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 정부가 탈(脫)중국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위해 5억 달러(약 670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국내 배터리 소재 3사(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엘앤에프)는 이번 보조금을 마중물 삼아 북미 현지 밸류체인의 수직 계열화를 구축할 기회를 잡게 됐다. 이번 보조금은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우려집단(FEOC) 규제가 핵심 광물 전반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K-배터리 소재 업계의 숨통을 틔워줄 전망이다.
폐배터리 건식제련 자원순환기술./사진=산업부 제공
23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핵심광물에너지혁신사무소(CMEI)는 최근 배터리 핵심 광물 가공 및 재활용 설비 확충에 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NOFO)을 공고했다. 미 에너지부는 오는 26일 관련 웹비나를 개최하고 다음 날인 27일 비구속적 의향서(LOI)를 접수할 예정이다.
이번 보조금의 성격과 타깃은 명확하다. 미국 현지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조치에 대해 "적대적 외국 행위자(중국)에 대한 의존을 끊고, 미국이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전기차 보급을 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미국의 미래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산업을 뒷받침할 에너지 안보 차원의 결단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이 장악한 광물 가공망을 미국 본토로 강제 이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주목할 점은 이번 보조금의 핵심 지원 분야에 단순 광물 제련과 전구체 생산을 넘어 '폐배터리 재활용'이 전면으로 등판했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환경 규제로 인해 미국 본토 내에서 신규 광산을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속도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현지에서 발생하는 제조 스크랩과 수명이 다한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전구체를 만들고, 이를 다시 양극재로 가공하는 '현지 자원 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국내 배터리 소재 업계는 이번 지원을 통해 북미 현지에 완결형 자원 순환 밸류체인을 구축함으로써,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막대한 물류비를 감축하고 IRA 보조금 수령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강력한 무기를 확보하게 됐다.
◆ 소재 3사 3색 전략…밸류체인 완성 속도전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라는 높은 진입 장벽 앞에서 국내 배터리 소재 3사는 각사의 밸류체인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북미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코프로는 막강한 합작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그룹 차원의 배터리 생태계를 북미에 그대로 이식한다. 현재 에코프로는 포드, SK온과 손잡고 캐나다 퀘벡주 베캉쿠아에 대규모 양극재 합작공장을 건설 중이다. 에코프로는 이곳을 핵심 거점으로 삼아, 향후 전구체 생산(에코프로머티리얼즈)과 폐배터리 재활용(에코프로씨엔지) 밸류체인까지 순차적으로 북미 현지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원료 추출부터 최종 양극재 생산까지 한곳에서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현지 원가 경쟁력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엘앤에프는 현지 재활용 선두 기업과의 끈끈한 동맹 효과를 통해 투자 효율을 극대화한다. 미국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인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와의 파트너십이 그 핵심이다. 엘앤에프는 레드우드가 미국 내에서 추출한 핵심 광물을 자사의 양극재 가공 라인에 즉각 투입하는 구조를 짠다. 직접 대규모 재활용 공장을 짓는 대신 현지 파트너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 리스크를 대폭 줄이면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현지 순환 고리를 완성할 전망이다.
국내 유일의 양·음극재 동시 생산 기업인 포스코퓨처엠은 밸류체인 내재화를 통한 정면 승부를 택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이번 미 에너지부 보조금을 활용해 현지 인조흑연 및 전구체 제련 설비 구축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특히 흑연은 중국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수급에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품목이다. 흑연의 탈중국화 압박이 거센 가운데, 포스코퓨처엠은 북미 현지에서 광물 가공 역량을 완벽히 내재화하며 끌어올린 밸류체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압도적인 공급 협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이번 5억 달러 보조금 공고는 캐즘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조 단위 투자가 불가피했던 국내 소재 기업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기회"라며 "어느 기업이 현지 완성차(OEM) 및 재활용 파트너들과 가장 단단한 동맹을 맺어 미국 정부의 안보 심사를 통과하느냐가 향후 북미 배터리 소재 시장의 주도권을 가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