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업 도약 '주식회사 포스코건설' 변경
더샵 주택브랜드 리뉴얼 통해 경쟁력↑
건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경제의 기둥이다. 건설업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마다의 성공 DNA장착한 국내 건설사들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본보에서는 건설 성공 DNA를 일깨운 주요 현장 및 사사(社史), 오너 일가 등의 스토리를 재조명해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건설사 성공DNA-⑥포스코건설(1)]역사는 짧아도, 위상은 높은 건설사

[미디어펜=유진의 기자]포스코 그룹의 계열사로 출범한 포스코건설은 대형 건설사들에 비해 주택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 도시정비사업 신규 수주 등 주택사업에 힘입어 정비사업 강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지방에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대형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위상 높은 건설사로 평가 받는다

   
▲ 거양개발과 포스코엔지니어링 합볍계약조인식./사진=포스코건설


◆포스코건설의 뿌리 거양개발…제철소 관련 공사로 세워진 건설사

포스코건설의 뿌리는 거양개발이다. 또 거양개발은 1982년 4월 설립된 ‘제철정비주식회사’에서 시작한다. 이 회사는 포항제철소의 설비 대형화 및 합리화와 21세기 꿈의 제철소를 지향하는 최신예 광양제철소의 건설에 따라 급격히 늘어나는 제철설비의 정비 업무를 신속히 지원하고, 이에 부수되는 설비 및 부품의 안정적 책임공급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포스코의 계열사로 출범했다.

제철정비 설립 이전까지 포항제철소 각 설비의 정비 업무는 분야별로 6개 업체가 담당했으나, 이를 통폐합한 것으로, 장비 및 인력 관리를 체계화해 관리의 단순화 및 효율성을 제고하고, 기술개발과 축적은 물론, 책임정비를 기하고자 했다.

1984년 6월 동양철관의 포항공장을 인수하면서 철구 영업을 개시하고, 1985년 9월 ‘제철정비철구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다. 이어 국제화를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도 주력해 1987년 1월 캐나다에 현지법인 POSMC CANADA를 설립한다. 포스코의 미국 현지 합작법인인 UPI의 설비공사 및 캐나다 HVC 파쇄기 공사, 일본의 TMP공사 등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장의 다변화를 기함으로써 제철정비는 국제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다져나갔다. 또 국내에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전무했던 난관을 극복하고 선진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의 자체 개발에도 힘써 경영의 합리화와 기술혁신, 품질향상 등을 기했다. 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제철설비의 종합정비와 철구제작, 건설, 기계제작 부문에서도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닦아 나갔다.

이후 1980년대 후반 들어 광양제철소의 가동이 본격화되면서 광양제철소 정비 업무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989년 7월 광양 정비 부문을 별도의 법인(현재의 포철플렌텍)으로 분리했다. 이는 포항과 광양으로 업무가 이원화돼 있음에 따른 업무 수행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후 제철정비철구공업주식회사는 정비를 비롯해 플랜트, 철구, 토건 등의 4개의 사업본부를 운영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1991년 5월 정비와 플랜트본부를 합쳐 포항의 정비 부문을 별도 법인화(현재의 POSMEC)시키고, 철구와 토건사업본부만으로 운영하는 건설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그 해 8월 거양개발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함으로써 건설회사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광양제철소 종합 준공을 앞두고 포스코 그룹 내의 건설 인력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찾다가 일반 건설회사의 설립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또 거양개발의 설립은 당시까지만 해도 비자금 조성과 부실공사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우리나라 건설업계에 정도경영을 실천하는 새로운 건설문화를 조성해 보자는 포스코의 의도도 담겨 있었다. 이런 목적으로 탄생한 거양개발은 1994년 12월 그 의미와 정신을 더욱 확대한 포스코건설로 다시 태어났다.

포스코건설 출범 이후에는 거양개발 매입 부지를 기반으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 IT벤처타워, 유성 프로젝트 등의 자체 개발사업을 수행했다. IT벤처타워의 부지는 1994년 11월에 매입했고, 1995년 10월까지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시공했다.

국내 최초의 도심형 콘도미니엄으로 추진됐던 대전 유성 프로젝트는 충청권 레저 수요 확대를 기대하고, 또 포스코그룹 임직원들의 복리후생 시설을 염두에 두고 수익기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사업을 계획했다. 세 차례의 투자검토위원회와 두 차례의 경영위원회를 거쳐 1995년 5월 지주 측과 사업 약정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추진에 돌입했다.

포스코 관련 건축사업으로는 포스데이타(현 포스코ICT) 사옥을 비롯해 직원임대주택인 상록타워 등이 있었다. 1995년 5월 착공해 1997년 8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준공한 포스데이타 사옥은 사옥을 겸한 데이터센터로 기능상 보안과 안전성에 역점을 뒀고, 비상재해발생 때 응급 복구를 할 수 있도록 특수 설비를 갖췄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상록타워는 포스코건설의 이름으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였다. 포스코 직원용 임대 아파트로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철골조를 이용한 주거 전용 아파트라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적 부족과 경쟁업체들의 견제로 건축사업에서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설립 초기 포스코건설은 자체 개발사업과 포스코 관련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해나가면서 후일을 도모했었다.

   
▲ 포스코건설 사명 변경 선포식./사진=포스코건설


◆전문 건설기업 도약 위해 사명 '주식회사 포스코건설' 변경 

포스코건설은 2002년 2월 사명을 포스코개발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포스코건설’로, 영문은 POSEC에서 ‘POSCO E&C’로 각각 변경했다.

