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중동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의 비용 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단순 연료비 부담 확대 수준으로 여겨졌다면, 최근에는 선박 연료인 벙커유 공급 자체의 불안정성이 커지며 해운업계 전반의 운영 전략까지 흔드는 모습이다.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블레싱호./사진=HMM 제공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지속적으로 고조되면서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실제 지난 13일 새벽 오만 해안에서 인도 국적의 목조 화물선 ‘하지 알리’호가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중동 해역을 둘러싼 긴장감도 한층 높아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해운·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는 단순 운항 부담을 넘어 ‘연료 물류 리스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한 국제유가 상승을 넘어 선박 연료인 벙커유의 공급 지연과 가격 변동성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해운사들의 운항 계획 자체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VLSFO(저유황 벙커유) 기준으로 보면 싱가포르 현물 가격은 평시 톤당 500~6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지만, 최근 중동 리스크 확대 이후에는 800~900달러 수준까지 치솟으며 평시 대비 50~60% 수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단순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공급 안정성 자체도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국제유가와 벙커유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일부 선박들이 싱가포르 등 주요 항만에서 원활한 연료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리스크가 연료 가격 변동을 넘어 실제 선박 운항 일정과 항만 운영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국내 선사를 비롯한 해운업계에서는 연료 확보 상황을 고려한 운영 전략 재조정에 나서는 분위기다. 연료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 지연과 항로 불확실성까지 동시에 발생하면서 운항 계획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응 방식은 감속운항(slow steaming)이다. 선박 운항 속도를 낮춰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미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업계에서는 표준 운영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 역시 연료 효율 중심 운영 기조를 유지하며 장거리 노선에서 속도 조정과 탄력적 스케줄 운영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속운항은 단순한 비용 절감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속도를 낮추면 연료 소비는 줄어들지만 선박 회전율이 감소해 처리 물동량이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최근 감속운항 확대를 친환경 정책이라기보다 ‘생존형 운영 전략’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벌크선 업계 역시 상황은 유사하다. 팬오션과 대한해운 등 벌크선사들은 철광석·석탄·곡물 등을 장거리 운송하는 특성상 연료비 민감도가 높다. 특히 벌크선 시장은 컨테이너선 대비 운임 전가 구조가 제한적인 만큼 연료비 상승이 수익성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내 해운업계는 한국이 정유·석유제품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완충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대형 정유사를 중심으로 높은 정제능력을 갖추고 있어 벙커유를 포함한 석유제품 수출 기반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이번 사태를 단기 변수보다는 구조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과거 해운업이 운임 중심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연료 가격, 공급망 안정성, 항로 리스크가 동시에 실적을 좌우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더 이상 단순 운송 산업이 아니라 연료와 항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리스크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는 운임보다 연료 효율성과 운영 안정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