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귀천 7·8

7

여수가 인민군 수중에 떨어진지 한 달하고 보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식량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애양원 간부들이 회의실에 모두 모였으나 이를 타개할 마땅한 묘안이 없어 팔짱을 낀 채 서로의 얼굴만 살필 뿐 말이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최 장로가 답답한지 서너 가닥 남은 눈썹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고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아, 모두 꿀 먹은 벙어리마냥 가만있지 말고 말 좀 혀봐, 잉,  이러다 우리 모두 굶어 죽을 판인디, 우찌 입만 닫고 앉았능가?"
"인민 위원회를 구성혀야 곡식을 준다는디 우리한테 무신 방법이 있것소?"

최 장로가 제일 연장자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는데 자꾸만 닦달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염 권사가 짜증이 난 얼굴을 하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그럼,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면 될 것 아닌가?"
"장로님, 참말로 고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잉!"
"안 그러면 굶어죽을 판인디 시방 찬밥 더운밥 가릴 땐가?"

최 장로와 염 권사가 옥신각신하면서 감정싸움이 벌어졌고 격해진 나머지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 것처럼 분위기가 아주 험악해졌다.  이들이 평소 동기간처럼 친하게 지냈던 사림들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들의 다툼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보니 간부들 사이에도 대책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때는 차돌같이 단단하게 약속하여 하나로 통일되어 있던 의견이 상황이 바뀌다보니 이제는 중구난방 제각각으로 갈리고 있었다. 애양원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급박했다. 애양원의 식량 사정이 문제였던 것이다. 숨겨 둔 비상식량이 바닥난 게 벌써 사흘이 넘었다.
 
여수가 인민군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애양원을 관할하고 있는 율촌면에도 인민위원회가 구성이 되었고, 율촌면 인민위원회는 애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한센병 환자들을 구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회의 악성 기생충으로 여겨 기생충을 박멸하듯 이들을 모두 죽이려 했다.

하지만 주변의 이목과 반발 때문에 이들을 모두 없애겠다는 생각을 접고 대신에 예수를 믿는 이들을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개조시키겠다는 구상 하에 식량 제공을 미끼로 하여 인민위원회를 애양원 내에 구성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공산당은 유물론에 입각해서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 집단이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을 믿고 있는 애양원의 식구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몹시 곤란했다.

더군다나 애양원은 식민지 시절에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양원이 담임 목사를 맡고  있는 곳이었다.

술 중독자가 술로 살고 아편 중독자가 아편으로 살 듯, 손양원은 자신을  예수 중독자로 칭하면서 예수를 위해 살다가 예수를 위해 죽겠다는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 같은 여건 때문에 애양원이 인민위원회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애양원은 자체 인민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율촌면 인민위원회는 이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애양원에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다.

공산당이 아무리 독해도 설마 사람을 굶겨죽이기야 하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에 사람들은 인민위원회가 조만간 자신들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총고에 쌓아 놓은 쌀을 내어 줄 것으로 판단했지만, 인민위원회에 대한 애양원의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숫제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신 아주 우스운 처지가 된 것이었다. 

이런 섣부른 기대로 쌀을 줄여 죽을 쑤어 먹었는데, 이젠 양식이 거덜 나 죽도 끓이지 못할 판이었다.

최장로와 염권사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우는 와중에 마침 이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확실히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뱃속에서 배꼽시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소리를 듣고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매에 장사가 없듯, 배고픔과 굶주림을 이길 영혼도 없었다. 자신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고 있는 손양원 목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주저하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 두렵고 불안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언제까지 이 고통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이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인민위원회의 단호한 태도로 보아 애양원이 측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결국 서로 엇갈렸던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굶주림이라는 현실적인 고통 앞에서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이 되어갔다. 

"우리가 인민 위원회를 구성하는 건 공산당이 좋아서가 아니여, 단지 양식 때문잉게 너무 마음 아파 하지들 말어, 알겠능가?"
 
최 장로는 이렇게 한마디를 뱉어내고는 간부회의에서 선출한 인민위원회 위원의 구성 명단을 들고는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면서도 자신만만해서 아주 호기롭게 율촌면 인민위원회를 찾아갔다. 

하지만 율촌면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뜻밖에도 식량을 요구하는 그에게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최 장로는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덜컹 했고, 성이 불기둥처럼 솟구치는 것이었다.

