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신사업으로…정기선 경영성과와 직결
대우조선 재무악화 우려, 부채율 300% 육박
[미디어펜=김태우 기자]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유럽연합(EU)의 불허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메가 조선사' 탄생 기대감도 옅어지고 있다. 

글로벌 조선업황이 부활한 만큼, 두 기업은 합병이 결렬되더라도 당장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이 갈 길은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조단위의 여유자금이 생긴 현대중공업그룹은 공격적인 신사업 투자가 가능해졌고, 대우조선해양은 자금 지원이 무산되면서 막대한 부채에 다시 허덕일 수밖에 없다.

   
▲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총 3826억 원 규모의 LNG 추진 대형 PC선 4척을 수주했다. /사진=현대중공업 제공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는 오는 20일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할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액화천연가스(LNG)선 점유율이 60%가 넘는 만큼, 반독점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본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인수 절차에 돌입했다. 현대중공업은 3개월 뒤 조선 계열사를 관리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는 등 속도감 있게 M&A를 진행했다.

합병 선결조건은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이다. 그해 7월 총 6개 국가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했고,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와 EU, 일본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공정위는 지난해까지 기업결합 심사를 마무리할 방침이었지만, 아직까지 유의미한 진전은 없다. 

심사가 종료되지 않은 국가 중 한 곳이라도 M&A를 거절하면, 최종 결렬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EU 등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결과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U가 이번 M&A를 불허할 것이란 전망은 지난해 말부터 외신 보도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국내 조선사들의 글로벌 LNG선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하는 만큼, 대형선사들이 몰려 있는 유럽 내 선사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됐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사의 최근 4년간 글로벌 LNG선 점유율은 2018년 98%, 2019년 94%, 2020년 72% 수준이었다.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던 수주량은 2021년 들어 다시 상향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세계에 발주된 LNG선박 78척 가운데 국내 조선 3사가 총 68척(87%)을 수주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점유율만 따져봐도 60%가 넘는다. 두 기업은 전체 수주잔량이 세계 1·2위인 거대 조선사인데, 글로벌 LNG선박 시장을 독식하는 상황이다. EU가 두 기업의 합병을 승인해 준다면, 오히려 독과점을 재촉하는 그림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LNG 수요가 급증했고, 이를 실어나를 선박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점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2018년 '2050년까지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2008년 대비 50% 저감'의 탄소중립 전략을 채택했다. 2023년까지 저효율 노후선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선박을 퇴출한다는 게 골자다. EU역시 자체적인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를 해운으로 확대했다. 

   
▲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지주 대표. /사진=미디어펜


이런 배경으로 LNG선 발주 전망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발주량은 2020년의 2배 수준인 1900여척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중 35% 수준인 친환경선 비중 역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유럽운송환경연합은 2035년까지 역내 기항하는 선박의 55% 이상이 LNG나 바이오 연료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EU의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반대를 하게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업곚 중론이다. 

이로인해 인수주체인 현대중공업그룹이 받을 타격은 미비하다. 이미 글로벌 1위의 시장 경쟁력과 점유율을 확보한 만큼, '규모의 경제' 효과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당초 한국조선해양은 각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과정은 복잡하다. 한국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모두 현물로 출자받고, 그 대가로 1조2500억원 규모의 한국조선해양 상환전환우선주와 보통주 약 7%를 넘긴다.

한국조선해양은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단행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회사로 편입시킬 계획이었다. 필요할 경우 추가 자금 1조원도 넣기로 했다.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조선해양이 모기업 현대중공업지주를 상대로 1조2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선행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금과 지분 거래는 이뤄지지 않게 됐다. 현대중공업지주는 두산인프라코어(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인수와 현대제뉴인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보유 현금 대부분 소진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현대중공업지주의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300억원이다.

한국조선해양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2686억원,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은 2505억원이다. 동원 가능한 현금만 1조5000억원에 이르는데, 사실상 이 자금이 굳게 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여유자금으로 3대 신사업인 자율운항기술과 액화수소 운반과 추진시스템, 지능형 로보틱스로 적극 유입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 2022(CES 2022)'에 참석해 이 같은 미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 현대중공업그룹 액화수소운반선. /사진=미디어펜


현대중공업그룹 신사업은 궁극적으로 정기선 사장의 경영승계와 맞닿아 있다. 그룹의 미래 핵심 신사업 성과는 정기선 사장의 경영능력을 입증할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이슈도 해소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현대중공업지주와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현대일렉트림)으로 나눠지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결정한 이후에는 한국조선해양을 새로 만들고 자회사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3사를 배치했다.

건설기계 부문 중간지주사인 현대제뉴인도 신설했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지주사에서 계열사로 지배력이 뻗어나갈 수 있는 그림을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정기선 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율 확대만으로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조선해양의 12일 종가는 10만500원으로, 전일 대비 0.6% 상승했다. 관련 기업인 현대중공업지주와 현대중공업은 각각 1.68%, 1.40%씩 올랐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상황이 다르다. 생존자금 수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97%에 달하는데, 부채 분류시 692%로 3배 가까이 상승한다. 여기에 전환사채까지 포함하면 4085%까지 치솟는다.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수주 목표 달성률은 140%로, 달성액도 목표치 77억달러를 40% 가량 초과한 108억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주 후 실제 매출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3년 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건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M&A 시장에 다시 매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산은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해 1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온 만큼, 추가지원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과거 2008년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매각전에는 다수의 대기업이 관심을 보였다. 치열한 눈치싸움과 합종연횡 끝에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경영악화와 자금난 등을 이유로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수직적 사업 시너지를 고려한다면, 철강과 건설, 정유, 해운, 친환경에너지 사업 등과 큰 틀에서 연결지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포스코그룹과 한화그룹, SK그룹, GS그룹, 효성그룹, SM그룹을 잠재적 인수 후보로 꼽고 있다. 산은이 새 주인을 찾기 위해 외국 자본 유입을 허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