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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20년㊥]아버지 DNA로 글로벌 '현대' 완성한 MK
뚝심 앞세워 현장품질경영 앞세워
제철과 건설 인수하며 적통 이어가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일관체제 확립
승인 | 김태우 기자 | ghost0149@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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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1-03-19 13: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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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창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기틀을 마련하고 현재의 한국경제 기반을 닦은 장본인 중 하나가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그가 타계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 패러다임전환이 진행됐다. 이로 인해 인터넷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고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자동차 역시 빠르게 변화해 전기로 움직이며 사람 없이도 주행이 가능한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런 기반을 만들어낸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20주기를 맞이해 그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도전'과 '신뢰'였다. 대한민국의 산업 현대화 시기 그가 뛰어들었던 모든 사업은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런 경영철학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글로벌 '현대'를 완성하게 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전을 '뚝심'으로 키워낸 그는 글로벌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주도했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사진=미디어펜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와의 인연은 1970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73년 현대정공 사장에 오르면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이지만 불의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형, 고(故)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의 빈자리를 매우며 사실상 범현대가의 장남역할을 맡아왔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1999년 경영권 분쟁을 뚫고 현대그룹에서 독립했다.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차를 포함, 부품 계열사 등 10곳을 이끌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도전'을 이어받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의 경영철학이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것이 품질을 높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자동차 산업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신회가 품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현대차는 품질이슈로 좋지 않은 인식이 강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품질 면에서는 시장에서 많은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미국에서는 저품질의 차량을 속어로 현대차로 불리는 아픈 역사를 갖게됐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런 현대차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품질을 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글로벌 공장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직접 현장의 진두지휘하며 품질에 대해 목소리 높여왔다. 또 새로운 생산설비가 들어서는 곳에는 꼭 방문해 근로자들을 독려하고 새로운 현대차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같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행보는 아버지의 경영철학인 신뢰를 지키기 위한 행보였다. 

앞서 정주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시절,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밤잠을 줄였다.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서였다. 정몽구 명예회장 역시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고객과의 '신뢰'인 품질을 제1 목표로 삼은 것이다.

아버지가 댐과 고속도로 현장을 밤낮없이 누빈 것과 마찬가지로 정몽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주요 사업장을 찾아가 품질경영을 이어갔다.

2000년대 품질 경영을 주도한 그는 2010년대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연산 800만대 시대를 열었던 것도 정몽구 명예회장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고속성장이었다.

그렇게 자동차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이 종합 그룹사로 거듭나는 사이,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궈낸 주요 계열사도 한 자리에 모았다. 2011년에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도 성공했다.

   
▲ 중요한 유럽시장요충지인 인도현지를 방문해 현장을 챙기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아버지의 도전정신을 이어받은 아들이 대를 거쳐 유지돼 오며 고속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정몽구 명예회장의 큰 업적중 하나는 선대가 꿈꾸던 소재부터 제품으로 이어지는 일관체제 구축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4년 철강수요 급증에 대비하고 철강 독점 공급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산 가덕도에 제3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으나, 정부가 공급과잉론을 앞세워 사업을 무산시켰다.

선대 회장의 꿈은 사업을 이어받은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이어졌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을 이끌면서 제철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제철산업은 내수 시장에서는 이윤이 적더라도 자체의 가격경쟁력, 품질경쟁력을 가지고 값싸고 질 좋은 소재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동차, 선박 등을 비롯해 최종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이들 제품의 수출을 통해 동반성장함으로써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1996년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시키고 경남 하동의 갈사 간척지에 8조원 가량을 투자해 연산 1000만t 규모의 고로방식 일관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정부는 현대의 사업계획서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공급과잉론을 내세워 제철소 건립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현대그룹과 경남지역 민관 합동으로 가두 서명운동을 벌이고, 독일의 티센제철소를 방문해 합작투자 제의를 받아내는 등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의지는 1997년 12월 정부의 '제철소 신규 건설 불가'라는 최종 답변 회신으로 다시 한 번 좌절됐다. 여기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까지 불어닥치면서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 건설 보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뚝심경영'의 상징으로 불리는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포기란 없었다. 1990년대 후반 현대가 2세들간 계열분리 과정을 거쳐 자동차 전문그룹인 현대차그룹을 이끌게 된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4년 한보철강 인수를 통해 다시 한 번 제철사업의 불씨를 지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과감한 인수금액 제시와 함께 근로자들의 고용 승계로 민심까지 얻어내며 한보철강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완성차를 정점으로 하는 일관체제를 완성하게 됐다.

현대제철은 앞서 인수한 강원산업(현 현대제철 포항공장)과 삼미특수강(현 현대비엔지스틸)에 이어 한보철강까지 흡수하면서 연간 조강 생산 규모를 795만t에서 1295만t으로 늘려 종전 세계 24위에서 15위 수준의 철강회사로 도약했다. 전기로 부문에서는 세계 1위와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세계 2위의 지위를 획득했다.

   
▲ 빨갛게 달아오른 슬라브가 오른쪽에서부터 회전하는 롤 위를 지나가며 1200도의 열과 6000톤의 압연 하중을 거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제공


현대차그룹의 한보철강 인수는 국가경제에도 크게 기여했다.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며 한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였을 뿐 아니라 외환위기를 촉발시키며 이후 7년 동안 국가경제의 큰 걸림돌이었던 한보철강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멈췄던 공장이 정상 가동되면서 생산, 물류, 고용 등에서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됐다. 공장 정상가동을 위해 신규 채용한 인력만 3000명에 달했고 2조원대의 신규 투자도 이뤄져 전후방 산업에도 호재로 작용시키며 대한민국 경제의 지반을 다지는 역할에 또 한번 현대가 크게 공헌하게 된 것이다.

이런 뚝심을 통해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모습으로의 글로벌 속 현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룹의 성장을 주도한 정몽구 명예회장도 현재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정의선 회장에서 새로운 역사의 책임을 일임했다. 현대차그룹 회장에 올라선 지 21년 만이다.

이미 정의선 회장으로 후계 구도가 결정된 만큼, 빈자리는 크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오는 5월 현대차그룹 총수를 정의선 회장으로 바꿀 예정이다.

3대(代) 경영에 나선 정의선 회장 역시 아산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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