"아니, 이 늙은이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인민 위원회만 구성허면 쌀을 준다고 허지 않았소?"
"그렇긴 한데, 지금은 쌀을 배급할 곳들이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보고 시방 모두 굶어 뒈지란 말이요?"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어 지금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칠순을 넘긴 최 장로를 맞아 응대하고 있는 젊은 위원장의 태도는 무척 정중했지만 거부의 의사는 면도날에 베인 상처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고 분명했다. 놀란 최 장로가 공무를 핑계로 밖으로 나가려 하는 위원장 앞을 가로 막고는 굽실거리며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고, 위원장님, 이 늙은 영감탱이가 노망이 들어 그만 실수를 해부렀네요, 진심으로 사과드릴팅게 화 푸시고 한번만 기회를 주시랑께요, 안 그러면 갓난쟁이 아그들이 굶어죽게생겼당께요, 위원장님, 지발 부탁드려요, 잉!"

최 장로가 죽상이 되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통사정을 하자, 젊은 위원장은 못이기는 척하며 걸음을 멈추고는 최 장로의 귓전에다 대고 슬쩍 귀띔을 하였다. 

"손 목사 소재만 알려 주세요, 그러면 쌀을 드릴게."
"아니, 내가 손 목사님 계신 곳을 알면 벌써 알려 드렸지라, 우찌 입을 닫고 말을 안하것소, 지발 믿어주시랑께요?"

최 장로가 펄쩍 뛰면서 손 목사의 소재에 대해 시치미를 뚝 떼고 손사래를 치자, 최 장로의 경계심을 풀 요량으로 젊은 위원장이 제법 그럴싸한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했다.

"영감님, 우리가 손 목사를 찾는 건 그 양반을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양반처럼 명망이 있는 양반이 나서야 이 지역이 빨리 안정이 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 양반을 찾는 것은 오로지 손 목사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요!"

그의 말을 가만 듣고 있다 보니 최 장로는 은근히 귀가 솔깃했다. 나이가 들다보면 더러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좋게 말하면 듣는 귀가 부드러워져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융통성이 생겼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세포의 노화로 분별력을 잃어 주견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견물생심이라 했다. 손 목사에게 눈곱만치도 피해가 가지도 않고 애양원 식구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최 장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 말, 참말로 믿어도 되겠지라?"
"여부가 있나요, 제가 어르신한테 어찌 장난질을 하겠습니까? 명색이 위원장인데."
"참말, 지하고 약속한 것이요?"
"제 말 믿어도 됩니다."
"......"

별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었던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최 장로가 잠시 뜸을 들이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목사님은 사무실에 그대로 있당께요."

노인의 말에 젊은 위원장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고, 눈을 뜨겠다는 욕심에 딸을 팔아먹은 심 봉사처럼 최 장로도 자신의 판단이 어떤 불행한 결과를 낳을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쌀을 얻게 되었다는 생각에만 빠져서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 영화 '국제시장' 스틸 컷.

8

이것도 운명인지 손양원이 다시 끌려간 곳은 10년 전 자신이 처음으로 옥살이를 했던 여수 내무서 유치장이었다.

10명 정원의 유치장엔 정원의 두 배가 훨씬 넘은 스물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붙잡혀 와 있어, 유치장은 등을 대고 누울 곳도 다리를 뻗을 곳이 없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유치장은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절간처럼 조용했다. 유치장 내에서는 일절 대화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자신의 운명이나 바깥세상 일이 궁금해 눈치껏 귀엣말로 소곤거리다 걸리면 영락없이 개머리판이 날아들어 얼굴을 짓이겼다.

또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불려나가서 조사를 받고 자신의 지난  날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글을 썼는데, 간혹 해가 진 다음에도 유치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어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들이 내무서원들에게 잘 보여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한때 이들을 몹시 부러워했었는데, 알고 보니 즉결 처분을 받고 이들이 바로 처형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다.

손양원이 내무서 유치장에 수감이 된지도 열흘째 되었다. 총칼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입을 여는 순간 무자비한 폭력이 그에게 가해졌지만, 손양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죽음의 불안에 떨고 있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계속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세요, 예수를 믿으세요, 하느님은 반드시 악을 이깁니다."
"아무리 빛나는 부귀영화를 누려도 우리네 인생은 그저 한순간 사라지는 아침이슬 같이 힘없고 어리석은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영생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예수의 말을 전하는 손양원의 열정에 기가 질려서 내무서의 남로당원들도 이젠 손양원을 보고 '예수병에 단단히 걸린 미친놈'이라 욕을 하며 혀만 찰 뿐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간섭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미국 놈의 앞잡이란 명목으로 막상 손양원을 잡아들이긴 했으나, 먼지가 날리도록 탈탈 털어서 조사를 해보아도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그에게는 죄를 줄만한 마땅한 구실이 눈곱만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신병처리를 두고 내무서원들의 고민이 깊었다.

