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취임 1년…신사업에 과감한 투자·탄소 중립, 수소 생태계 구축 주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정식으로 그룹수장으로 오른지 오는 14일로 만 1년이 된다. 수석부회장으로 이미 실질적인 경영을 진두지휘하며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회장에 오른 그는 본격적인 그룹의 체질개선에 돌입했고, 지속가능한 미래먹거리 마련에 힘썼다. 정 회장 외형적 성장 보다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과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런 전략은 현재까지 많은 성과를 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지배구조 개선, 임금체계 개선 등 정 회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편집자 주>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지난 2020년 10월14일 전세계가 코로나19 팬더믹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그룹의 수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룹의 지휘권을 넘겨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룹의 주력인 자동차 산업 역시 팬데믹 장기화 우려 속에 주요 시장에서 락다운 조치가 이뤄지는 등 심하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 모두 최대한 웅크린 채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며, 긴축 정책을 발표하는 등 동면에 들어갔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하지만 정 회장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독보적인 현대차그룹의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지난해 10월 14일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정 당시 수석부회장을 회장에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각 이사회 동의로 현대차그룹은 20년 만에 총수를 교체했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본격적인 3세 경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정 회장이 공식적인 수장이 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신차 '슈퍼사이클'을 맞이 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역시 신차 출시 타이밍을 늦출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의 주요모델 풀체인지(완전변경)를 진행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정공법을 택했다. 단순히 소나기를 피해가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소나기가 그친 뒤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3월 현대차그룹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시적인 사업 차질은 불가피하겠지만 다양한 컨틴전시 계획을 수립해 당면한 위기 극복은 물론 이후에도 조기에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비상 대응에 최선을 다하면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그룹의 기초체력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신형 투싼, 아반떼, 스타리아, 제네시스 G80, GV70, 등 신차들을 예정된 스케줄대로 출시했다. 기아 역시 쏘렌토, 카니발, K8 등 볼륨 차급에서 신차를 시장에 내놨다.

올해 들어서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의 브랜드별 선도 모델들인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을 잇달아 출시했다.

지난해 국내 출시된 신차들은 현대차와 기아가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로 상대적으로 시장 상황이 좋았던 내수 시장에서 높은 실적을 올리며 위기를 버텨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해 들어서는 해외 시장에 잇달아 출시되며 자동차 수요 회복 흐름을 타고 실적 개선에 힘이 되고 있다.

특히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라인업 확충과 대중차 브랜드 현대차‧기아의 RV 비중 확대는 양적 성장보다 수익성 위주의 체질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까지 가져왔다.

정 회장은 취임이후 국내외 그룹 임직원에게 영상으로 취임 메시지를 통해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그 결실을 모든 고객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친환경 이동수단과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구현하고 로보틱스,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스마트시티 등 미래 모습을 빠르게 현실화해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아틀라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미래의 현대차는 자동차가 50%, 개인용 비행체(PAV)가 30%, 로보틱스가 20%인 기업이 될 것입니다."

2019년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당시 정 수석부회장이 한 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 회장은 취임 후 혁신적인 이동 경험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차세대 모빌리티를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미국의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업가치가 11억 달러에 달하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취임 후 첫 번째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회사 지분 80%를 인수했는데, 정 회장도 사재 2490억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소유했다. 그룹이 추진할 신사업에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산업 현장과 자율주행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미 기아 오토랜드 광명(소하리 공장)에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이 투입돼 안전한 환경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UAM 사업에도 힘을 실었다. 

정 회장은 올해 3월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열린 온라인 타운홀 미팅에서 "UAM이 우리의 이동에 대한 수요를 많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물류용 UAM을 2026년 양산할 계획이다. 도서 지역에 필요한 의료, 의약품 운송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2028년 도심 운영에 최적화한 완전 전동화 UAM을 출시하겠다는 목표로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고, UAM 생태계 구축도 주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수소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판단하고 수소사회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달 열린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 행사에서 정 회장은 기조 발표자로 나서 그룹의 '수소비전 2040'을 공개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수소사회를 2040년까지 달성하려 한다"라며 "앞으로 내놓을 모든 상용차는 수소전기차나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 제품군에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적용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상용차의 전면적인 전동화를 발표한 건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처음이다.

정 회장은 그룹 차원의 수소 사업을 넘어 한국의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작업도 이끌었다. 국내 수소 기업 협의체인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설립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공식 출범한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현대차, SK, 한화, 포스코, 효성 등 15개 기업이 참여한 민간기업 협의체다. 정 회장은 SK, 포스코, 효성과의 논의로 설립을 본격화하는 등 수소 기업협의체 출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인천광역시 서구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투자 예정지에서 열린 차세대 수소연료전지 특화단지 기공식에서 참석한 (왼쪽부터)문승욱 산업부 장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문 대통령,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수소 산업은 크게 수소 모빌리티, 수소 에너지, 수소 운송·저장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수소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옮기고, 충전하고, 활용하는 등 경제적으로 파생되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한국은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서 앞서있지만, 에너지와 운송·저장 분야의 발전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와 연관된 기업을 하나로 모아 협의체 구성을 주도했다.

정 회장은 출범식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수소산업 생태계의 균형적인 발전이 늦었지만, 기업들이 전 산업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만큼 못할 것도 없겠다는 자신감도 든다"라며 "기업협의체가 개별 단위의 기업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업, 정책, 금융 부분을 하나로 움직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수소산업 생태계의 완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수소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선도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최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상향하는 안을 내놓는 등 세계 각국의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정 회장은 세계적인 탈 내연기관 추세를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고 발 빠르게 그룹의 탄소 중립 계획을 수립해 제시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의 위기가 될 수 있는 변화에 선제 대응해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사전행사로 열린 탄소 중립 실천 특별 세션에 참가해 직접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발전, 제조업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운송부문에서 탄소 중립 실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동화"라며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분야를 선도하고 있고 청정 모빌리티 솔루션을 통해 탄소 중립 실현에 적극 나서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라 자동차 제조, 운영 및 폐기 등 전 과정에서도 탄소 중립을 달성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순환경제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의 구체적인 탄소 중립 계획은 정회장이 출범을 주도한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앞장섰다. 정 회장은 지난달 온라인으로 제네시스의 새로운 전동화 비전을 발표하며 2035년 그룹사 최초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제네시스는 2030년까지 총 8개의 모델로 구성된 수소 전기차와 배터리 전기차 제품군을 완성하고, 세계 시장에서 연간 40만 대까지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사실상 2030년부터는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현대차도 탄소 중립 대열에 합류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2045년 탄소 중립' 구상을 공개했다. 

이날 현대차는 전 세계에서 판매하는 완성차 중 전동화 모델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 2040년까지는 8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또한, 세계에 있는 현대차 사업장의 전력 수요 90% 이상을 2040년까지, 100%를 2045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족하겠다고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전체를 움직이는 전략적 판단은 정 회장을 비롯한 양재동 본사에서 컨트롤하지만, 각 브랜드나 지역별 사업과 관련해서는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를 투입해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의 정 회장 특유의 용병술이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