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북미발 초대형 에너지 및 첨단산업 인프라 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새로운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횡단 송유관 건설 재개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텍사스 메가팹 투자가 맞물리며 중장비 수요를 자극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경쟁사들의 진입이 제한된 시장 구조에서 북미 영업망을 탄탄하게 다져온 K-건설기계 기업들이 밸류체인 전반의 수혜를 입을지 주목된다.
북미발 초대형 에너지 및 첨단산업 인프라 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새로운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사진=제미나이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4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캐나다-미국 국경 횡단 송유관 프로젝트 허가에 전격 서명했다. 이는 과거 환경 문제 등으로 전면 백지화됐던 대형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 부활한 것으로 멈춰있던 캐나다산 원유의 미국 내륙 수송망 구축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됐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텍사스주에 550억 달러(약 75조 원)를 투입해 초대형 반도체 제조 시설인 테라펩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더했다. 첨단 우주·AI 산업의 자립을 위한 핵심 부품을 미국 본토에서 직접 생산하겠다는 의지로, 단일 공장 기준 역대급 규모의 자본이 쏟아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의 재개를 넘어 북미 대륙 전체의 '인프라 붐'을 상징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인 에너지망 재건과 첨단 제조기지 내재화라는 거시적 목표가 동시에 실행에 옮겨지면서 공사 기초 단계에 투입되는 토목용 건설 장비 수요가 대규모로 연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 중대형부터 콤팩트까지…HD현대·두산밥캣 '쌍끌이' 조건 형성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들은 K-건설기계 업계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제품 라인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양상이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송유관을 매설하기 위해서는 험지를 개척하고 깊은 관로를 파낼 수 있는 30톤급 이상의 중대형 굴착기와 휠로더의 투입이 필수적이다.
반면 텍사스 테라팹과 같은 초대형 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공정 단계별로 다양한 장비가 요구된다. 초기 부지 평탄화에는 대형 장비가 쓰이지만 이후 복잡한 유틸리티 배관 작업이나 공장 내부의 세밀한 자재 이동에는 회전 반경이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콤팩트(소형) 장비가 주력으로 활용된다. 인프라의 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하드웨어의 체급이 극명하게 나뉘는 구조다.
북미 시장에 공을 들여온 HD건설기계와 두산밥캣은 이러한 수요 다변화에 대응할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중대형 라인업에 강점이 있는 HD건설기계가 험지의 파이프라인 뼈대를 구축한다면 소형 장비의 글로벌 강자인 두산밥캣은 메가팹의 세부 부지 조성과 마감 공정을 담당하며 밸류체인을 양분해 공략할 수 있는 시너지 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 닫힌 문턱 앞 중국산…기울어진 운동장 속 '선점 기회'
무엇보다 K-건설기계가 북미 시장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핵심 배경에는 이해관계자 간의 지정학적 역학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에서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쉬공(XCMG), 사니(SANY) 등 중국 업체들은 미국의 공급망 배제 기조와 고율 관세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더욱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국가 기간망(송유관)과 첨단 반도체 보안 시설(테라팹) 건설 현장에 중국산 장비를 투입하는 것에 대한 발주처의 거부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중국 경쟁사들이 주요 입찰에서 원천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텔레매틱스(원격 장비 관리) 등 기술력을 입증한 한국 기업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건설기계 업계 관계자는 "북미의 횡단 송유관과 초대형 반도체 팹 건설은 수년에 걸쳐 대형 굴착기부터 소형 스키드 스티어 로더까지 전방위적인 장비 투입을 요구하는 굵직한 사이클"이라며 "지정학적 리스크로 경쟁자들의 진입이 제한된 만큼, 탄탄한 현지 딜러망과 고품질 라인업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둔 K-건설기계가 이번 북미 인프라 붐의 실질적인 과실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