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사찰단이 북한에게서 '핵실험 데이터·핵물질·사용장비 기록' 넘겨받아야 검증 가능
[미디어펜=김규태 기자]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와 관련해 우리나라 취재단이 23일 원산으로 출발한 가운데, 북한이 갱도 등 핵실험장을 폭파한 후 국제사회가 비핵화 검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 핵 폐기(dismantlement) 역사에서 특정 국가가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한 선례가 없어 폐기 방식과 그 수준에 대한 국제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서 1~6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동쪽·1차례)과 2번(북쪽·5차례) 갱도를 폭파한 후에도 탐지장비를 동원해 시료채취가 가능하다는 입장과 화강임지대로 이루어진 갱도를 수직으로 700m 이상 뚫어 시료를 얻기는 비현실적이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폭파의 여파로 갱도가 막혀도 지상에서 기폭실까지 구멍을 뚫어 핵시료를 채취하거나 향후 국제사찰단이 북측으로부터 핵실험 자료를 넘겨받아 검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에 대해 "그야말로 이론적인 방법이고 북한이 관련 데이터를 전부 넘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사찰단이 북한에게서 핵실험 데이터와 남은 핵물질, 실험 사용장비 기록 등을 모두 넘겨받아야 제대로 된 비핵화 검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1~2차 북핵 위기 당시 영변 핵시설 사찰을 주도했던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지난 14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어느 시점에 가면 과거 실험에서 사용한 핵물질의 양, 실험형태, 측정장비를 완전히 검증해야 한다"며 "실험장 폐기는 대중에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1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실험장 터널을 폭파해 폐쇄해도 실험장 정보는 남아있다"며 "나중에 국제원자력기구가 검증하면 되고 그것이 올바른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완전한 비핵화의 전제로 "북한이 핵실험장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는 동의가 필요하다"며 "핵실험에 대한 정확한 기록, 핵실험장 및 외부 관련시설 장비에 대한 보고 등 정보가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21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 들어가 핵실험에 사용된 장비, 갱도를 만드는 방법, 핵무기 제조 방법, 핵실험 역량을 확인한 다음에 폐기를 해야 한다"며 현재 북한의 폐기 행사 계획을 우려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은 지금 만들고 있거나 나중에 만들 계획인 다른 핵실험장으로 장비들을 간단히 옮길 수 있어 앞으로의 검증이 복잡해질 것"이라며 "핵시설 폐기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비핵화에 필요한 장비들이 이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모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재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용된 장비를 찾아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고문인 타리크 라우프는 21일 비영리사이트인 '애토믹 리포터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핵실험장 폐쇄를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기관인 CTBTO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은 기상 여건을 보아가며 국제취재단의 참관 하에 24~25일 중에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등 폐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핵실험장 폭파 후에 채취하는 시료와 방사선 수치, 동위원소 측정 등을 통해 북한 핵무기와 관련된 정보를 어디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사진은 상업위성 '에어버스 디펜스&스페이스'가 21일 촬영하고 38노스가 2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의 모습./사진=38노스 웹사이트(www.38north.org/2018/05/punggye052218/)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