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쇠붙이 부딪히는 거친 비트가 스타디움의 정적을 깨뜨리자, 5만 5000명의 함성이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밤하늘을 집어삼켰다. 횃불을 든 댄서들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시작된 신곡 ‘훌리건’(Hooligan)의 첫 소절부터 객석은 이미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전날 발생했던 입장 지연이라는 뜻밖의 악재를 완벽한 무대 장악력으로 정면 돌파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13주년 기념일인 13일, 자신들의 찬란한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의 부산 2회차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은 방탄소년단에게도, 팬덤 ‘아미’에게도 남다른 감회를 안겼다. 이들이 부산 땅을 밟은 것은 입대 전 마지막 완전체 콘서트였던 2022년 10월 ‘옛 투 컴 인 부산’ 이후 무려 3년 8개월 만이다. 특히 부산은 멤버 지민과 정국의 고향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축제의 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13일 밤 부산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BTS의 13주년 생일 공연이 그 어느 무대보다 뜨거웠다.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오프닝 무대를 마친 막내 정국이 특유의 정겨운 사투리로 “요! 부산 반갑습니데이. 오늘도 정말 많은 분이 오셨는데 신나게 놀아주이소”라며 첫인사를 건네자 객석에서는 폭발적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지민 역시 “이렇게 뜻깊은 기념일에 제가 태어난 고향에서 여러분과 노래하고 춤출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며 벅찬 소회를 밝혔다. 이날 공연장에는 지민이 직접 초청한 초등학교 시절 은사의 모습도 포착되어 훈훈함을 더했다.
음반명이자 투어 타이틀인 ‘아리랑’에 걸맞게, 이날 무대는 시각과 청각 전반에 걸쳐 압도적인 한국의 미(美)를 세련되게 풀어냈다. 공연 시작 전 객석을 에워싼 수묵화 영상과 은은하게 울려 퍼진 국악 선율은 서구식 스타디움 공연에서 보기 드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었다. ‘데이 돈트 노 바웃 어스’(they don't know 'bout us) 무대에서는 전통 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디어가 화면을 수놓았고, ‘메리 고 라운드’(Merry Go Round)에서는 흰 천을 활용해 전통 승무의 독창적인 곡선미를 춤선으로 구현해 냈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의상을 입은 수십 명의 댄서가 무대 위에서 거대한 태극 문양을 만들어내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고조에 달한 순간은 새 앨범의 포문을 여는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였다. 무대 곳곳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5만 5,000명의 관객이 약속이나 한 듯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며 민요 아리랑을 떼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어진 ‘조선 EDM’의 효시 ‘아이돌’(IDOL) 무대에서는 50여 명의 댄서와 함께 그라운드 트랙을 돌며 경기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축제 장으로 만들었다. 맏형 진은 걸그룹 리센느의 유행어를 패러디해 “부산 야-호!”라고 외치는 능청스러운 매력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날 공연은 가장 한국의 멋을 드러낸 공연을 '내 땅'에서 공연한다는 벅찬 마음을 BTS도 여과없이 드러냈다.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방탄소년단은 전원 핸드 마이크를 쥔 채 격렬한 퍼포먼스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를 들려줬다. 특히 글로벌 인기를 견인한 영어 신곡 ‘노멀’(NORMAL)을 부산 관객들만을 위해 특별히 한국어 버전으로 개사해 부르는 깜짝 팬 서비스를 선사해 감동을 더했다. 제이홉은 무대를 마친 뒤 “부산을 위해 새롭게 준비한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어둠이 짙어진 공연 후반부, 스타디움에는 아미들이 직접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데뷔 13주년을 맞이한 멤버들은 팬들을 향해 진솔한 속내를 털어놨다. 리더 RM은 “연습실에서 데뷔곡 ‘노 모어 드림’을 맞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많은 게 변했다. 가사에 영어도 많아졌고 K팝 산업도 거대해졌다”고 회상하며, “‘매직 숍’을 부르는데 지난 13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최선을 다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테니 오래도록 함께해달라”고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진 또한 “아미 여러분이 이렇게 즐겨주시는 모습 자체가 저희에겐 가장 큰 생일 선물”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멤버들은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지만 우리는 결국 한국인이다. 내 나라, 내 땅에서 공연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며 남다른 애국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외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은 프랑스인 아미 아킬라(33) 씨는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과거의 멤버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긴장해 보였는데, 최근 ‘2.0’을 선언한 이후에는 훨씬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덩달아 행복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방탄소년단은 이틀간 공연장을 찾은 11만 명의 관객 전원에게 친필 카드와 양산, 투명 가방 등이 담긴 풍성한 기프트 꾸러미를 전달하며 첫날의 현장 운영 혼선을 만회하는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K-팝 역사상 최대 규모로 펼쳐지는 이번 ‘아리랑’ 스타디움 월드투어는 국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는 26일 스페인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럽 대륙 공략에 나선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