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공관에 대한 불가침' 빈 협약 보호로 자산 압류 불가능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판결이 23일 확정되면서 양국간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는 일본 정부가 항소 기한인 이날 0시까지 항소장을 내지 않아 한국 법원의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것에 대해 그 이유를 주목하고 있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1심 판결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 항소할 수 있는데, 기한 만료로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법조계는 압류 가능한 일본 정부의 자산이 파악 안된다는 한계를 감안해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사진 우측)의 모습.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22일 담화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소송 1심에서 패소한 것에 항소하지 않겠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명백히 반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모테기 외무상은 "즉각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며 "이번 판결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한일 외교장관 간 위안부 합의에도 어긋난다"면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앞서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법상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에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변론 기일을 열어 사건을 심리했고, 이번 사건이 국가 차원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는 점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 법원에 재판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강행했다.

재판부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압류 가능한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 일본대사관 등의 자산은 외국 공관에 대한 불가침을 정한 빈 협약의 보호를 받아 압류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로펌에서 수십차례 일본기업측을 법무대리했던 최 모 변호사(46)는 23일 본지 취재에 "사실상 재판부의 억지 판결이다. 일본 정부의 자발적인 협조가 없으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없는 구조"라며 "이미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의 외교부회는 지난 19일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비롯해 일본 국내의 한국 자산 동결, 금융제재 등 강력한 대응조치를 검토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문재인정부의 반일 드라이브와 이를 그대로 수용한 법원의 판단이 아쉬울 따름"이라며 "한국 내 일본 공관, 관용차, 금융기관 계좌 등을 염두에 둘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강제 집행을 실제로 강행할 경우 양국 관계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청와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몇년 째 외교적 해법 운운하지만 이는 한국측의 전면적인 양보나 철회, 포기 외에는 해법이 없다"며 "원고가 아무리 강제 집행 대상을 찾으려 해도 빈 협약 보호 대상에 속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 몇년간 반일 선동을 유도해 온 문재인 대통령 조차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부 간 공식 합의였다'며 '그런 토대 위에서 피해자도 동의할 해법을 찾도록 협의하겠다'고 밝혔다"면서 "현실과 이상은 명백히 다르다. 언제까지 반일 여론을 자극하고 그 심리에 기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외무성은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명의의 담화를 23일 0시를 조금 넘겨 "국제법상 국가는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대등한 존재이므로 원칙적으로 외국의 재판권에 따르는 것은 없다"는 내용으로 발표했다.

이에 우리나라 외교부는 이날 오후 5시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며 "이에 따라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혀 일정부분 일본측 입장을 수긍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동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일 양국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히면서, 양국 간 관계를 감안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관리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일본 정부 자산을 확보할 방안이 거의 없는 가운데, 뾰족한 해법은 하나로 좁혀진다. 바로 한국 정부의 '통 큰' 접근방식이다.

지난 2015년 박근혜정부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국 정부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