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특수에 힘입은 반도체 산업 독주로 국내 거시 경제 지표가 착시 효과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중화학 공업의 두 축인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의 생산 지표가 이례적인 급감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리스크로 인한 원가 압박과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판가 하락이 맞물리면서 국내 정유·석화사의 밸류체인이 심각한 가동률 저하와 마진 붕괴의 역학 구도에 노출돼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일 국가데이터처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 생산은 반도체(3.1%)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석유정제(-19.4%)와 자동차(-10.0%) 등의 부진으로 전월 대비 0.6% 감소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 역시 73.7%로 전월보다 1.2%p 하락하며 전통 제조업 생태계의 누적된 피로감을 드러냈다.
중동 리스크로 인한 원가 압박과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판가 하락이 맞물리면서 국내 정유·석화사의 밸류체인이 심각한 가동률 저하와 마진 붕괴의 역학 구도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석유화학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여수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4월 생산 19.4% 급감…가동률 회복세 이면 '마진 딜레마'
석유정제 생산의 전월 대비 19.4% 급감은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가 직면한 밸류체인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최근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등 정유사와 석화사들의 나프타분해설비(NCC) 및 정제 설비 가동률이 80%대를 회복하며 셧다운 위기는 넘겼지만 기업들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수익성 구간은 여전히 손익분기점(BEP)을 맴도는 수준이다.
이는 원재료 수입부터 최종 제품 판매로 이어지는 시장 구조가 붕괴된 데 기인한다. 원유 및 나프타 도입 단가는 중동 리스크로 인해 높은 원가 부담을 강제하고 있다. 반면 전방 시장의 내수 침체로 제품 판가 인상은 억제되는 샌드위치 역학에 갇힌 상태다. 실제로 4월 제조업 출하 동향에서 석유정제 부문은 내수(-11.4%)와 수출(-25.1%) 출하가 동반 하락하며 수급 불균형을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학제품과 석유정제의 재고 감소는 시장 수요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물량 소진이라기 보다는 어려운 수익 구조 속에서 기업들이 가동률을 조절하며 선제적인 재고 관리에 나선 고육책의 결과로 풀이된다.
◆ 중국 덤핑 공세 지속…석화업계, 스페셜티 밸류체인 속도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가장 큰 부분은 중국 석화사들이다. 중국 기업들이 자국 내수 침체로 소화하지 못한 에틸렌 등 기초유분 범용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저가 덤핑으로 밀어내면서 국내 석화사들의 가격 결정력을 무력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범용 화학 시장을 주도하던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밸류체인 전면 개편에 돌입했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은 수익성 방어가 어려워진 범용 NCC 설비 비중을 축소하고 장기공급계약(LTA) 물량을 중심으로 손익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된 나프타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 양극재, 친환경 플라스틱, 고기능성 첨단 산업용 소재 등 진입 장벽이 높은 스페셜티 영역으로 고객사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착시로 가려져 있지만 정유·석화 업계는 가동률 80%대 회복에도 불구하고 유가 변동성과 중국발 물량 부담으로 수익성 방어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전통적인 기초유분 밸류체인에서 벗어나 스페셜티와 친환경 에너지 소재로 체질을 전환하지 못하면 수익성 유지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