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묘한 매력의 마스크를 가졌다. 담백한 인상과 탄탄한 체격이 먼저 눈에 들어온 뒤, 이내 안면근육의 작은 떨림과 미세한 호흡이 화면을 압도하고 만다. 골똘한 눈빛이 진중한 연기 철학과 꼭 닮은, 배우 손석구(41)의 이야기다.

'카지노', '나무 위의 군대', 'D.P.', '살인자ㅇ난감' 등 드라마와 연극을 종횡무진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했던 행보 덕일까. 신드롬을 일으켰던 '범죄도시2'와 '나의 해방일지' 출연이 2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 영화 '댓글부대'의 배우 손석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얼핏 보면 단기간에 이룬 성과 같지만 2011년 연극 '오이디푸스'를 시작으로 '센스8', '마더', '최고의 이혼', '60일, 지정생존자', '멜로가 체질'까지 부단히 달려온 결과다. 그렇게 시대가 사랑하는 스타가 됐지만, 찬란한 과실보다 치열한 제작 현장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스타라는 인지는 거의 못해요. 개인적으로도 안 하려고 해요. '스타라는 걸 인지해야 사회적인 책임을 질 거 아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전 배우로서 지는 책임이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 '댓글부대'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석구는 '대세', '스타'라는 표현에 겸손한 손사래를 쳤다. 다만 "다른 분들이 날 이렇게 본다는 것에 대한 인지가 많이 안 됐던 것 같다"며 '나의 해방일지' 시청자들이 보내준 사랑에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시청자분들이 구자경이라는 사람 때문에 나조차도 캐릭터로 덮어서 보고 계셨다는 걸 알았다면 제가 안 했을 선택도 꽤 많았을 거라고 봐요. 그런 환상이 있다면 제가 책임감을 느낄 거잖아요. 그걸 좀 더 간직하고 싶은 팬분들이 있을 텐데 거기서 너무 빨리 벗어나면… 거기에 무지했던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을 하는 데 포커스가 돼 있어서. 지나고 나니까 그런 분들은 서운했겠다 싶더라고요."

멜로 팬들 입장에선 아쉬웠을 선택이지만, 연기와 사람을 탐구하는 손석구의 행보는 숨 가빴다. 지난달 공개된 '살인자ㅇ난감'의 강력계 형사 장난감 역을 통해 진한 수컷 냄새를 풍겼던 그는 이번 작품 '댓글부대'에서 기자 임상진 역을 맡아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 영화 '댓글부대'의 배우 손석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대본을 볼 때 '상업영화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영화를 찾아요. 도전의식을 자극하지만 상업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어야죠. 그런 밸런스를 가진 영화가 전 좋더라고요. OTT,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그런 것을 찾는데, '댓글부대' 같은 경우 그런 것들로 가득했던 영화라고 봐요. 영화적 요소가 있는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인 사회상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특히 요즘 온라인 세계에 사는 게 숨 쉬는 것처럼 편한 분들께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 얘기라고 느끼면서 볼 수 있겠다… 사회의 모습을 소통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재미 플러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댓글부대'는 대기업에 대한 기사를 쓴 후 정직 당한 기자 임상진에게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익명의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손석구는 자신의 오보가 조작된 것임을 알고 판을 뒤집으려는 기자 임상진 역을 맡아 활약한다. 손석구는 기자 출신 작가인 장강명 작가를 만난 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작가님은 기자 출신이니까 바이브를 보고 싶었어요. 같이 중식 먹으면서 별 이야기는 안 했어요. 전 기자분들을 접할 기회가 매체밖에 없었기 때문에 편견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실제로 어떤지, 특종과 헤드라인에 열의를 갖고 좇는 게 맞는지, 그런 것들 여쭤보고…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특별할 게 없구나. 전 캐릭터 취재할 때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보단 '그래, 사람 다 비슷하네' 안정감을 얻기 위해 하는 것 같아요."


   
▲ 영화 '댓글부대'의 배우 손석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강렬한 액션 신이 돋보였던 '범죄도시2', '카지노' 속 모습과는 결이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댓글부대' 속 손석구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만나 다채롭게 반응하며, 풍부한 화학작용을 선보인다.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연기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힘 있게 분출하는 액션이나 몸, 말로 하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반응하고, 듣는 거요."

영화에서는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팀알렙의 리더 찡뻤킹(김성철), 팀알렙의 스토리 작가이자 댓글부대의 제보자 찻탓캇(김동휘), 온라인 여론 조작에 빠져든 팀알렙의 키보드 워리어 팹택(홍경)이 등장한다. 이중 김동휘와는 합숙까지 할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됐다.

"동휘는 바른 청년이에요. 바를수록 거리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숨기거나 빼거나 하는 게 없어요. 첫날부터 '궁금해요', '밥 먹어요', '감독님과 같이 봐요' 그런 걸 걔는 잘해요."

김동휘의 적극적인 모습은 손석구와도 닮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당시 일면식도 없던 이병헌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손석구의 일화는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이)희준이 형한테 전화해서 대본 물어볼 때도 있고… 선배가 아니더라도 잘 물어봐요. 근데 그건 제 성격이 외향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궁금한 걸 많이 물어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안 하면 단절되기도 하고… 그리고 물어봤을 때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카지노'로 호흡한 최민식이 "고시 공부하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작품에 열정적인 손석구다. 이에 대해 묻자 손석구는 "대본을 탐구하는 방식이 배우마다 다르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며 겸손하게 눙쳤다.

"전 촬영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백과사전 외우듯 끝내는 스타일이에요. 현봉식 배우의 경우는 현장에 대본이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요. (대본을) 안 들고 오니까 열심히 하는 티가 안 나는 거지. 전 퇴근하면 안 하거든요. 근데 해석하는 게 바뀔 수 있으니까 계속 대본을 봐요. 누군가는 대본에 엄청 뭘 적고… 옛날에 '최고의 이혼' 할 때 차태현 선배가 '너처럼 대본 깨끗한 애 처음 본다'고 하셨을 정도로 전 대본에 뭘 적진 않아요."


   
▲ 영화 '댓글부대'의 배우 손석구가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최근 1인 기획사 겸 제작사를 설립한 손석구는 배우 겸 제작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실의 복잡성 속 참자아를 찾고,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관객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전 항상 연기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제가 하는 일은 절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날 보고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게 행복한 방법이구나'라고 말할 때, 그런 내용의 글을 볼 때 '연기 잘해요', '영화 좋아요' 이런 말보다 좋아요. 그게 나름대로 제 역할이라고 해야 할까,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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