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달래기에 총수들 동원…후진국에서나 볼법한 이벤트
이병태 교수 “권위주의 정부서도 못 본 대통령의 권력 남용”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부산행 떡볶이 먹방’이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총수들이 국내 정치에 동원된 모습이 씁쓸함을 남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민심 달래기’에 총수들이 동원된 것은 후진국에서나 볼법한 이벤트라는 비판이다.

12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EXPO)’ 유치 실패로 인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재계 총수들과 함께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빈대떡, 비빔당면 등을 시식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사진=대통령실 제공


이 자리에 함께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대표,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은 지난해 7월 ‘부산엑스포 민관합동 유치위원회’가 출범된 이후 17개월 동안 BIE 회원국들을 돌며 유치전을 함께했다.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 그룹사 12곳은 18개월 동안 총 175개 국, 3000여 명의 정상 및 장관 등을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엑스포 유치 공동 경비로 기업들은 약 300억 원의 특별 회비를 자발적으로 제출했고, 개별 유치 활동으로도 수십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때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을 이유로 총수들의 동행이 잦아지면서 재계 일각에선 “바쁜 기업인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염원으로 묻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달 28일 프랑스 파리 세계박람회기구 BIE 총회에서 열린 엑스포 개최지 투표에서 한국 부산은 29표를 얻어 119표를 받은 사우디 리야드에 밀리게 된 것이다.

이후 재계 일각에서는 “되지도 않을 일에 총수들을 동원해 시간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당초 부산 엑스포 유치는 성공이 어렵다는 정보가 있었음에도 정치권이 총수들을 내세워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공 가능성이 적은 일에 기업인들의 힘을 빌려 실패를 무마하려 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실망이 컸던 이들은 부산 시민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는 불발됐지만 정·재계가 함께 부산 지역 경제 발전에 힘쓰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담아 부산을 방문했다. 

하지만 민심을 달래겠다는 취지와 달리 ‘총수들 동원’이 부각되며 역풍을 맞는 모습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언론에 기고문을 통해 “생사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기업총수들이 시장에 가서 대통령과 ‘떡볶이 먹방 파티’에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들을 감옥에 가두던 그 지엄한 법리는 어디 가고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기업 총수들을 총동원한 것도 모자라 이제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 동원했다”며 “이 모습은 개발 초기의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의 권력 남용의 일탈”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사나워진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글로벌 총수들이 줄줄이 불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의 국내 정치에 총수들이 동원되는 대통령실의 ‘갑질’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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