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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음악의 약진, 클래식의 죽음 그리고 트로트 생명력
대세인 펑크·힙합·랩·R&B는 블루스가 음악 뿌리
트로트도 꿈틀대는 힘 '그루브' 존재…그래서 소중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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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9-05-09 1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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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하나 물어보자. 왜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인 사이에 흑인음악이 초강세일까? 요즘 펑크·힙합·랩·리듬앤블루스(R&B) 모두가 그 쪽이다. 그들 노래를 들어 보라. 한 음 한 음 얌전하게 부르지 않고 요란하게 목을 꺾고 흔든다. 풍부한 표현과 소울풀한 맛이 주특기인 흑인음악 창법이다.

사실 20세기 모차르트·베토벤인 비틀스·밥 딜런·엘비스 프레슬리도 흑인음악, 즉 블루스에서 출발했다. 이를테면 비틀즈의 초기 음악은 척 베리의 R&B 영향을 받았으니 블루스는 '음악의 저수지'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록의 탄생 자체가 1950년대 백인 팝음악과 블루스의 만남에서 나왔다는 게 상식 아니던가? 그런데 블루스가 뭐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팔려온 흑인들의 노동요다. 우리네 민속악의 들노래·선소리와 같다. 목을 꺾는 창법에 거친 사운드까지 완전 붕어빵이다. 그렇게 꽥꽥대는 샤우트(shout)나, 삶의 고통을 노래한 노동현장 혹은 도시빈민의 블루스가 어떻게 우리시대 대중음악의 대세가 되었을까?

클래식은 예쁜 사운드 유포니에 너무 집착

그것이야말로 20세기 최대의 문화 퓨전이자, 역설적이지만 아프리카 문화의 전 지구적 공헌이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우리만이 아니라 지구촌 대중음악은 흑인음악이 초강세라고 보면 된다. 어려우신가? 조금 낯설 뿐 알고 보면 흥미진진한 스토리인데,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이런 흑인음악의 약진은 클래식 음악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흑인음악 강세 현상은 오래 전부터 동시대 음악으로서의 생명력을 다한 채 '옛날 음악'이 되어버린 클래식, 즉 서양근대음악을 제치고 등장한 대중음악계의 가장 더욱 눈여겨볼 현상이다. 이에 비한다면 19세기 클래식은 곱고 예쁜 사운드 즉 유포니(euphony)에 너무 집착했다.

그래서 망했다. 그들은 깨끗한 바이올린 소리 등 '타일 같은' 표준화된 사운드만을 사랑한다. 창법도 거친 소리를 배제한 벨칸토(아름다운 소리)를 편애한다. 그게 진부하고 시들해졌기 때문에 대중이 떠나버린 것인데, 사실 클래식이 말하는 세련미란 훌륭한 세계이지만, 울림이 크지 못하다.

잘 해보니 근대적 에고(자아)를 담아내는 파리한 세계다. 그런 클래식과 기존의 진부해진 대중음악에 블루스의 진솔함, 거친 사운드란 새로운 세계의 등장이 분명하다. 재즈음악 백미 중의 하나인 듀크 앨링턴 밴드가 정글 사운드, 즉 악기들의 울부짖는 사운드로 성공했음을 상기해볼 일이다. 루이 암스트롱 허스키 목소리의 충격을 이렇게 설명한 사람이 있다.

"(그의) 거친 노래는 1920년대 감상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아직도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와 부르주아적 위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감히 직설적으로 자기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127쪽) 그게 이 분야의 고전적 저술 <재즈 북>의 저자 요하힘 베렌트의 족집게 발언이다.

그래서 나는 블루스를 '대중음악의 저수지'라고 나는 오래 전부더 표현해왔다. 대중음악이고, 뭐고 간에 새로운 것은 하늘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옛 음악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대세 흑인음악이 요란하게 목을 꺾고 흔드는 건 풍부한 표현과 소울풀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음악에서 생명력을 뽑아낸다.

   
▲ 전성기 시절의 비틀즈 멤버들. 이들의 초기 음악은 척 베리의 리듬앤블루스(R&B) 영향을 받았다. 밥 딜런·엘비스 프레슬리도 블루스에서 출발했다. 그러저런 이유로 블루스는 서양 대중음악의 저수지다. /사진=조우석 제공

엉덩이 들썩여지는 맛이 '그루브'

로큰롤-R&B-힙합-랩만이 전부가 아니다. 재즈를 포함해 소울-가스펠까지 몽땅 블루스와는 사촌 관계다.(요즘 교회음악 특히 CCM이 전과 다르게 조용조용하지 않고 록음악을 닮아가는 것도 이 맥락에서 따져볼 일이다.) 문제는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자세다.

서구문화에 '음악의 저수지' 블루스가 있다면, 우리문화에도 블루스도 있다. 그게 판소리·민요를 포함한 민속악이라는 게 내 판단이고, 음악적 상식에 속한다. 이런 유산을 가지고 진정한 한류에 값하는 21세기형 문화상품은 왜 못 만들까?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미술-음악-출판-음식을 포함한 한국문화 중 가장 독보적 유산으로 나는 음악 장르를 꼽는다.

그래서 이런 주문을 했는데 오늘 좀 낯선 음악담론은 트로트 얘기를 더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트로트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보다 다양한 대중음악의 실험 속에서 댄스 음악, R&B, 힙합 장르 등이 윈윈하는 바탕이 될 것이란 기대 탓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하는 배경엔 지난 글에서 암시한대로 '트로트 그루브'란 걸 믿기 때문이다. 그루브란 듣는 순간 어깨와 엉덩이가 들썩여지는 생동하는 맛이다. 그런 음악의 생명력은 유독 뉴 트로트에 다량 함유돼 있다. '대중음악의 저수지' 블루스가 록음악, R&B로 뻗어나가고, 우리 국악에서 민속악이 전통음악의 저수지 역할을 하듯 트로트에도 있다.

근대 일본이 만든 독특한 음악이 엔카인데, 그 안에 한국적 신바람을 다량 집어넣어 우리 대중음악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순전히 음악적으로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트로트 안에는 국악 민속악의 요소가 알게 모르게 녺아있고, 그게  '트로트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루브란 다른 게 아니다. 중국미술 미학의 핵심을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게 그루브인데, 블루스는 물론 우리의 민속악과 트로트에 다량 들어있다. 더 쉽게 말하자. 홍진영이 부른 노래 '사랑의 배터리',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에 왜 우린 끌리는가?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도 마찬가지다.

그건 70년대 이전 청승맞은 정통 트로트와 사뭇 다른데, 젊은 감각의 뉴 트로트라서 그렇고, 그게 동시대의 새로운 대중음악을 창출하려는 몸짓이다. 대중음악은 넘쳐나지만, 막상 담론은 드문 시대, 잠시 목소리를 냈다. 음악학 하는 분들이 가세해 한 차원 높은 얘기를 펼쳐주시길 기다린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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