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화물 수요 늘어 대한항공·진에어 여객기→화물기 전용 결정
백신 개발 완료 시 긴급 운송 요해 항공화물 수요 증가 전망
"코로나 이후 항공사 절반 사라질 것…위상 더욱 강화 예상"
   
▲ 대한항공 카고기 노즈도어 아래에서 지상조업사 관계자가 하역 작업하는 모습./사진=한진그룹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코로나19로 국내 항공업계가 실적 부진을 넘어 시장 재편까지 점쳐지는 가운데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들이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내선을 필두로 여객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으나 여전히 평시 대비 5% 남짓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진그룹은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 경영 전략을 바꿨다. 여객사업 대신 항공화물을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기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대한항공은 2분기 영업이익 1485억원·당기순이익 1624억원 흑자를 기록하는 등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반도체·코로나19 진단키트·의약품·방호복 등 긴급함을 요하는 특성을 지닌 화물이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 지상조업사 한국공항 직원들이 기내 좌석에 짐을 실은 모습과 좌석 탈거 작업을 진행 중인 대한항공 정비본부 직원들./사진=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


항공화물 운임이 초강세를 나타낸 것도 한 몫 했다. 실제 5월 아시아발 미주·유럽 화물운임은 각각 톤당 7.8달러, 5.96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0%, 129% 올랐다. 운임 증가율은 5월을 고점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7월부터 또 반등하고 있다. 운임 급등 탓에 저항감을 느낀 일반 화주들이 3분기에 물량을 풀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이와 같은 실적 호조세에 힘 입어 여객기 B777-300ER 2대의 좌석을 탈거해 지난 8일부터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노선 화물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미국 내 의류·유통기업의 물류센터가 집중돼있는 곳으로 새로운 화물 거점으로 평가된다.

   
▲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생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이 외에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여의도 증권가는 백신 개발이 완료되면 B747-F와 같은 점보 수송기 8400여대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본격적인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이뤄지면 올 4분기 또는 내년 1분기 항공화물 수요가 3.3%~6.6% 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특히나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임상 3상에 돌입한 아스트라제네카와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했고 대한항공은 IATA 의약품 항공운송 품질 인증(CEIV Pharma)을 받은 상태다. 따라서 대한항공 실적은 당분간 '맑음'이라는 전망이다.

   
▲ 진에어 B777-200ER 여객기./사진=진에어


자매회사 진에어 역시 항공화물 운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진에어는 지난 3월 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유일하게 보유 중인 중대형 여객기 B777-200ER 하부 전체를 화물칸으로 활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진에어 측은 "인천-타이베이 노선에 투입해 원단·의류·전기전자 부품류 등을 수송한다"고 했다.

항공업황이 점점 나빠지자 진에어도 수익원 확보 차원에서 B777-200ER 1대를 화물 전용기로 운용하기로 하며 좌석 탈거를 결정했다. 해당 항공기는 우선 이번 추석 연휴까지 여객 운송에 투입되고 항공 주무부처 국토교통부와 항공기 제작사 보잉 승인·감독을 받아 개조 후 화물운송에 투입된다.

아울러 대한항공에는 정부 당국이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한 구제금융을 지원했고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도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진에어에도 한진칼이 유상증자를 단행해 두 항공사 현금 흐름이 좋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시각이다.

   
▲ 아시아나항공 카운터./사진=연합뉴스


한편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인수·합병(M&A)가 모두 엎어졌다. 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 나머지 LCC는 운항 노선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으나 과거보다 못해 미래가 흐려지고 있다. 이는 곧 국내 항공업계에서 적수들이 사라져 대한항공·진에어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공고해질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부터 유동성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금호산업이 매물로 내놨을 시점부터 아시아나항공은 이윤 창출을 못하는 부실기업이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 의사를 밝히며 저울질을 했으나 결국 발을 빼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을 떠안게 됐다는 평이다.

아시아나항공도 항공화물운송으로 올해 2분기 흑자를 내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오히려 적자 폭은 더욱 커져가는 실정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서울은 완전 자본잠식상태로 청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 서울 강서구 방화동 이스타항공 간판./사진=미디어펜 산업부 박규빈 기자

이스타항공도 제주항공의 인수 의사 철회로 표류하고 있다. 당초 1680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정리 해고로 인해 590명으로 줄었다. 사측은 인수 의향을 나타낸 기업·사모펀드들이 자구책을 시행해오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6대의 여객기로 사업을 이어나갈 방침을 내비쳤다.

따라서 인수자가 누가 됐건 간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고 향후 업황이 다시 좋아진다 하더라도 두 회사는 이전과 같은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리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현재 운항증명(AOC)이 발급된 국내 항공사는 총 9개다. 외국 대비 항공사 수가 과다해 업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만큼 이참에 항공업계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은·수은 등 국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채권 상당분을 보유한 만큼 회사 통합을 포함한 업계 빅딜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대한민국 국적 항공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