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 14명 중 9명이 정부 측 인사…편파적"
"연기금, 정부 쌈짓돈 아냐…빈번한 경영 개입, 기업 가치 하락 초래"
   
▲ 29일 14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공정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지배구조와 정책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명예교수가 '왜곡된 국민연금 지배구조하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주주권행사, 연금사회주의 경계해야'를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사진=박규빈 기자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9일 14시 30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공정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지배구조와 정책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위원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왜곡된 국민연금 지배구조하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주주권행사, 연금사회주의 경계해야'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우선 조 교수는 "국민은 국민연금에 경영권 개입을 위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3일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정부(국민연금)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조 교수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대기업은 대한항공"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법을 거론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토록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기금을 관리·운용하라고 돼있다"며 "국민연금법 어디에도 경영 개입을 위한 의결권 행사를 명시적으로 주문한 조항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국민연금에 경영권 개입을 위임하지 않은 이상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연금의 영향력 제고를 위한 '셀프 도입'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2018년 7월 23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 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Stewardship Code)을 결정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규정한 국민연금법 제103조 1항은 기금의 운용에 관한 다음 각 호(號)의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한다. 조 교수는 "1항에서 정하고 있는 호(號)는 5개로 구성돼 있고, 딱히 어느 호에서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확하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조항이 없다"고 짚었다.

그는 "그럼에도 이는 소관부서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했으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정책 독선 그 자체이며, 국민연금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셀프 도입"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적 연기금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조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조는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가 2010년 7월에 발표한 영국 SC(The UK Stewardship Code)"라고 소개했다.

영국 내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 도입됐다. OECD 기업지배구조위원회가 글로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영국 금융회사에 부실이 누적된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주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에 따라 영국의 상장회사들은 '주인 없는 회사'처럼 경영이 이뤄졌고, 기관투자가들은 단기 이익에 집중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관했음을 짚었다.

때문에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역할과 책임을 제고하는 방안이 모색됐고 영국 정부가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스튜어드십 탄생 배경이라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나아가 조 교수는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은 금융위기 발발을 막지 못하고 일조(一助)한데 대한 기관투자자의 반성문’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민간 기관투자자들이 자율규범을 만든 것은 정부의 강력한 제재를 피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의 성격이 짙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영국 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결코 공적 연기금을 1차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며, 국내 정치권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적 연기금의 행동 규율로 오인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비판 포인트다.

조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피터 드러커가 우려했던 미국의 기업연금기금 운용펀드는 경쟁적 구도를 갖는 데 비해 한국 국민연금은 독점적으로 관리·운영되고 있다"며 "기금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는 정부는 추구하는 목표를 기금을 통해 실행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기업 오너 갑질을 응징하겠다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투자유형별로 성과가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은 ESG와 같은 '사회적 책임 투자'를 국민연금이 주도하게 되면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임계치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정치 슬로건을 내건 문재인 정권 하에서 연금 사회주의는 결코 기우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2015-2019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국내 주식 투자 추이./자료=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한편 2018년 4월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635조원으로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대 기금으로 평가된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큰 손'은 국민연금이다.

조동근 교수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의결권 행사는 재벌개혁의 관치 수단으로 변질될 여지가 크다"고 피력했다. 국민연금법 제 103조에 따른 기금운용위원회는 대표성에 중점을 둬 '정치 위원회'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당연직 위원과 직능대표가 많은 이유로 기금운용위원회는 태생적으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

2018년 10월 국민연금 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구성됐다. 국민연금 관계자에 따르면 수탁자책임위는 기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를 자문역이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것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만든 조직이다. 

이 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및 '책임투자' 관련 주요사항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조 교수는 "위원 14명 중 9명이 정부와 산하 연구기관 추천이거나 노동계 인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의결 지배구조가 이미 편파적"이라고 평했다.

조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정부가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 하도록 할 것"이라며 "지난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보듯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가 반(反)기업 정서와 결합하면 재벌개혁 등의 관치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은 갑 속에 든 칼이어야 한다"며 "공적 연기금의 집사 참칭(僭稱)은 '국민 노후자금의 정치금고화(政治金庫化)'이며, 국민연금의 본분을 망각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이와 관련, "좌파경제학자들의 일관된 반(反)기업 정서의 뿌리는 고객 돈으로 재벌체제를 공고히 했다는 것인데, 이는 '고객 돈의 재벌 사(私)금고화'라는 악마의 단어로 주조됐다"고 평가 절하했다. 덧붙여 "정부가 구태여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면 상법·회사법·공정거래법 등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어 모범지배구조를 찾거나 설계하려 하지 말고, 높은 수익성을 올리고 장수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거꾸로 벤치마킹하는 정책적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업지배구조개선이라는 명분으로 기업에게 맞지 않는 옷을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경영권 영향 목적 범위를 좁히고 5%룰 완화를 요체로 하는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민간기업 지배강화’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1월 20일 정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국무회의 의결을 공지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연금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경영개입에 해당하는 주주활동 일부를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구분을 바꿨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이사 해임 청구·위법 행위 유지청구,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 및 배당 관련 주주활동은 경영권 영향 목적이 아니라고 못박았고, '보편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일환'이라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정관 변경 역시 '경영권 영향 사항'에서 제외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 교수는 ""시행령 개정으로 기관투자자, 그중 특히 국민연금의 운신의 폭이 커진 셈이며, 국민연금의 주주제안과 의결권 행사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라며 "자본시장 발전과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금융위원회가 그 역할과 책임을 국민연금에 백지위임 내지는 전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정관변경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정관변경 시도가 수시로 일어날 것이며, 그만큼 기관투자자의 경영간섭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집중투표제를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보면, 집중투표제 도입도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게 된다"며 "우리 기업들은 포이즌 필·차등의결권 등 공정한 경영권 경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가지지 못한 채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의 적극적 경영권 개입과 투자대상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간에 체계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의 민간 기업 개입 무용론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해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 행사 결정을 내리자 한진그룹은 대응 차원에서 주주친화정책을 폈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도 "주주친화정책이 주주가치(주가)를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가치'를 올렸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견해를 내놨다. 이와 관련,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주가를 올렸다면 미래주주에게 돌아갈 몫은 없으며, 한진칼을 압박해 대한항공 주가를 끌어올렸다면, 국민연금은 주주행동주의자가 된 것과 다름 없다"며 "빈번한 경영권 개입은 오히려 투자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기업가치 하락을 불러올 여지가 있다"고 서설했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이 가지는 주주권은 재무적 중립 투자자로서 '그림자 주주권(shadow vote)'야야 한다"며 "역발상 차원에서 정부의 국민연금을 통한 민간기업 경영 개입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5%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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