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외환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장바구니 가격을 끌어올리고, 금리정책의 방향을 바꾸며 외국인 자금 흐름까지 흔든다. 원·달러 환율이 1550원선을 넘나드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또 한 번 강달러 시험대에 올랐다. 본지는 '강달러 쇼크' 시리즈 3편을 통해 고환율이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던지는 경고음을 짚고, 원화 약세의 원인과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정부와 외환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에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연일 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고환율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단기적인 시장 개입보다 경제 체질 개선과 성장동력 확충 등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환율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단기적인 시장 개입보다 경제 체질 개선과 성장동력 확충 등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김상문 기자
12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528.9원)보다 10.9원 내린 달러당 1518.0원에 출발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새벽 야간거래에서 장중 1561.5원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환율이 급등한 배경에는 외국인 자금 유출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데 따른 달러 강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1~4월 누적 경상수지가 1026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나타냈음에도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3.48% 하락해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상위권의 낙폭을 기록했다. 엔화(-0.65%)와 대만달러(-0.55%), 위안화(-0.38%) 등 주요 아시아 통화보다도 약세 폭이 컸다.
시장에선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순매도를 원화 약세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지난 1일 코스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8800선을 돌파하자 외국인들은 차익 실현과 포트폴리오 조정(리밸런싱)에 나섰다. 외국인들은 지난달 7일부터 23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며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했고, 주식 매도 대금을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
환율 불안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당장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뚜렷한 카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환율은 국내 경제 상황뿐 아니라 주요국 통화정책와 국제 유가, 지정학적 리스크 등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전날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오는 18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까지 앞두고 있어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가 글로벌 자금 흐름과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원화 약세가 국내 경제 상황뿐 아니라 국제 정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정책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외환당국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환율 수준 자체를 낮추기보다 시장의 과도한 쏠림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지난 8일 오전 "과도한 쏠림현상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잇달아 경계성 발언을 내놨지만, 환율은 여전히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당국의 구두 개입 이후 단기 급등세는 다소 진정됐지만 환율 수준 자체는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일각에선 최근 원화 약세를 일시적 충격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보고 있다. 최근 수년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와 연기금·기관투자가의 해외 자산 비중 증가, 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 확대 등으로 달러 수요 구조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출 증가와 경상수지 흑자가 과거처럼 원화 강세로 이어지지 않는 배경이다. 여기에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경우 달러 선호 현상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의 향방은 결국 한국 경제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가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달러 강세와 글로벌 자금 흐름을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세 둔화 우려를 낮추고 투자와 생산성을 높여 한국 경제의 매력을 키워야 해외 자금 유입도 늘어나고 원화 가치도 안정적인 흐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환율은 단순한 외환시장의 가격이 아니다. 물가와 금리, 기업 수익성, 가계 부담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다. 강달러 충격이 한국 경제 곳곳에 파고드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환율 방어보다 외부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결국 원화의 미래 역시 한국 경제가 얼마나 높은 성장성과 경쟁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