포스코건설이 사명을 변경한 것은 철강 위주의 플랜트 사업 중심에서 초고층 빌딩, 주택, 대규모 SOC사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범위를 성공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진정한 건설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데 반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는 고객에게 친숙한 건설기업의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소규모 기업의 이미지와 사업 영역의 모호성을 가진 ‘개발’ 대신 대규모 기업의 이미지와 업무 영역이 넓고, 보다 진취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건설’로 변경한 것이다.

2002년 2월 28일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사명 변경을 선포하며 박득표 회장은 “건설회사의 위상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만큼 고객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사명 변경을 계기로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전 임직원이 힘을 합쳐 나가자”고 말했다. 사명 변경 선포식에서는 고객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고객헌장’과 포스코건설 직원으로서 준수해야 할 ‘행동규범’을 선포하기도 했다.

사명이 변경됨에 따라 CI도 개편했다. 포스코가 2000년 10월 민영화되고, 2001년 9월 사명 변경에 대비해 새롭게 마련한 ‘신CI’를 발표하자 포스코건설에서도 사명 변경 및 CI 개편 필요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드러내놓고 CI 작업을 실시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의 내부 검토를 거쳐 2002년 1월 26일 처음으로 사명 변경을 포함한 CI 변경 최초 보고서를 내고 본격적인 CI 작업을 거쳐, 3월 1일 심벌마크와 로고타이프, 색상규정, 시그니처 등 핵심요소 개발을 마쳤다. 이후 2002년 11월 20일까지 CI 응용항목 디자인 개발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 마련한 CI 규정에서 가장 눈여겨 볼 내용은 국내에서는 반드시 ‘포스코건설’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이었다. 즉 TV, 신문, 잡지 등에 광고 등을 게재할 때 POSCO E&C만을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2002년 3월 15일 공식적으로 사명을 변경(포항제철에서 포스코로)한 포스코의 새로운 심벌마크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포스코건설이 새로 만든 심벌마크는 포스코의 신CI를 준용한 워드형으로 제작했다. 이는 포스코와의 이미지 연계를 통해 신뢰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색상은 블루컬러를 채용함으로써 첨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2003년 10월에는 회사 설립 이후 10년 가까이 사용해오던 사가를 개정했다. 기존 사가의 음계와 곡은 수정하지 않고, 가사 중의 ‘포스코개발’을 ‘포스코건설’로 바꾸고, 후반의 합창 부분에서 성량이 풍부하고 톤이 높은 여성의 파워를 살려 아침을 여는 건설현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었다. 개정한 사가는 2003년 10월 13일부터 출퇴근 때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방송된 것을 비롯해 전국의 현장에서 활용됐다.

   
▲ 포스코건설 사명 변경 선포식./사진=포스코건설


◆주택브랜드 이미지가 곧 경쟁력…'더샵 3.0 리뉴얼'

포스코건설은 애초 포스코그룹의 제철소 관련 공사를 위해 세워진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대형건설사와 비교하면 주택사업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세계적 철강업황 부진에 따라 포스코그룹이 신규투자를 줄이면서 포스코건설의 계열사 일감도 2013년 2조 원 이상에서 2018년 3000억 원대로 급격히 줄면서 주택사업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주택사업은 건설사업 가운데 소비자와 직접적 접점이 있는 대표사업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핵심 경쟁력인 만큼 2020년에도 2019년의 기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포스코건설은 새로운 더샵에 ‘핵심에서 앞서가는(Advance in Core)’이라는 가치를 담았다. 신뢰할 수 있는 안전, 강화된 편의, 안락한 휴식, 세련된 디자인을 4대 지향가치로 삼고 이에 충실하고자 했다.  

포스코건설은 2019년 도시정비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신규수주를 2조 원 이상 올리고 주택분양도 2만 가구 이상 이루면서 수주와 공급 모두 10대 건설사 가운데 상위권에 올랐다.

포스코건설은 올해 1월 자사 아파트 브랜드 ‘더샵’을 새단장했다. 더샵을 출시한지 2번째이자 11년 만의 리뉴얼이다. 이른바 ‘더샵 3.0’이다.

고객들이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변화는 로고와 심볼, ‘단지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건설은 단지 명칭을 불일 때 ‘지역명’을 맨 앞에 배정해 왔다. 하지만 이번 리뉴얼부터는 ‘더샵’이 단지명 맨 앞에 위치한다. 12월부터 분양에 들어간,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더샵 파크프레스티지’가 대표 사례다.

포스코건설은 리뉴얼 콘셉트와 관련돼 ‘Advance in Core’라는 표현을 썼다. '핵심가치의 진화'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이 표현은 △신뢰할 수 있는 안전 △강화된 편의 △안락한 휴식 △세련된 디자인 등 주택 브랜드 '더샾'이 추구하는 4가지 기본 전략을 담았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건설이 구체적인 지향가치를 공개한 만큼 안전과 편의성, 디자인과 설계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신기술이나 새로운 공법을 채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더샵 심벌(#)은 가로획과 세로획이 교차하는 구조를 형상화해 강인함과 견고함을 강조했고, 영어 대문자와 소문자를 혼용했던 로고(The Sharp)는 모두 대문자(THE SHARP)로 통일했다. 색상은 블루 바이올렛(Blue Violet)에서,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로 바꿨다. 프러시안 블루는 철의 화학반응에서 볼 수 있는 색상으로 무게감과 고급스러움이 특징이다.
[미디어펜=유진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