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정부가 아파트 단지 내 전력설비 고장으로 발생하는 장기 정전에 대응하기 위해 ‘24시간 내 임시 전력공급 체계’ 구축에 나선다. 화재나 침수 등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최대 48시간 안에는 전력공급이 가능토록 대응 시스템을 정비해 국민 불편과 안전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아파트 단지 내 전력설비 고장 현황./자료=기후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장기 정전사고를 계기로 공동주택 정전 대응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시 수전실 화재로 약 1500세대가 일주일 가까이 정전을 겪으면서 주민 불편이 커졌고,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후부 관계자는 “앞으로 아파트 단지 내 설비 고장으로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한국전력공사 등이 원칙적으로 24시간 이내에 임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화재나 침수 등 피해 규모가 큰 상황에서도 48시간 이내 전력공급이 가능하도록 정전 대응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14일 김성환 기후부 장관 주재로 한국전력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기관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관련 대책을 확정했다.
그동안 아파트 단지 내부 설비는 사적 영역으로 인식돼 전력설비 고장이 발생해도 정부와 한전이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는 국민 생활의 필수재인 만큼 장시간 정전이 지속될 경우 국민 일상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판단한다”며, 임시 전주 중심의 복구 방식에서 벗어나 지상변압기와 케이블을 활용한 지중설비 기반 임시 복구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존에는 아파트 단지 내 임시 전주를 설치해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현장 여건에 따라 설치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굴착공사 이후 복구 비용 부담과 조경 훼손 우려 등으로 주민들이 설치를 꺼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후부 관계자는 “지상변압기와 케이블을 활용한 지중 방식은 굴착 없이 현장에 장비를 바로 설치할 수 있어 대응 시간이 단축되고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공사도 기존 방식보다 신속성과 공급 효율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전 관계자는 “기존 가공 방식은 전주를 설치해야 하는 전통적 방식이었다”며 “지상변압기는 단일 기기로 공급 가능한 용량이 기존보다 3~4배 정도 크고 대단지 아파트에도 보다 빠르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응급 복구 장비 관리체계도 정비하기로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주·전선·변압기 등 응급복구 자재에 대한 보유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충분한 재고를 확보해 필요 시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긴급 복구 지원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준공 25년 이상,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를 대상으로 오는 6월까지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한다. 수전실 내 변압기와 저압 배전반 등 주요 설비 상태를 집중 점검해 정전 가능성을 사전에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유관기관 간 협업 체계도 강화된다. 기후부와 한전, 전기안전공사, 전기공사 관련 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원팀(One-Team)’ 협력체계를 구축해 응급 복구 장비 설치와 고장원인 분석, 복구 시공업체 연계 등을 공동 대응키로 했다.
아울러 기관별 역할과 대응 절차를 담은 통합 표준운영절차서(SOP)도 새롭게 마련된다. 정부는 실제 정전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을 통해 현장 대응체계의 실효성을 지속적으로 점검·보완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아파트 임시 전력복구 체계 마련에 정부의 역할 범위와 비용 부담 문제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아파트의 정전 원인은 기자재 및 차단기동작 정전이 약 76.7%, 하계 폭염기간에 43%가 발생했고, 20년 이상 노후됐거나 세대별 용량 부족에서 50%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후 설비 교체 책임까지 정부가 부담하는 것 아닌가, 아파트 사유재산 영역에 공공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아파트 외 공동주거시설에 대한 형평성, 긴급 복구에 소요되는 비용의 규모 집행 등이 거론된다.
이에 정부는 이번 대책이 노후 설비 교체 지원보다는 ‘정전 발생 이후 신속한 임시 전력공급 체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선을 그었다. 노후시설 예방책 중심보다는 정전 후 초기 대응을 어떻게 빨리할지에 대한 원칙과 체계를 앞으로 갖춰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정부 예산으로 아파트 노후 설비를 교체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장기수선충당금 등을 활용해 아파트 자체적으로 설비를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후 공동주택 증가에 따라 향후 설비 교체를 어떻게 유도할지, 제도적·금융적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또 이번 정책이 일반적인 정전 복구 시간을 ‘24시간’으로 설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대부분의 정전은 현재도 수시간 내 복구되고 있으며, 이번 대책은 화재나 대규모 설비 고장처럼 복구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전력공급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대응 원칙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