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대우그룹의 법인이 공식 청산된 지 25년이 흘렀다. 지난 2001년 5월 23일 계열사가 41개에 달하던 재계 2위 서열의 대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우가 구축한 개척 정신이 오늘날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흩어졌던 핵심 계열사들은 국내외 유수 대기업들에 인수되며 각 산업 생태계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고, ‘인재 사관학교’라 불리던 대우 출신 인력들은 한국 산업계 전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왔다.
2017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업 50주년 기념식에서 대우그룹 임원들이 김우중 전 회장(오른쪽)에게 김우중 어록을 헌정하고 있다. /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소 제공
나아가 고 김우중 회장이 말년에 펼친 청년 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여전히 결실을 보고 있어, 법인 청산은 실패의 기록이 아닌 대우의 유산이 우리 산업 전반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 크고 넓은 세계를 꿈꾼 34년 대우의 역사
사명에 ‘크고 넓은 세계’라는 의미를 담아 지난 1967년 중소 무역회사로 출발한 대우그룹은 창업주 고 김우중 뛰어난 경영 능력과 1970년대 중동 붐을 발판 삼아 고속 성장 궤도에 올랐다.
이후 섬유, 무역, 건설, 조선, 중장비, 자동차, 전자, 통신, 관광, 금융 등 광범위한 사업 부문을 아우르는 다각화를 이뤄냈으며, 1993년 선포한 ‘세계경영’ 전략을 바탕으로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 미개척 시장을 장악하며 현대, 삼성, LG와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과감한 외형 확장을 지속하며 한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으나, 누적된 재정난과 구조조정 실패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00년 주요 계열사 워크아웃과 함께 34년 만에 그룹 해체라는 비운의 결말을 맞이했다.
◆ 핵심 계열사, 각 산업 생태계 선두주자로 진화
대우그룹은 해체 됐지만, 일부 계열사들은 여전히 ‘대우’ 브랜드를 지키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잦은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치며 사명은 바뀌었지만, 사업을 지속해 나가는 곳도 상당수다. 그룹 차원의 영광은 과거의 기록이 됐지만, 전성기 시절 시장을 호령했던 주력 사업체들은 현재까지도 각 산업 현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상태다.
가장 먼저 대우자동차는 승용차 부문이 미국 GM에 인수돼 ‘GM대우’를 거쳐 현재의 GM한국사업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우 시절부터 축적된 소형차 개발·생산 역량은 현재 GM의 글로벌 전략 모델인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등의 성공을 견인하는 밑거름이 됐다. 상용차 부문은 인도 타타그룹에 인수돼 타타대우상용차로, 버스 부문은 자일대우버스로 각각 독립해 시장을 구축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장기간의 산업은행 관리 체제를 끝내고 지난해 한화그룹에 편입되며 한화오션을 출범시켰다. 대우 시절 확보한 세계 최고 수준의 LNG 운반선 및 특수선 건조 기술력은 한화의 방산·에너지 역량과 시너지를 내며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
대우건설 역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 관리를 거쳐 현재 중흥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자리 잡았으며, '푸르지오' 브랜드 파워와 리비아·나이지리아 등 해외 거점 플랜트 경쟁력을 바탕으로 건설업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후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트레이딩 역량을 그대로 흡수해 포스코그룹의 글로벌 에너지 및 식량·부품소재 사업을 이끄는 전초기지로 급성장했다.
이 외에도 대우증권은 미래에셋그룹에 인수돼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으로 통합됐으며, 대우전자느 위니아대우를 거쳐 대유위니아그룹에 편입된 바 있다.
◆ '대우맨' 인적 인프라와 후학 양성 'GYBM' 결실
조직은 흩어졌으나 대우가 배출한 인적 자산은 한국 산업계 전반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는 평가가 나온다. 특유의 공격적인 추진력과 현장 중심의 능력을 갖춘 대우 출신 경영진들은 국내 주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성장을 주도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고 김우중 회장이 그룹 해체 이후 심혈을 기울인 사회공헌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GYBM)’ 프로그램도 대표적인 유산이다.
지난 2011년부터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 현지 비즈니스 전문가를 양성해 온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청년 사업가를 배출했다. 이들은 현재 동남아시아 신흥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을 돕고 스스로 창업에 성공하는 등 '세계경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대우의 청산은 국내 기업들에 외형 확장 중심의 경영에서 벗어나 전략적 유연성과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냉혹한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우가 보여준 과감한 개척자 정신만큼은 저성장 기조에 직면한 현재의 한국 경제가 반드시 되살려야 할 가치라는 의견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대우는 자본과 자원이 부족했던 시절 오로지 사람과 기개 하나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던 기업”이라며 “5월 23일 법인 청산일은 실패의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우가 남긴 산업적 자산과 개척 DNA가 우리 산업 전반에서 어떻게 결실을 보고 있는지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