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31일 협의체 전격 합의…문대통령, 첫 입장 “남용 우려 검토”
같은 날 유엔특별보고관 ‘표현의자유 침해 우려’ 서한 외교부 접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국회에서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가 한달 뒤로 연기되면서 청와대의 여당에 대한 설득 과정이 있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 등의 우려에 이어 유엔에서 ‘법안 재검토 권고’ 입장을 담은 서한을 한국정부에 발송한 사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소위 단독 처리 등 밀어붙이기에 속수무책으로 30일 본회의에 상정될 뻔했던 이 법안 처리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여야는 31일 이 법안을 다음달 27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8인의 논의기구를 설치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처음으로 언론중재법에 대한 입장을 내고 “여야가 언론중재법 협의체를 구성해 추가 검토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송영길 민주당 대표 등을 접촉한 사실을 볼 때 청와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여야의 언론중재법 논쟁 과정을 무거운 침묵으로 지켜봤다. 청와대도 기자들의 연이은 관련 질문에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여야가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하자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동시에 “악의적 허위보도나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자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일 ‘문 대통령이 여당의 강행 처리를 만류했는지’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법안 처리를 둘러싼 국회 상황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를 정무수석이 전달했다. 법안 처리는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입장에 대해 변화가 없지만 국회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이어 이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마지막 국정과제가 100여가지이다. 정기국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어야 생산적인 국회가 될 것이고,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여당이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의 언론중재법에 대해선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연달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리고 강경 기조로만 일관하던 송영길 대표 등 여당 지도부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이달 하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과도 무관치 않아보인다.  

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대상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한 협력을 강력하게 요청해왔고, 한미는 대북 인도적 지원 협력과 별개로 북한에 관여하라 다양한 정책을 협의해 북한이 호응해올 때 단번에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임기 중 마지막이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유엔총회에 대면으로 참석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이에 앞서 국내 언론법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지적을 일단 피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관훈클럽·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대한언론인회 등 언론 7단체는 30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사진=미디어펜

언론중재법에 대해선 앞서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저널리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한 바 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특히 이번 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에 대해 “허위정보에 대한 세부 정의가 없고, 허위·조작 여부와 가해자의 고의·중과실을 판단할 방법에 대한 해석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사무직노조(UNI) 역시 같은 날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한국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UNI는 이날 아시아태평양 협의회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과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1일 한국정부에 지난 27일 발송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 서한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통상 이런 경우 서한을 발송하고 60일 이후에 공개하는 관행에 비해 이례적으로 신속한 것으로 그만큼 언론중재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OHCHR의 한국정부에 대한 서한은 국내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지난달 23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진정서를 보낸데 따른 것이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국제자유권규약과 세계인권선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며 “한국정부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외교부에 보냈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이 서한을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바로 이날 국회에선 여야가 언론중재법 처리를 한달 미루고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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