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기후 변화 거스를 수 없는 흐름…포도 수확량 대폭 감소
수확일 조금씩 앞당겨져…기후 변화 적응 품종 개발 노력
   
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문제는 세상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기업 전략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한국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표완수)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번 연재보도의 목적은 팩트체크를 통해 탄소중립의 현실을 짚어보고, 도약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후 대응에 선도적인 국내·해외 사례를 담고자 했다. 미디어펜은 국내 사례에서 울산·포항·부산·제주 지역을 방문했고, 해외의 경우 스웨덴·스위스·프랑스에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가 직접 찾아가 각국의 탄소제로 환경정책 성과와 현지 목소리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주]

[시리즈 싣는 순서]

⑦프랑스 와인 생산지도가 바뀐다?
⑩우등생 프랑스도 이상기온엔 '속수무책'

   
▲ 지난 4월 급강하한 기온에 서리 피해를 입은 포도밭의 모습. /사진=BIVB 제공
[프랑스 부르고뉴=미디어펜 홍샛별 기자]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 온난화를 막자는 전 지구적 합의안인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된지 5년여가 지났다. 해당 기후 합의의 상징적 장소인 프랑스 파리. 그러나 프랑스에서 정작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피부로 느끼는 곳은 파리가 아닌 지방의 와인 농가들이었다. 

지난달 말 방문한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 산지 부르고뉴(Bourgogne)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급 와인을 탄생시키는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 생산자들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부르고뉴에서 나고 자라면서 지난 50여년간 기후가 변화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크고 작은 변화는 늘상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이상 기온이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파괴적 온도 변화에 대한 대책을 찾는 일이 더욱 시급해졌습니다”

부르고뉴 본(Beaune)에서 만난 프레데릭 드루앵(Frédéric Drouhin) 부르고뉴와인협회(BIVB) 회장은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실제 부르고뉴의 수많은 포도밭들은 지난 4월 느닷없는 봄 서리로 직격탄을 맞았다. 올 봄 프랑스 전역을 뒤덮은 이상 기온을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한낮 기온이 26℃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됐다. 그러다 일주일 만에 기온이 영하 6~7℃까지 급격이 떨어지며 농작물들이 서리 피해를 입었다. 

“그 당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새벽 2시쯤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자다말고 포도밭으로 뛰쳐 나갔어요”

   
▲ 지난 4월 봄 서리로 얼어붙은 포도밭에 농장 관계자가 횃불을 피우고 있다. /사진=BIVB 제공
포도나무 사이사이에 횃불을 켜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는 프레데릭 씨는 이 때를 두고 ‘농가의 명운이 달렸던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르고뉴와인협회의 회장인 동시에 부르고뉴 지방을 대표하는 와인 명가 ‘조셉 드루앵’의 대표이기도 하다. 1880년부터 4대에 걸쳐 운영 중인 조셉 드루앵 소유의 포도밭은 80헥타르(80만㎡)에 이른다. 

대개 포도농가에서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횃불 켜기와 물 뿌리기 두 가지다. 대부분의 포도농가들은 횃불을 이용한다. 물 뿌리기의 경우 밭 인근에 호수나 저수지 등 자연수를 갖추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씨는 “횃불을 밭 사이사이에 켜놓으면 불의 열기가 주변 공기를 데우고 결국 얼어붙은 나무를 녹입니다”라면서 “과거에는 부르고뉴 북쪽의 샤블리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부르고뉴 지방 전체에서 이 방법을 사용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 올해 수확을 끝낸 부르고뉴 포도밭의 모습. /프랑스 부르고뉴=미디어펜 홍샛별 기자


이상 기온으로 포도 생산량 역시 감소했다. 올해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27% 가량 줄어든 3400만 헥토리터(hL)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5년 전체 평균 생산량과 비교해도 22% 줄어든 수치다. 헥토리터는 100L를 의미하는 단위로 보통 750mL들이 표준 와인병 33개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올 봄의 이상 기온 현상이 더 이상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 프레데릭 드루엥(Frédéric Drouhin) 부르고뉴와인협회(BIVB) 회장. /프랑스 부르고뉴=미디어펜 홍샛별 기자
프레데릭 씨는 “보통 포도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수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일이지만 최근에는 97일 정도로 짧아졌다”면서 “비록 3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이 짧은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와 그 영향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수확일이 짧아지면 포도의 당도가 올라가고 맛의 변화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농가들이 기후 변화를 특별히 더 걱정하는 이유는 포도의 특성 탓도 있다.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의 대부분은 ‘피노누아’라는 포도 품종을 사용한다. ‘부르고뉴=세계 최고의 피노누아 와인’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다. 피노누아는 굉장히 민감한 특성 탓에 재배하기 힘든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토양, 온·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을뿐 아니라 병충해에도 취약한 편이다. 

부르고뉴의 포도농가들은 격변하는 기후 환경의 최전선에서 피노누아 와인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현재도 이어 나가고 있다.

프레데릭씨는 “피노누아만 해도 560가지 세부 품종이 있다”면서 “10개 정도의 접합 방법을 통해 피노누아 안에서도 병충해와 열지탱에 강한 품종을 꾸준히 개발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품종 개선을 통해 포도 자체의 기후 적응력을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 세계 최고급 와인 '로마네꽁티'를 만들어 내는 포도원. /프랑스 부르고뉴=미디어펜 홍샛별 기자


프랑스 전국 와인 연합(CNIV·National Interprofessional Committee for AOC wines) 역시 기존 유통에 집중하던 투자 예산을 최근 기후 변화 등을 대안을 찾기 위한 연구에 편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이면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맛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실 수 있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프레데릭 씨는 “후대에 부끄럽지 않게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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