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 리스크로 4월 쇼크를 겪었던 국내 정유업계가 한 달만에 가동률을 정상화하며 2분기 실적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최고가격상한제와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역래깅(원유 도입 시차 효과) 우려 등 단기 악재 속에서도,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사들이 고부가가치 항공유 수출 물량을 크게 늘리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2013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던 한국의 원유 도입량과 정제가동률이 5월 들어 공급 차단 이전 수준인 약 80% 선을 회복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급망 병목 현상이 해소되면서 정제 생산량이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이에 따라 한국 정유사들의 5월 항공유 수출량은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SK이노베이션 울산 컴플렉스 전경./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 4월 도입 최저치 '쇼크'… 대체 조달로 5월 가동률 80% '반전'
지난 4월까지만 해도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국내 정유업계의 2분기 실적 전망은 어두웠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원유 도입량이 10여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료 수급이 막히면서 주요 정제 설비의 가동률이 급락했고, 이는 고정비 부담 증가와 실적 악화 우려로 직결됐다.
여기에 국내외 단기 악재마저 겹쳤다.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도입된 최고가격상한제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의 가격 변동분을 국내 판가에 제때 반영하지 못해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아울러 고공행진하던 국제 유가가 하락 안정화되면서 1분기 실적을 이끌었던 대규모 재고평가이익이 사라지고 역래깅에 따른 평가손실 리스크까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실적 쇼크는 5월을 기점으로 확연히 반전됐다.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사들이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내륙 파이프라인 등으로 원유 조달선을 신속하게 전환하며 공급망 위기를 조기에 수습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체 조달선의 가동으로 5월 정제가동률이 정상 수준인 80%대까지 빠르게 회복되면서 고정비를 낮추고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마련됐다.
◆ 아태 30% 휩쓴 항공유… '고도화 설비' 앞세워 스프레드 수성
실적 반등의 핵심 원동력은 고도화 설비를 십분 활용한 '고부가가치 운송용 제품' 수출 확대다. 원료 수급이 안정화되자 SK이노베이션 등은 즉각 정제 생산량을 늘려 부가가치가 높은 등·경유 및 항공유 생산에 집중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고도화 공정을 거쳐 이들 운송용 제품을 전체 생산물의 63% 이상 뽑아내고 있어, 수급난으로 고수익 제품의 몸값이 높아진 만큼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그 결과 5월 한국 정유업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공유 수입 시장의 30%를 독점적으로 점유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한국 정유사들의 대량 수출 능력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의 수출량을 기록했다. 아태 지역 내 공급 부족 리스크를 해소하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글로벌 수출 주도권을 다시금 굳건히 다졌다.
물론 수출 반등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완화되면서 지난 3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항공유 현물 프리미엄이 5월 들어 배럴당 2달러 선으로 50%가량 급락하는 현상도 동반됐다. 하지만 투입 원가는 낮아지는 반면 고도화 설비를 거친 최종 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는 구조적 강점이 돋보였다. 증권가에서는 현물 프리미엄 하락분보다 물량 확대로 얻는 마진 스프레드 개선 효과가 커 영업이익 방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진단했다.
시장의 시선은 2분기 성적표를 넘어 하반기 턴어라운드 모멘텀으로 향하고 있다. 당초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규제 리스크와 4월 가동률 하락을 근거로 정유 부문의 눈높이를 낮췄으나 한 달 만에 가동률을 80% 선으로 끌어올리고 항공유 시장 지배력을 회복하면서 실적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분기가 전통적인 정기 보수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발 빠른 제품 믹스 최적화로 흑자 전환의 청신호를 켰다.
유가의 단순한 등락에 의존하기보다 재고 사이클 중심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투입 원가는 하락하는데 반해 최종 운송용 제품 가격은 높게 유지되는 상황이 이어지며 대규모 재고평가이익 없이도 견조한 이익 체력을 증명했다. 원가 방어와 수출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낸 경영적 판단이 실적 턴어라운드의 핵심 기폭제로 작용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상한제 등 내수 규제와 4월 원유 도입 차질이라는 악재가 맞물렸음에도 사우디와 미국산 대체 원유를 즉각 투입해 5월 가동률을 80%대까지 끌어올린 대처가 주효했다"며 "투입 원가는 낮아지지만 6월 글로벌 휴가 시즌을 맞아 항공유 등 필수 운송용 제품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하반기 실적 방향성은 확고하게 위를 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