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국내 유통업계의 경쟁 축이 가격과 배송 속도를 넘어 ‘인공지능(AI)’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존의 키워드 검색 방식 대신 챗봇과 대화하며 상품을 탐색하고, 주문부터 결제, 배송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AI 커머스’가 향후 유통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백화점 '더현대하이' 카카오툴즈 구동 화면./사진=현대백화점 제공
13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OpenAI)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완결형 AI 커머스’ 모델 구축에 착수했다. 이마트 내 모든 상품에 대한 검색부터 결제, 배송까지 쇼핑 전 과정을 챗GPT를 통해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챗GPT 대화창에 “내일 저녁 가족 식사 메뉴를 준비해줘”라고 입력하면 AI가 필요한 쇼핑 목록을 생성해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와 예약 배송까지 처리하는 식이다.
신세계는 연내 이마트 앱에 ‘AI 쇼핑 에이전트’도 탑재할 예정이다. 고객 구매 패턴과 선호도를 학습해 쇼핑 목록을 제안하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 시 자동 주차 등록 등 편의 기능도 지원한다. 신세계그룹은 AX(AI 전환) 협력체계도 구축해 다양한 방식으로 AI 내재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은 “AI 커머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이분법을 넘어 미래 유통시장의 뉴노멀을 새롭게 정의하게 될 것”이라며 “고객맞춤형 초개인화 AI 커머스를 선도하고 그룹 체질 자체를 ‘AI 퍼스트’로 내재화시켜 ‘유통의 신세계’를 끊임없이 고객중심으로 혁신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도 각사 강점을 앞세운 AI 기술로 ‘대화형 커머스’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는 업태별 특성을 반영한 전문 AI 에이전트를 전면 배치했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2일 AI 쇼핑 에이전트 '하비(HAVI)'의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검색어를 입력하는 대신 대화하듯 질문하면 원하는 상품을 찾아주고 비교·추천까지 지원하는 서비스다. 가전제품은 스펙이 복잡하고 설치 환경이 제각각 만큼, 고객이 구매 전 정보를 비교·분석하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롯데온은 패션에 특화된 ‘패션 AI’를 선보였다. 원하는 패션 스타일과 착용 상황을 입력하면 맞춤 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로, 단순 검색으로 원하는 상품을 찾기 어려운 패션 카테고리 특성을 반영했다. '봄 하객룩 원피스'나 '출근용 블라우스'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입력하면 이에 적합한 상품을 제안받을 수 있으며, '화사한 색상의 가디건', '하늘하늘한 티셔츠' 등 감성적인 표현도 인식해 추천 결과를 제공한다.
롯데온이 출시한 '패션 AI' 서비스 구동 화면./사진=롯데온 제
현대백화점은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 손잡고 큐레이션 전문몰 ‘더현대 하이’의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카카오톡 채팅 환경에서 AI가 맞춤형 정보를 제안하는 ‘카카오툴즈’에 입점해, 현대백화점이 선별한 브랜드와 상품 등 DB를 바탕으로 사용자 맞춤 쇼핑 정보를 제공한다. 상품 관련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더현대 하이 콘텐츠를 활용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고, 상세 정보 확인이나 결제가 필요한 경우 더현대 하이 앱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현대백화점은 외부 플랫폼과 협업을 강화해 옴니 쇼핑 경험을 한층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유통 빅3’가 일제히 AI 에이전트 도입에 힘을 쏟는 이유는 소비자의 상품 탐색 과정이 ‘검색’에서 ‘대화’ 기반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일상생활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상품 정보 확인과 비교에 AI를 활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거 챗봇 서비스는 단순히 고객의 이전 구매 이력에 기반해 추천 상품을 나열해 보여주는 수준이었지만, 향후 AI 커머스는 고객의 현재 상황과 의도 등 맥락을 읽어내고 상품 탐색부터 주문·배송까지 대리하는 ‘개인 비서’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고객의 쇼핑 피로도를 낮출 뿐 아니라 적합성 높은 상품 추천을 통해 구매 전환율까지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가 일일이 수많은 필터를 설정하고 수십 개 상품을 비교해야 했던 번거로운 과정을 AI가 대신 수행해주기 때문이다. 한 플랫폼 안에서 상품 탐색부터 구매까지 전 과정이 이뤄지는 만큼, 강력한 고객 ‘락인(Lock-in)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존 유통 사업에서 쌓은 고객 데이터를 AI 기술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결합하는지가 향후 미래 유통 시장 주도권을 가를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AI 기반 커머스는 소비자가 자신의 니즈를 키워드로 구체화하지 않더라도 상황과 맥락에 맞는 최적 제품을 추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라며 “상품 판매를 넘어 고객 응대 및 사후 지원 등 쇼핑 전반을 촘촘히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 능력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