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9월 12일 공포된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법이 3월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청노동자의 교섭권 보장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시행 9일 만에 하청 노조가 287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683건의 교섭을 요구하는 등 경영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새로운 노동법 시행과 함께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기득권 정규직 보호와 강성 노조의 관행에 갇혀 '갈라파고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만큼,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파도 속에서 노동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이에 본지는 미국 레이건과 영국 대처 등 선진국들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했던 노동개혁 성공 사례를 심층 분석한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 노동시장의 난맥상을 짚어보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노동의 자유와 법치'의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1970년대 말, 영국은 '유럽의 병자'였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노조는 수시로 파업을 일삼았고, 정부는 이들의 요구에 밀려 방만한 복지와 보조금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1979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이 고질적인 '영국병'의 근원이 무소불위의 노조 권력에 있다고 진단했다.
대처 개혁의 정점은 1984년 시작된 석탄노조(NUM)와의 정면 승부였다. 채산성이 낮은 탄광을 폐쇄하려는 정부에 맞서 노조는 1년 넘게 파업을 이어가며 국가 경제를 인질로 잡았다. 과거 정부들은 노조의 위세에 눌려 매번 굴복했지만 대처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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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년 2월 28일 마거릿 대처가 백악관에 방문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걷고 있다. 대처가 단행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조법 개정의 성공 사례는 향후 레이건 행정부의 '레이거노믹스(공급 중시 경제학)'의 정책 모델이 된다. /사진=마거릿 대처 재단 제공 |
◆ 석탄노조와의 '1년 전쟁'… 타협 없는 원칙의 승리
그녀는 파업에 대비해 미리 충분한 석탄 재고를 확보했고,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했다. 결국 1년 뒤 노조는 아무런 소득 없이 복귀했으며, 이는 영국 노동 역사상 노조의 독주 시대가 저물고 '법치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대처는 단순히 파업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적 뿌리를 바꿨다. 세 차례에 걸친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파업 전 조합원 비밀투표 의무화 △해당 사업장과 무관한 '연대 파업' 금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명시 등을 확립했다.
이는 노조의 집단행동권은 존중하되, 과정상의 불법과 독선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개혁을 통해 영국의 노동 손실 일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기업들은 다시 영국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 민영화와 유산계급화로 노조 동력 차단
대처의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회 구조 재설계에 있었다. 대처는 영국항공(BA), 영국통신(BT) 등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기업들을 과감히 민영화했다. '세금으로 퍼주는 노조의 잔치'를 끝내고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게 되자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설 자리를 잃었다.
동시에 단행한 '공공주택 매각(Right to Buy)' 정책 역시 신의 한 수로 꼽힌다. 대처는 노동자들이 노조의 선동에 휘둘리는 이유가 '자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공공 임대주택을 거주자들에게 헐값에 매각했다.
노동자 계층의 자가 소유를 확대해 중산층을 늘리고, 공공 부문을 민영화해 주택 자산의 민간 이전을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실제로 내 집을 갖게 된 노동자들은 더 이상 파업으로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는 중산층으로 변모했고, 이는 노조 중심의 계급 투쟁 동력을 흔들었다.
대처 개혁의 성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대처 취임 전 1%대에 머물렀던 경제성장률은 1980년대 후반 연평균 4~5%를 기록하며 독일과 프랑스를 압도했다. 1984년 12%에 달했던 실업률은 1990년 7%대까지 떨어졌고 노동 손실 일수는 취임 전 대비 90% 이상 급감했다. 특히 영국의 제조 생산성은 연평균 4.7%씩 성장하며 당시 G7 국가 중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 유럽 우등생 만든 '기적'… 40년 만에 무너지나
그러나 40여 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영국은 대처가 고쳐놓은 체질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다시 침몰하고 있다. 최근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표심을 의식해 대처 시대의 핵심 규제들을 완화하고 복지를 비대화시킨 결과다.
파업 요건 완화로 인해 공공부문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으며, 관대한 복지 혜택을 악용해 구직을 포기한 '경제 비활동 인구'는 약 870만 명을 넘어섰다. 그 결과 영국의 잠재성장률은 다시 1% 내외로 추락하며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을 되찾았다.
영국이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0년대 보수당 정권은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수술하겠다며 '긴축'과 '노동 효율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대처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을 받는다. 노동 시장의 판을 새로 짜기 보단, 단순한 예산 삭감에만 집중해 오히려 노조에 강력한 파업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 '지지율 하락'을 두려워한 정치권이 노조의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기에 브렉시트 이후 동유럽 노동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며 심각해진 구인난은 "사람 없으면 나라가 멈춘다"는 노조의 압박에 정부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만들었다.
결국 영국의 사례는 개혁이 단순히 '규제 몇 개 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정치적 인기에 영합해 노조와 타협하거나, 철학 없는 예산 삭감에만 매몰될 경우 오히려 개혁 동력만 상실하게 된다. 대처처럼 노동 시장의 판을 바꾸는 거시적인 설계가 동반되지 않으면, 개혁은 언제든 포퓰리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대처의 개혁이 단순히 노조를 탄압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자산가로 만들고 기업에 경영의 자유를 돌려준 사회적 대수술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기득권 노조의 성벽을 허물고 법치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영국의 몰락을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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