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고의·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시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
판단기준 모호, '명확성 원칙' 위배…풍자 섞인 삽화·편집한 제목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을 비롯해 한국신문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 거의 모든 언론 단체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조만간 소관 상임위인 국회 문체위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법 개정안을 단독처리한 후 오는 25일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킬 방침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 8월 2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징벌적 손배법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에서 KBS노동조합 관계자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민규 기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허위·조작 보도했을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한다. 

구체적으로는 배상액 하한선을 해당 언론사 전년도 매출액의 1만 분의 1, 상한선을 1000분의 1로 명시했다. 매출액이 따로 없어 배상액 산정이 용이하지 않은 경우 1억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 위반 등의 행위가 있을 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이 손해배상이 기본 법리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최대 5배 징벌적 손배부터 법리와 어긋날뿐더러 언론사 규모에 따라 배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피해 규모에 따라 배상액이 달라져야 한다'는 손배 기본 원리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더 문제인 것은 '명확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 허위·조작 보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비판이다. 일종의 가짜뉴스 프레임인데, 가짜뉴스에 대한 정확한 법적 정의가 없는데 이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해 법 개정안은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 (기자의 주관이나 언론사 논조가 들어갈 수 있는) 기사 제목에 왜곡이 있는 경우를 손배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에 따르면 편집자의 상상력이 들어간 제목은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배 대상이 된다. 풍자로 표현한 삽화 또한 마찬가지다.

지방법원의 한 현직 부장판사는 4일 본보 취재에 "형벌 법규는 범죄 구성요건과 법적 결과인 형벌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 입법"이라며 "가짜뉴스,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가 정확히 규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처벌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 언론중재법 제30조 1항과 2항에 손해의 배상에 대해 이미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며 "정치권에서 우려하는 명예훼손의 경우 또한 제31조 특칙을 통해 법원이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굳이 지금의 법을 징벌적으로 강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 제30조 1항은 "언론등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인하여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받은 자는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을 언론사등에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2항 또한 "법원은 제1항에 따른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손해액의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고려하여 그에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한다"고 적혀있다.

제31조는 '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이라고 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갈음하여 또는 손해배상과 함께, 정정보도의 공표 등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그는 "허위 조작 보도라는 문구를 법 개정안을 통해 삽입해서 뭘 얻겠다는건지 그 의도가 다분히 부정적으로 읽힌다"며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어 팩트체크가 끝나 사실에 기반한 진짜 뉴스라 하더라도 이를 '허위 조작'이라고 일단 주장해 소송전으로 끌고 가 덮으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지방청의 한 부장검사 또한 본보 취재에 "지금은 위압적인 독재 시대도 아닌데 독재 정권 흉내를 내고 있다"며 "정부와 여당이 불명확하고 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뉴스를 검열해 '허위 조작 보도'로 몰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러한 입법을 강행하는 정치 권력도 문제지만 사건 수사를 감안하면 언론사에게는 돈, 재벌이라는 경제 권력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언론사가 어느 쪽이든 권력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언론사가 이에 종속된 구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법 개정안을 최종적으로 논의할 국회 소관상임위 문체위원 16명은 민주당 8명, 열린민주당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당이 야당측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다.

민주당이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고 명명한 언론중재법이 실제로 통과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우려된다. 언론의 감시·견제 기능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권력의 종이 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