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식구 봐주기식 수사 '근절' vs 판검사, 공수처 눈치만 봐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 정부 숙원 과제인 고위공직자범죄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결국 통과됐다. 야당측 추천위원의 비토권을 무력화해 사실상 여당 마음대로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이 발의한 공수처법 일부 개정안은 지난 9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원회에 기습 상정되었고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의결을 마쳤다.

슈퍼여당의 독주 그 자체다. 기존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7명 중 야당이 2명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고 후보 추천 의결에 6명이 필요해, 야당측 추천위원 2명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공수처장 임명이 불가능했다.

   
▲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위촉식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철 연세대 로스쿨 교수,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박병석 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정혁 변호사, 박경준 변호사, 이헌 변호사./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번에 통과한 개정안은 후보 추천 의결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것으로 바꿔, 야당 추천위원을 제외한 5명으로 의결이 가능하게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정안에 담긴 공수처 검사의 임기와 자격 요건에 대한 변경이다. 개정안은 공수처 검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3회 연임을 바꿔 연임 제한을 없앴다.

개정안은 공수처 검사의 변호사 경력 자격을 기존 10년에서 7년으로 낮추었고 재판·수사·조사업무 실무경력 요건을 삭제해 친문 성향의 변호사들이 공수처 검사에 입성할 수 있는 문을 대폭 넓혔다.

법조계는 공수처가 법 개정안을 통해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출범하는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검찰의 고삐를 공수처가 완전히 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다만 검사끼리의 제 식구 봐주기식 수사를 근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10일 본지 취재에 "사실상 입법 독재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많다"며 "여당은 당초 패스트트랙을 통해 야당의 물리적 반발을 물리치고 공수처법 제정을 강행할 당시 야당에게 '거부권 있으니 정권 친화적 인사가 공수처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설득했지만 자신들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 내부에서는 애초부터 공수처장이 여당 추천인사로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며 "자신들이 제안해 내걸은 야당측 비토권을 스스로 다시 허무는 운동권식 국정 운영"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수처 권한은 검찰 보다 완전히 우위에 서게 됐고 정치권력에 대한 수사 등 주요 핵심 수사에 있어서 검찰은 공수처 눈치만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며 "이번 개정안에 '공수처의 수사협조(기록·증거 등 자료 제출과 수사활동 지원)에 관계 기관의 장은 응하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추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 또한 지난 9월 10일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개정안 관련 검토의견서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검토의견서에서 공수처 추천위 구성 및 의결 요건의 완화에 대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수사기관의 본질적 권한과 책무, 고위공직자범죄 척결을 위한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실체적 절차적으로 손상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본지 취재에 "누구나 알다시피 공수처 성공의 필수조건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공수처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추가로 보완해도 늦지 않다. 일단 믿고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공수처에 대한 비판과 보완점은 이미 지난 6월 열린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이 논의한 바 있다.

당시 6월 25일 국무총리실 산하 공수처 설립준비단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 발제자로 나선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별건수사 유혹에 빠지기 쉽기에 여러 제한조건을 구축해야 한다"며 "권력자들이 공수처를 간섭하는 것에 대한 꾸준한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의 최운식 대륙아주 변호사는 "공수처의 절대적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며 "외부전문가 협의체나 위원회를 구성해서 이에 대한 방안을 갖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10일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은 신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빠르면 올해 내에 공수처장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수처가 검찰을 제어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의 온갖 비리를 발본색원하고, 권력층이 아니라 시민에 봉사하는 '국민 우선' 사법기관으로 태어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