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밀가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제분사들의 장기간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약 6년간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사전에 합의하며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라면·국수·제과·제빵 업체 등에 공급하는 밀가루 가격과 공급 물량 등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6710억 4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제재 대상은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업체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 기준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87.7%를 차지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담합 기간 동안 총 24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 공급 물량과 거래처별 공급 순위 등을 사전에 합의했다. 대표자급 회합과 실무자 회의를 병행하며 합의 내용을 구체화했고, 직접 참석하지 않은 업체에는 유선 연락 등을 통해 내용을 공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담합은 2019년 농심 납품 경쟁이 격화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일부 업체가 공급 단가를 낮춰 점유율 확대에 나서자 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안정적인 물량을 유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이후 담합 범위는 농심·팔도 등 대형 수요처에서 중소형 거래처와 대리점 전체로 확대됐다. 초기에는 일부 제품 가격만 조정했지만 2021년 이후에는 밀가루 전 제품 가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제분사별 밀가루(중력분) 평균 판매가격 추이./자료=공정위
특히 공정위는 국제 원맥 가격 변동기에 담합 효과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원맥 가격이 오르던 시기에는 가격 인상 폭과 시점을 사전에 맞춰 신속하게 가격을 올렸고, 이후 원맥 가격이 하락한 뒤에는 가격 인하 폭을 최소화하거나 인하 시점을 늦췄다는 것이다.
실제 담합 기간 중인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2019년 말과 비교해 업체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원가 상승기에는 최대 수준으로 빠르게 가격이 인상됐고, 원가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가 늦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던 기간에도 담합은 이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22년 하반기부터 밀가루 가격 안정을 위해 총 471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업체들은 담합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상위 업체와 하위 업체 모두 담합 이후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점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업체들은 경쟁 없이 안정적인 공급 물량을 확보하며 시장점유율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향후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함께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또 지난 1월 검찰 고발 요청에 따라 7개 업체와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한 고발 조치도 완료했다고 밝혔다.
식품업계에서는 밀가루가 주요 원재료인 만큼 장기간 가격 공조가 이어진 점에 대해 시장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밀가루는 라면·국수·빵·과자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의 핵심 원재료”라며 “시장점유율 90%에 가까운 사업자들이 장기간 은밀하게 담합한 행위를 적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업체는 2006년에도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바 있는데 다시 담합을 반복했다”며 “가격재결정 명령 등을 통해 왜곡된 시장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