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야당측 거부권 없애는 법 개정 강행할듯…'원하는 후보 앉히겠다'는 복안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고위공직자의 부패범죄 외에도 직권남용 등 공직 전반에 관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초대 수장 후보를 뽑는 추천위원회가 지난 18일 2차 심사 만에 활동을 종료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에 한차례 더 열린다.

오는 25일 공수처장 추천위가 재소집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상황은 심상치 않게 굴러가고 있다. 여당이 야당측 추천위원 2명의 거부권을 없애버리는 내용의 모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25일 추천위가 열려 예비후보 10명에 대해 3차 심사를 한다고 해도 결론나지 않을 경우, 여당은 즉각 개정안 처리를 강행할 전망이다. 실제로 여당은 25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

의석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고 있어 슈퍼여당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2차 심사에서 3차 심사 등 회의를 이어가자고 밝힌 야당측 추천위원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추가 회의를 잡지 않은 채 종결했다.

여당은 향후 공수처장 추천위 재소집과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 및 법원행정처에서 내놓은 추천 후보라면 '수용 가능하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종 후보 2인이 누가 되든,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변함 없다. 현행법상 말이다.

   
▲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위촉식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철 연세대 로스쿨 교수,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박병석 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정혁 변호사, 박경준 변호사, 이헌 변호사./사진=연합뉴스
법조계는 여당이 개정안 처리라는 칼을 들고 야당측을 겁박하는 모양새라고 보았다.

익명을 요구한 지검장 출신의 한 법조인은 24일 본지 취재에 "여당이 자꾸 야당측이 거부권을 남용한다 어쩐다 하는데 거부권은 2인 이상이 기준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나 쥘 수 있는 것"이라며 "모법을 만들 때부터 야당에게 거부권을 보장한다면서 그 기준을 2인 이상으로 정한게 사실인데 이를 추가 법 개정을 통해 바꾸겠다는건 사실상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나 중국이나 모두 다 법은 있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법 제도가 한 사람, 한 정당을 위해 존재하고 기능한다"며 "투표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대의민주제가 훼손되고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독재체제인데 지금 한국 모습과 다를게 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국회 과반수면 무엇이든 어떻게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그것은 야당 겁박을 떠나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든 다음 총선에서 제 1당이 바뀌든 민주당의 천하가 언제까지 갈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공수처장 임기는 3년으로 보장되어 있고, 공수처 수사검사를 임용하는 공수처 인사위원장도 맡는다. 정치권과 관료 고위직 전부를 견제할 정도로 전권을 휘두르는 자리다.

이에 따라 다른 무엇보다 독립성·정치적 중립성·형사사법 역량이 공수처장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히는데, 여당은 이 자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로 앉히겠다는 복안이다.

여당은 올해 내 공수처를 출범해야 한다면서 이달 추천 절차가 끝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공수처장이 단 2~3차례 심사 끝에 속전속결로 정해야 하는 자리인지 의문이다.

25일 추천위가 3차 심사를 갖더라도 그 결과를 무시하고 여당이 법 개정을 통해 야당측 거부권을 무력화할지 주목된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독재의 길'이 목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