아 유난히 체구가 작았기 때문이다.

이승과의 인연을 모질게 끊어놓은 이 거적때기가 답답했던지 유난히 뭉툭한 모양새의 엄지발가락 하나가 낡은 거적때기를 삐쭉 비집고 나와 있었다. 큰아들의 엄지발가락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주검이 되어 돌아온 자식의 발가락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은 하얗게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내 똥강아지들, 내 똥강아지들, 사랑한데이, 동인아! 동신아! 사랑한데이, 아, 주여!"
       
두 사람은 총상에다 죽창으로 난도질까지 당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자식들의 시신을 가슴으로 끌어안고는 참았던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냈고, 애양원 식구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그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도록 기원했다. 

   
▲ 영화 '작은 연못' 스틸 컷.

2

동인과 동신 두 형제의 시신이 애양원으로 운구 된 직후 여수 계엄사령부에서 전보로 연락이 왔다.

'귀하의 자녀를 죽인 폭도를 체포했으니, 이젠 모든 울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장례를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순천 계엄 사령부에서 보낸 위로 전보를 받아든 양순씨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려가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고 화를 가득 머금은 사나운 얼굴을 하고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이 쳐 죽일 놈, 천벌을 받을 놈들!"
"여보,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양순씨는 손목사의 말에 벌컥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도덕군자라 어쩔지 몰라도, 난 그렇지 않아요, 정말 죽이고 싶어요, 그것도 찢어서."

양순씨의 눈에는 험한 꼴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은 자식의 모습이 선했다. 생각만 해도 살이 덜덜 떨렸고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숨이 멎은 자식들 몸에다 폭도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식들의 몸은 걸레처럼 너덜너덜 했다.

물론 순천역 앞을 지날 때 거기 산처럼 쌓여 있던 시신들과 부서진 건물들을 보고 짐작은 했었다. 죽창에 국부가 찔린 채 발가벗겨진 여인, 살이 반쯤 타다 남은 시신, 한쪽 타리가 잘려 나간 사람, 전봇대에 매달려 창자가 빨래 줄 마냥 축 늘어져 있는 시신을 본 것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양순씨는 자식들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하고는 이것은 사람의 짓이 아니라 짐승의 짓이거나 아니면 악마의 소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짐승이라면 미친 것이니 마땅히 몽둥이로 다스려야 하고, 악마는 짓이라면 신의 이름으로 이들을 응징하고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슨 사정이 있어 신이 벌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나서서라도 이들을 꼭 처단해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닭 모가지 비틀 땐 남편의 손을 꼭 빌어야 하고, 파리 한 마리 잡는 것도 겁을 먹어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던 눈물 많고 겁 많고 인정 넘치던 순박한 시골 여인이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눈물이 말라버렸다.

손양원도 아내의 울분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생때같은 자식이 둘이나 훌쩍 세상을 떠난 것이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고, 자식들이 공부를 하던 순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아버지’하고 부르면서 한달음에 달려올 것만 같았고, 이럴 때마다 후끈 달아오르는 울분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원망을 한다고 해서, 보복을 하듯 범인을 잡아 그의 행위를 철저히 벌한다고 해서, 죽은 자식이 살아서 돌아 올 가능성은 단 0.1 퍼센트도 없었다. 자신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죽은 자식의 부활이자 생환이었다. 죽었다고 믿은 자식이 문틈으로 얼굴을 삐쭉 내밀고 들어와 가슴에 와락 안기는 그런 꿈이었다.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신의 능력에 힘입어 온전히 부활했듯이 신의 특별한 배려가 있다면 죽은 자식이 살아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이런 기대를 갖는 게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정말 이걸 기대한다면 죽은 소도 웃을 일이다.

그래서 손양원은 의미 없는 미련에 분명한 이별을 고하며 아픔을 곱씹고는 손을 훌훌 털어버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가슴에 원망을 품고 있었다. 그의 아내 양순씨가 그랬다. 사람이 가슴에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품는다는 것은 아직도 이런 어리석은 기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말했다. 

아무튼 순박하고 믿음이 깊은 아내의 입에서 막말에 가까운 거친 언사가 거침없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목사 손양원으로서는 귀에 거슬려서 듣기가 몹시 불편했고 한 여자의 남편이란 입장에서는 교양 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무지렁이 아낙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처절한 울분에 마음이 더 없이 아팠다. 

"여보, 나도 당신 마음 알아요, 난들 왜 원망이 없었겠소? 하느님을 참 많이 원망했소,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말이요. 하지만 원망한다고 바뀔 것이 무엇이겠소? 죽은 자식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당신 마음만 아플 뿐이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만은 이런 부질없는 짓은 관둡시다."

"당신은 어찌 남의 집 애기 하듯 그리 태평스럽게 말을 하고 있어요? 그 아이들이 누구  자식입니까? 나 혼자 낳았습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 속 좋은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당신이 그리 말을 하고 있으니 난 더 천불이 납니다."

남편 손양원을 쏘아보는 양순씨의 고리눈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그득했다. 그녀는 남편이 전하는 말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강한 신앙인이기 이전에 자신도 슬플 때는 울 줄도 알고 울분을 느낄 때는 화를 낼 줄도 아는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자식을 억울하게 잃고도 남편의 질책 때문에 그 슬픔조차 맘껏 토해 낼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그녀는 남편을 흘겨보며 비웃듯이 몰아붙였다.  

"잘난 당신이 정말 참된 신앙인이라면 나를 못난 년이라고 욕만 할 게 아니라 자식 잃고도 원망을 가슴에 품지 않아도 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한두 가지라도 내게 얘기 좀 해 봐요, 그럼 내가 당신 업고 다닐게요."
"여보!"   

그녀는 남편을 몰아세우다 기어코 감정에 복받쳐 방바닥을 짚고는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먹였고, 그녀의 슬픔에 전염이 된 탓인지 관사 뒷마당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대나무들도 함께 울면서 그녀와 슬픔을 같이 나누고 있었다.  

"지금은 정말 죽고 싶어요, 나도 내 마음을 어찌 할 수가 없어요, 더 이상 미워하지 말자고 하다가도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더 바뀝니다. 그러니 나도 미치겠어요, 난들 당신처럼 품 나고 품위 있게 남들 앞에 처신하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내가 못나서 그런지 몰라도 억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잘났으면, 나 같은 년도 당신처럼 품위 있게 그렇게 한번 만들어 봐요!"

양순씨는 자신의 애끓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앙인의 자세만 강조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남편을 타박하다가 무심코 이 같은 말을 불쑥 내뱉었으나,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내고 나니 불현듯 정말 자식을 잃고도 자신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고, 남편 손목사도 그녀의 말을 자신의 아둔한 정신을 일깨운 매서운 죽비처럼 느끼며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손 양원은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나서 반색을 하고는 눈가에 울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보, 당신 말이 참으로 옳소, 당신 말이 옳아요!"
"뭐가 옳다는 거예요?"

양순씨는 뜬금없는 남편의 들뜬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당신 때문에 주님이 우리 아이들을 일찍 데려간 뜻을 이제야 알겠소, 그 뜻을 이제야 알았단 말이요, 고맙소, 여보!"

아내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손양원은 모든 일을 아내에게 다 맡겨두고는 만사 제쳐놓고 그길로 짐을 챙겨 순천으로 곧장 달려갔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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