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무회의서 20여분간 한일관계 정상화 관련 작심발언…적대적 민족주의 '경계'
문재인 겨냥해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 위한 편한 길 선택할 수도 있었다"
반대 여론 관련 "배타적 민족주의·반일 외치며 정치적 이득 취하는 세력 존재"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적대적 민족주의 및 반일 감정에 기대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을 겨냥해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12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25분간 생중계하면서, 한일관계 정상화에 관한 자신의 결단과 생각을 그대로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대통령 취임 직후 자신의 심경과 소회, 이전 정권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자세히 밝히면서 직접 전선을 형성하고 나섰다. 적과 동지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작심발언이었다.

우선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해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서,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작금의 엄중한 국제정세를 뒤로 하고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 자체마저 불투명해져 버린 한일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왔다"며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며 "날로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의 고도화 등 우리를 둘러싼 복합위기 속에서 한일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며 "양국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되었고, 한일관계는 파국 일보 직전에서 방치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판결은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등 경제보복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도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우리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배제하는 등 역사 갈등이 경제 갈등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며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안보와 경제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5일 대통령실 국무회의실에서 2023년도 제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또한 윤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 판결을 겨냥해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되어있다"며 "이와 같은 기조 아래, 역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1974년 특별법을 제정해서 8만 3519건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하는 92억 원을, 2007년 또다시 특별법을 제정해서 7만 8000여 명에 대해 약 6500억 원을 각각 정부가 재정으로 보상해 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 제3자 변제를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며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어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이 한국 식민 지배를 따로 특정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 표명을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서도 "국민 여러분,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며 "세계로 뻗어나가 최고의 기술과 경제력을 발산하고, 우리의 디지털 역량과 문화 소프트 파워를 뽐내며, 일본과도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며 "저는 현명한 우리 국민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세대 청년세대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밝힌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발언은 향후 한국 정부의 대일외교 기조를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됩니다."

윤 대통령이 모두발언 첫마디에 밝힌 이 입장이 국내 일각의 반일 여론을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