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시민단체, 사회책임투자 관련 국민연금 건드려"
"세계 주요 연기금, 경영권-주주권 균형 중시"
"공정·투명한 자본시장 풍토 상 주주활동 전개"
   
▲ 29일 14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공정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지배구조와 정책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위원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와 주주권 행사의 방향'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사진=박규빈 기자


[미디어펜=박규빈 기자]바른사회시민회의는 29일 14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공정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지배구조와 정책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위원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상철 경총 수석위원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와 주주권 행사의 방향'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그는 "본래 국민연금기금의 운용목적은 국민의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함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기업 지배구조 개편' 수단 또는 정치적 목적의 '공공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는 등의 거버넌스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과정이 연금 사회주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자본시장의 장기자본 공급' 또는 '정치‧사회적 목적 달성' 등 기금운용 과정에서의 부수적 결과 내지는 수단이 그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행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기금운용에 관한 사업을 집행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정책결정기구는 정부 부처에서 직접 운영하고, 기금운용집행기구는 국민연금공단 내 독립조직으로 운영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구조라는 평가다.

◇정치적 독립성 취약…"누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인가"

이 위원은 "국민연금 관리·운용 주체가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이다 보니 정부 정책이 개입되거나 노동계 또는 시민단체 입김으로 기금운용 기조가 흔들린다"며 "연기금의 경영중립적 투자운용 저해 및 시장 불확실성이 가중된다"고 진단했다.

또 "국민연금이 강제가입을 전제로 한 국민 노후자금이라는 생각보다는 국가 재정기금으로 인식해 정책 수단에 활용하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해왔다"며 "정치적 독립성이 취약해 누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정책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의 40%가 정부 관계자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투자‧금융 관점에서 독립적‧배타적으로 의결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금운용위원 20명 중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 당연직 정부 위원 5인, 관계 전문가 자격으로 국책연구기관장 2인 등 총 8명이 정부를 대표하거나 정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다. 이 외에도 지역 가입자 대표 중 일부는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 출신들로 채워져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시민단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불합리한 위원 구성, 그리고 대표성 논란…누구의 '스튜어드'인가?

이상철 위원은 '재정기여도' 측면에서 볼 때 현행 기금운용위원회의 대표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봤다.

정부가 매년 국민연금공단 운영비 100억원 등 일부 지원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크레딧 지원을 하긴 하지만 순수 연기금에 대한 재정기여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사실상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가입자를 대표하는 민간 위원의 경우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기여도가 약 9대 1임에도 불구하고 위원을 6명씩 동수로 위촉함으로써 가입자 전체의 의사가 왜곡 반영될 개연성이 있다"고 짚었다.

심지어 일부 지역가입자 대표의 경우 특정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에 위원 추천 권한을
부여해 해당 위원이 지역가입자의 이해관계를 중립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계 주요 연기금, 기금운용 수익성 및 안정성 추구 원칙 가져

자산규모 면에서 세계 주요 연기금으로는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 △캐나다 CPP △네덜란드 ABP △미국 CalPERS 등은 모두 '가입자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기금운용의 수익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관들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와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로 재정고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수익률 제고를 통한 기금자산 증식의 중요성 인식했고, 안정적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를 기본으로 기금운용과 그에 따른 주주활동을 추진했다는 게 이 위원의 전언이다.

이 위원은 "국내 기업들은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음에도 국민연금공단은 주주권 행사 강화에 집중한다"며 "반면 세계 주요 연기금은 경영권과 주주권의 균형을 중시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자본시장 풍토 위에서 주주활동을 전개한다"고 비교했다.

◇의사결정 거버넌스, 독립성·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공적 연기금이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 의사결정체계에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이며, 세계 주요 연기금도 이를 위해 지속적인 거버넌스 혁신을 추구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 위원은 "일본 GPIF·노르웨이 GPFG·네덜란드 ABP·캐나다 CPP 등은 모두 민간투자·금융 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구축했다"며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재정고갈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설파했다. 세계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을 주도하는 트렌드로 '책임투자원칙'이 확산되고 있으나, 세계 주요 연기금과 이해관계자 갈등이 크지 않은 것은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7월 자산규모가 700조원을 돌파했고, 국내 주식시장 점유율은 7%를 넘어서며 자본시장과 상장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책임투자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란이 가열돼 경영진·주주와의 갈등도 커지는 상황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선결적으로 확보한 후 중장기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 이 위원의 주장이다.

◇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이 위원은 "정부와 가입자 등 이해관계자 참여는 국민연금공단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공단 사무를 감시·감독하는 역할에 국한하고, 새로운 기금운용위원회는 전원민간 투자·금융 전문가로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관계자 중심의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그 결과 객관적 근거에 입각한 투자 판단보다는 여론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나 타협의 개연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 아무리 의사진행을 중립적으로 한다 하더라도 안건 선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에 있어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적 한계 존재한다고도 부연했다.

기금운용체계 개선과 관련, 이 위원은 "최고정책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집행기구인 기금운용본부와 함께 공단 내 독립된 조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면서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공단 이사장이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은 기금운용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전제로 한 주주권 행사에 대해 강조했다.

이 위원은 "국민연금은 세계 어느 공적 연기금보다 자국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막대하다"며 "주주권 행사의 구체적 방안은 자유로운 경영활동과 시장경제 원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에서 주주활동의 대상이 되는 기업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돼야 한다"

덧붙여 "기금위는 기금운용과 주주권 행사 등에 관한 원칙을 제시하고, 실제 위탁사 운용분에 한해서는 의결권 행사 등을 전면 일임함으로써 기금운용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해 3월 말 기준 총자산의 23.5%인 37조8000만엔을 자국 내 주식에 투자하는 일본 GPIF는 기금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위탁사에 넘겨 ESG에 신경 써도 자국 내 사회적 논란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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