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관심 끌만한 입장 표시 없지만 남북협력 위한 운신의 폭 확보”
“트럼프 대통령 3차 북미정상회담 언급, 전제 붙은 원론적 메시지”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무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내놓은 대북 메시지에 파격적인 제안은 없었다. 다만 남북, 북미 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북협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특히 비건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년동안 만나 내린 결론이 있고, 자신은 이에 따라 움직인다고 강조해 북미 정상간 신뢰를 강조했다. 

비건 대표의 일정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이 ‘그레이TV'와 가진 인터뷰에서 “도움이 된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3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보도되면서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의 이번 한국 방문은 앞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달 17일 미국을 방문한데 따른 답방 형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한미워킹그룹을 강하게 비난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4일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하라고 지시하면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비건 부장관의 한국 방문 소식이 전해졌고, 그가 남한에 와서 북한을 향해 내놓을 메시지에 관심이 쏠렸다.

가령 비건 대표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이나 종전선언, 한미워킹그룹 운영 방식 개선 등을 언급할지 여부와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주목받은 것이다.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해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와 함께 외교부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비건 대표는 이날 이도훈 본부장과 회의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협력은 한반도에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며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진전시켜나가는 한국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년간 여러 만남을 통해 내린 결론이 있다”며 “그 비전은 더 견고한 한반도 평화, 한반도 핵무기 제거, 한국 사람들을 위한 더 밝은 미래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이런 사안에 대해 협상할 준비가 됐고 권한 있는 카운터파트(협상 상대)를 임명하면 북한은 우리가 그 순간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결국 지난 북미정상회담 때 제시한 미국의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것으로 어떤 파격적인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계획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구나 비건 대표는 김 위원장이 아직까지 자신의 카운터파트도 지명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 대선 이전에 북한과의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외교적 업적을 이루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재확인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실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보다는 북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메시지 차원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도 “‘우리는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We did not request a visit)는 비건 대표가 북에 대해 던진 이 한마디에 이번 방한의 의미와 방향을 알 수 있다”면서 “대북특별대표보다 국무부 부장관으로서 한미동맹 현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게 이번 방한의 주목적이며 현 시점에서 북한에 새로운 제안을 할 상황과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비건 대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겨냥해 “우리는 북한에 방문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방문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들과 동맹국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최 1부상은 4일 담화에서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며 대화를 거부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최 1부상의 담화는 그동안 미국이 북미대화를 보여주기 식으로 해왔다고 비난한 것으로 이날 비건 대표는 최선희 1부상의 지시도, 볼턴 전 보좌관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는 말로 강하게 응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내린 결론을 토대로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임을출 교수는 “비건 대표가 북미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관심을 끌만한 입장표시는 안했다”면서 “미국 대선이 임박하면서 현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한미 대화로 남북협력을 통해 북미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만드는데 있어서 우리정부가 일정한 운신의 폭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은 이제 우리 정부에게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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