식민지 시절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살이를 했으니 항일 독립운동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해방 후에는 세상 사람들이 다 저버린 애양원으로 다시 돌아와 한센병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고 자식을 죽인 아들까지 용서를 해서 자신의 아들로 삼은 사람이니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으로 처벌을 하면 모를까 다른 것으로는 도통 죄를 줄 것이 없었다.

무작정 붙잡아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체면을 구겨가면서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를 석방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논의 끝에 그를 석방시키기 위한 명분을 얻을 목적으로 그들은 손양원의 전향을 유도하기로 하고 그를 회유하는데 나섰다.

손양원을 회유하는데 나선 이는 남로당의 선전대원으로 활약했던 김기수란 인물로,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인텔리 출신 공산주의자였다. 
 
"손 목사, 사람 사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요?"
"예수 믿는 것이요."
"그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오?"
"내겐 그렇소."
"왜 그리 생각하시오?"
"우리 인생은 그저 아침 이슬처럼 한순간에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지만,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기 때문이요."
"하하, 영생을 얻는다고요? 이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겠소?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소?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오? 생로병사야말로 이 세상의 자연스런 이치요, 그런데 이걸 거역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선생의 자유지만, 하느님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입니다, 당연히 가능한 일이지요."
"옛날에 말이요, 영생불사를 꿈꾼 이들이 많았소, 진시황도 그랬어요. 그런데 죽지 않았소? 때로 난세에 자신이 세상을 구할 구세주라며 불안에 떨고 있는 인민들을 감언이설로 현혹한 사람들이 있소, 이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시오?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요, 이런 자들을 우리는 혹세무민하는 악의 무리라 규정하고 있소, 선량한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어쩌면 손 목사도 영생이니 무어니 하는 이상한 말을 퍼뜨리다간 혹세무민하는 악의 무리로 지탄을 받아 죽음을 면치 못할 수도 있소, 그러니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요."
"나는 예수에게 중독이 된 사람이요, 그러니 예수위해 살다가 죽는 건 내게 영광스런 일이지 결코 수치스럽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오,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니 나한테 정성을 쏟는 일은 그만하는 게 나을 거요. 그리고 보아 하니 선생도 많이 배우신 분 같은데, 그 좋은 예수를 모른다니 참으로 애통하고 안타까울 뿐이오, 부디 예수 믿으시오, 그래서 천국 가시오."

김기수는 손양원과 많은 이야길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얘기가 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와 자신이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분명한 입장 차를 확인한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시간 낭비가 틀림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방향은 정해진 것이다.

모든 것은 순리를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말한 생로병사의 이치처럼 지금의 순리는 이질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은 혁명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손양원은 자신이 바란 바대로 환란의 시대에 속죄의 제물로 바쳐져 서울이 국군에 의해 수복되던 날 퇴각하던 인민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던 그 순간에 그의 아내 양순 씨가 잉태한 새로운 생명이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며 이 세상을 찾아와 그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끝>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에필로그

"주님, 아, 동인아, 동신아!" 

손양원은 천국의 문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려 자신을 맞는 예수와 그의 좌우편에 서서 환히 웃으며 이제 막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신을 반기는 두 아들을 비라보니 꿈만 같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아들이었던가.

그는 자신의 두 아들들을 차례로 껴안은 다음에 눈길을 돌려 자신이 떠나온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던 동도(東島)에서는 지금 한창 자신을 위한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장례식은 성대했다. 하늘에서 꽃가루를 뿌리기라도 한 듯 수백 장의 만장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를 놓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와 자신과의 이별에 섭섭함을 토로하며 예를 표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주는 태수였다. 다행한 것은 오늘만큼은 누구도 태수를 비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장남답게 태수는 문상객들을 정중하게 대했고, 문상객들 역시 태수에게 예의를 갖추어 가장을 잃은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흐뭇한 눈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된 이들을 바라보며 그는 빌었다.

'제발 언제나 오늘만 같기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그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것이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움과 원망이 눈 녹듯 사라져서 아이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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