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생일 명칭 ‘태양절’ 대신 ‘4.15’로 변경한 듯
‘남북 2국가론’ 주장과 맞물려 ‘홀로서기’란 분석 나와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올해들어 북한에서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을 지칭하던 ‘태양절’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가운데 김정은을 ‘태양’으로 부르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7일 노동신문에 실린 조총련이 김정은에게 보내는 글에서 ‘주체조선의 태양’이란 표현이 포착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도 ‘강동온실 살림집’ 행사에서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반면, 그동안 김일성 생일을 기념해 진행해온 ‘태양절 요리축전’은 ‘전국요리축전’으로 이름이 변경됐으며, 북한매체에서 ‘태양절’ 언급은 거의 사라졌고 ‘4월 명절’ ‘4.15’란 명칭이 등장했다. 15일 당일에도 노동신문에선 단 하나의 기사의 부제목과 본문에서 모두 두 차례 태양절이 언급됐다. 

통일부는 김일성의 생일을 지칭하는 표현이 잠정적으로나마 기존 태양절에서 4.15로 바뀐 것으로 파악했다. 태양절은 1997년 7월 8일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르면서 주요 5개 기관 공동결정서를 채택하면서 주체연호를 채택하고, 태양절을 제정한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제정한 태양절을 폐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지도자에 대한 ‘태양’이란 표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김정은을 우상화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김정은이 ‘홀로서기’를 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여러 정황을 볼 때 김정은에 대한 독자적 위상 강화의 일환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면서 “김일성 생일 계기 최초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보도가 없는 것도 특이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김정은이 김일성 생일을 기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는 북한매체의 보도가 일절 없었다. 그해 노동신문 등은 간부들의 참배 소식만 전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김일성 생일에 참배하지 않은 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 작년인 2023년에도 간부들의 참배 소식만 보도됐다.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하에 19일 신형 중장거리 극초음속미사일용 고체연료 발동기(엔진) 지상분출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노동신문이 20일 보도했다. 2024.3.20./사진=뉴스1

또 김정은은 작년과 올해 김정일 생일에도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참배하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간부들만 참배했다고 북한매체들은 보도했다.

이 같은 김정은의 ‘선대 지우기’ 행동은 남북한 2국가론을 내세운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지난 1월 김일성 업적을 기리기 위해 평양시내에 설치됐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비 철거가 노골적인 행보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김정은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며 남북 2국가론을 주장했다.

김정은의 2국가론은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현 정세에 맞춰 ‘신냉전 외교’를 펼치면서 러시아·중국과 더욱 밀착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김정은이 선대 지우기에서 나아가 할아버지 우상화에 사용하던 ‘태양’이란 표현을 스스로 사용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올해 40세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은이 집권 12년이 됐는데도 자신의 생일인 1월 8일을 기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김정은이 생일을 내세우지 못하는 것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친모 고용희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있다. 북한에선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최고지도자조차도 이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유난히 ‘할아버지 따라하기’로 일관해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은 백두혈통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의 기반이랄 수 있는 할아버지에 사용했던 우상화 표현마저 재활용하고 있어 추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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