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기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근 외교부가 주도하는 ‘한미 대북정책 공조 협력을 위한 협의체’가 신설되자 통일부는 물론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이후 외교부는 회의 이름을 ‘한미 안보 분야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조치를 위한 협의’로 바꾸고 국방부와 통일부까지 참여하도록 했으나, 통일부가 이 회의에 불참하면서 외교부와 겪고 있는 갈등 국면을 전면에 드러냈다.  

짧게 잡아도 노무현정부 이전부터 정부의 대북정책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있는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남북한이 주도해 한반도 문제를 풀자는 주장 속엔 미국이 좌우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반발이 내포돼있고, 이는 분단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한반도 분단이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지속될 것 같다.

그런데 자주파-동맹파 갈등은 주로 진보정부에서 나타났지만 정권마다 그 양상이 달랐다. “‘반미’면 좀 어떠냐”는 말로 유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이 전면에 나서 자주파-동맹파 갈등의 파고를 넘었다면, 문재인정부에선 정권 초기부터 북한이 전격 호응해 남북대화가 성사되면서 자주파가 주도하는 대북정책이 갈등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재명정부에서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이종석 국정원장 등 ‘자주파의 원조’가 재등장한 이유도 있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동안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주파와 완전히 결이 다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존재도 한몫하는 것 같다.
 
얼마전 통일부와 외교부가 같은 시간 진행한 2026년도 업무보고에서 자주파-동맹파 갈등은 정점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남북 적대관계가 완화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는) 통일부가 해야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통일부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통일부·외교부 업무보고를 마친 뒤 조현 외교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2025.12.19./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 제공]

이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자주파-동맹파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교통정리가 있었는지’란 질문을 받고 "사실 그런 논란은 없다. 실용외교파만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나왔듯이 목표는 같지만 방법론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는 정동영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까지 4개월이 관건적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한 당근책으로 제시한 대북제재 완화, 남북과 중국을 잇는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건설, 남북과 중국 사이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환승 관광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통일부 업무보고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슴이 뛸 정도로 저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면서도 ”방법론은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통일부에서 보고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교통정리를 새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외교부는 통일부가 제시한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이 “외교정책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정 장관은 업무보고에서 ‘한국의 한반도평화특사 임명 및 미국의 대북특별대사 지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구성을 비판하면서 NSC 주도 의지도 드러냈다. 정 장관은 1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직접 중국을 방문할 구상도 하고 있다. 
 
이처럼 통일부와 외교부가 역할분담인지 주도권싸움인지 모를 평행선을 걷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 대통령은 “각 부처가 고유한 입장을 갖고 있는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중국 등을 다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역대 정권에서 외교부와 통일부는 어느 한쪽이 주도하면 다른 한쪽은 소외되는 관계였지 협업해본 전례가 드물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대로 경색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재 완화나 철도, 관광 등 경협 얘기부터 나오는 것은 분명 부조화다. 이런 ‘부조화의 카드’조차도 북한 문제의 난해성을 감안해 추진해봐야 한다면 먼저 통일부와 외교부가 같은 입장이어야 할 것이다. 당장 우리 안에서 서로를 납득시킬 수 없는 사안으로 주변국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관련부처가 협업해 주변국에 외교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상황이지 내부에서 주도권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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