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강 범람에 논밭 잠기고 주민 대피까지
침수 원인으로 미호천교 임시제방 지목해
오송읍 주민들 "흙만 쌓은 둑 허술" 주장
[미디어펜=서동영 기자]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18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1리 노인회관. 불이 꺼진 어두운 회관에는 어르신 서너 명이 말없이 TV만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지난 15일 마을 인근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 지난 18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 경찰 통제 속에 포크레인 등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해당 지하터널에서는 지난 15일 갑작스런 침수로 인해 1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사진=서동영 기자

당시 궁평제2지하차도는 근처 미호강이 범람하면서 갑작스럽게 많은 물이 유입, 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됐다. 이로 인해 14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시각 오송읍 내 마을들도 물에 잠겼다. 궁평1리의 경우 다행히 인명피해나 침수된 주택은 없었으나 주변 논과 밭이 수해를 입었다. 주민 중 노인 20여 명은 인근 학교 등으로 긴급 대피해야 했다.  

한 노인은 "23살에 시집와 60년을 오송에서만 살았는데 동네가 물에 잠긴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대피 당시만 해도 지하차도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착잡해했다. 

오송읍 주민들은 오랫동안 수해가 없던 동네가 미호천교 공사로 인해 범람을 겪었다며 분노하고 있다. 미호천교 임시제방이 붕괴했기 때문에 물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미호강에는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발주한 오송~청주(2구간) 도로 확장 사업이 진행 중이다. 궁평리부터 강내면까지 1㎞ 길이 도로를 기존 4차선에서 6차로로 넓히는데 미호천교도 확장·신설 중이다. 시공사인 금호건설은 공사를 위해 미호천교 아래 기존 둑을 허물고 임시제방을 쌓아 올렸다. 

   
▲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충북 오송읍 궁평3리. 지난 15일 미호강 범람 당시 수해를 겪었다./사진=서동영 기자

임시제방과 직선거리로 1㎞ 떨어진 궁평3리 한 주민은 "물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와 급하게 몸을 피해야 했다"며 범람 당시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이어 "공사를 위해 원래있던 둑을 무너트린 걸 보면서 '비가 오면 어쩌려고 저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둑이 무너지고 참사가 일어났으니 이번 일은 행복청과 금호건설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궁평1리 60대 남성은 "둑은 물을 막기 위해 탄탄하게 쌓는 게 상식 아니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나"라며 "결국 시공사와 발주처의 관리소홀"이라고 지적했다.  

마을 주민으로 이뤄진 오송읍민 재난 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 청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호천교 확장공사 부실로 제방이 무너졌다. 어처구니없는 인재"라며 "시공사 금호건설의 늦장대처는 분노를 넘어 허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18일 미호천교 아래에서 포크레인이 둑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15일 미호강이 범람했던 곳이다. 둑 상단과 교량 상판이 가깝다. /사진=서동영 기자

6대째 오송읍에서 살고 있다는 최병우 오송읍민 재난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미디어펜과 만나 임시제방이 허술했다고 주장했다. 

최병우 위원장은 "흙으로 된 둑은 위에서부터 건설기계로 단단히 눌러 다져야 단단해진다"며 "하지만 둑 상단이 교량 상판과 가까워 기계가 움직일 공간이 나오지 않으니 제대로 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금호건설은 톤백과 차수막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특히 톤백은 밑에서부터 4단, 3단, 2단, 1단 등 피라미드식으로 단단히 쌓아야 제방이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다. 이를 감시해야 할 행복청은 현장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톤백은 흙이나 자갈을 담은 포대자루를 말한다. 차수막은 제방으로 물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천막이다. 

   
▲ 미호강교 아래 임시제방. 아래에 톤백과 위에 차수막이 설치됐다. 하지만 지난 15일 범람 당시 톤백과 차수막이 없었다는 주민 주장이 나왔다./사진=서동영 기자

참사 후 3일이 지난 이날 미호천교 아래에서는 포크레인이 임시제방 안쪽에서 흙을 쌓고 있었다. 둑 바깥쪽에는 톤백과 차수막이 보였다. 

하지만 현장 사진을 본 최 위원장은 "지금도 톤백을 허술하게 쌓았다"며 "많은 비가 온다면 임시제방이 다시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행복청 관계자는 사고 당시 톤백이 없었다는 최병우 위원장 등 마을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톤백을 설치했다"고 답했다. 다만 어떻게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담당부서가 현재 감사 중이라 연결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금호건설에도 주민 주장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