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소진공 기부금 사용처 논란에 "안타깝다"
관리·감독 책임 중소벤처기업부 "우린 관여 안 한다"
임종화 교수 "도덕적 해이 심각하다…진상조사 필요"
   
▲ 지난 15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제로페이 이용자를 추첨해 미국 뉴욕행 항공권과 현지 숙박권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제로페이 홍보 배너./사진=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제로페이 이용자를 추첨해 미국행 항공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또 개최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울러 CJ ENM이 출연한 기부금으로 소진공이 항공권과 숙박권을 구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4일 소진공 제로페이팀 등에 따르면 소진공은 최근 '4차 제로페이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벤트 응모기간은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다. 1등 3명에게는 '제로페이 원정대'라는 명목 하에 미국행 항공권과 현지 숙박권이 주어진다. 소진공은 관련 자료를 통해 "지속적인 대국민 이벤트를 통해 제로페이 홍보 효과를 증대해 이미지 제고를 꾀한다"며 "체험 중심의 응모 이벤트로 제로페이 실사용자 유입을 기한다"고 설명했다.

소진공 관계자는 지난 22일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1회차부터 이번 4회차까지 동일하게 CJ ENM 측에서 보내준 기부금으로 외국행 항공권과 숙박권을 구입했다"며 "기부금 규모는 CJ ENM 측이 부담을 느낄 수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진공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중기부에도 기부금과 관련해 문의를 해봤다. 중기부 소상공인정책과의 제로페이 담당 주무관은 "항공권이나 숙박권 구입 비용은 국가 예산이 아니기 때문에 기부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기부금 규모가 알려지면 CJ ENM이 곤혹스러워 할 수 있다"고 말해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을 보였다.

중기부와 소진공이 기부금 규모 공개에 대해 난색을 보이는 가운데 미디어펜은 지난 6월 12일자 'CJ 기부금 유용해 美 뉴욕행 항공권 산 중소벤처기업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CJ ENM이 어려운 사정에 처한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소진공에 5억원을 기부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부금 문제는 전적으로 소진공과 CJ ENM 간의 일이기 때문에 중기부는 관계가 없다"며 "중기부는 사후 보고만 받을 뿐, (CJ ENM)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지시 등 (소진공의 해외 여행 이벤트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아울러 그는 "CJ ENM이 소상공인들을 위해 선의로 기부금을 내놓은 것이니 (소진공의 해외 여행 이벤트를) 좋은 차원에서 이해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외 여행 이벤트는 처음 열린 게 아니라 이번이 네번째이며, 소상공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되는 제로페이 흥행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도입된 제로페이 이용 건수는 9월 기준 384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영역에서 업무추진비나 복지포인트를 제로페이로 결제하도록 강제한 덕분에 나온 성과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민간기업의 기부금 출연 취지를 훼손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관제 스타트업인 제로페이를 밀어부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제로페이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민간 기업의 기부금을 유용한 산하기관 소진공을 비호하는 모양새다. 덧붙여 중기부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쳐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제로페이 쓰고, 뉴욕 가자!'는 이벤트 홍보 배너에는 중기부·소진공·소상공인간편결제추진사업단 로고가 나란히 박혀있어 중기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 지난 6월 제로페이 이용자를 추첨해 미국 뉴욕행 항공권과 현지 숙박권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제로페이 홍보 배너. 중소벤처기업부 로고가 해당 사업을 주관한다는 의미로 가장 앞에 위치해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CJ ENM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기부와 소진공이 4차 이벤트를 위해 미국행 항공권을 사는지도 몰랐다"며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이 이 같이 쓰여)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소진공 제로페이팀 관계자는 "당초 CJ ENM 측과 합의한 계약서 상엔 이벤트 등을 위해 기부금이 쓰일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고 해명했다.

임종화 청운대학교 교수는 "기부금 규모가 얼마나 되건 간에 용처에 대한 내역을 제시하는 건 기부처에 대한 기본 에티켓"이라며 "소진공이 그 마저 보여주지 않고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CJ ENM 기부금을 해외 여행 이벤트에 쓴 건 기부금 유용임과 동시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임 교수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소진공이 CJ ENM의 당초 기부 취지와는 다르게 기부금으로 장난질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소진공의 존립 근거가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소진공 제로페이 소관 부서가 반드시 소명하고, 관련자 문책이 있어야 한다"며 "필요 시 검찰 수사나 감사 등의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고 부연했다.

   
▲ 2018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자료=기획재정부

한편 소진공은 청렴도에서도 꼴찌를 달리는 형국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결과'에 따르면 소진공은 최근 3년 간 1~5등급 중 4 내지 5등급을 받아 부패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퇴임을 앞뒀던 김흥빈 전 이사장에게 직원 두 명이 황금열쇠를 선물한 후 인사 등 핵심 보직으로 승진하는가 하면 출장비를 부당수령하는 등의 부정행위가 있기도 했다.

이 외에도 소진공은 지난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 및 후속조치'에서 2년 연속 A~E 중 '낙제점'인 D등급을 받았다. 2년 연속 D등급이나 E등급을 받을 경우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른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