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체, 불화수소 생산 가능"vs"공정에 부합하는 제품 만들기 어려워"
화관법 유예기간, 올해 말 종료…안전기준 충족시설 79개서 413개로 증가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일본이 한국을 수출 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하면서 핵심 소재의 국산화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권과 환경단체의 이중잣대 속에서는 불화수소 등 주요 소재의 국산화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내 제품 생산능력이 충분하지만, (기업들이) 일본과의 협력에 안주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은 지난 2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간 국내 대기업은 속도를 추구,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수입하는 쪽을 택했다"며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것이 일본 수출 규제의 교훈"이라고 주장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지만, 대기업이 이를 구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문제는 품질"이라며 "공정마다 불화수소의 분자 크기 및 순도가 다른데, 아직 국내 업체는 이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지는 못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국내 불산 공장을 문 닫게 하는 것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박영선 중기부 장관/사진=대한상공회의소·중소벤처기업부


2012년 2월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멕시켐과 여수광양항만공사는 광양항 서쪽 배후부지에 연간 총 13만5000톤 규모의 불산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투자유치협약(3억달러 규모)을 체결했으나, 광양시·광양시의회·전라남도·국회의원·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또한 2013년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수용액) 유출 사고로 협력사 직원 1명이 사망하자 민주당은 의혹을 밝히겠다며 국정감사에 삼성전자 사장을 출석하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며,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통과시켰다.

이같은 반발은 같은해 9월 구미에 있는 한 공장에서 가스 유출사고가 발생, 5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 당한 영향이 컸다. 문 후보도 사고 후 열흘이 지났을 때 현장을 방문, 마스크를 쓰고 인근 농가에서 말라 죽은 고추를 봤다.

공사 측은 철저한 검증과 절차에 따라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멕시켐도 안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반대가 지속되자 멕시켐은 '공장 유치를 반대하는 환경에선 투자를 진행할 수 없다'면서 투자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광양환경운동연합이라는 단체는 불산공장 부지 인근에 광양제철을 비롯한 공장이 밀집해 있고, 시내 등 인구밀집 지역과도 가까워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심각한 사태가 예상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불산은 인체에 스며들면 괴사·폐 손상·심장마비 등을 초래하는 독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구미 공장 사고는 작업자들의 평상복 차림과 창고관리 소홀 등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人災)'로 평가되고, 위험성도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이 따랐다. 공기 중으로 유출된 불산은 바람에 의해 확산되기 때문에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그 장소를 들렀다 온다고 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기침을 할 정도가 아니며, 토양에 내려 앉으면 칼슘·규산 등과 결합해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 물질로 변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화관법 및 시행규칙의 유예기간이 올해 말로 끝나는 상황에서 국산화를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펴고 있다. 2013년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에 따르면 유해물질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시설(공장)이 79개에서 413개로 네 배 이상 늘어난다.

이는 사실상 설비투자를 막는 것으로, 업계는 사업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성토했으나, '이 법을 무력화된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성남시장)의 발언 등이 겹쳐 끝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관련 산업이 육성되지 못하게 해놓고 이제와서 일본 제품 수입을 문제삼는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테스트 설비도 노후화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다음달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으로, 개정안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서명 등을 거쳐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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