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축산농가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이 심화 되는 가운데, 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축사은행’을 도입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고령 농가의 은퇴와 청년 농업인의 진입을 연계하는 자산 순환체계를 구축해 축산업의 세대교체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최근 발표한 ‘인력구조 변화에 대응한 축산업의 성장기반 연구’에서 축산업이 인력 단절, 유휴 축사 증가, 청년층 진입 장벽이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대안으로 ‘축사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현재 축산업이 고령 농가의 폐업으로 유휴·폐축사가 늘어나는 반면, 청년층은 높은 초기 투자비와 입지 규제로 인해 진입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축산농가의 고령화율(65세 이상)은 54.1%로 2010년 29.6%보다 크게 상승했으며, 조사 대상 농가의 69.7%는 후계자가 없다고 응답했다.
세대 단절 현상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기존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농가의 69.7%가 후계자가 없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67.9%는 후계자를 발굴할 계획조차 없다고 응답했다. 후계자가 없는 이유로는 열악한 노동환경(65.9%)이 가장 많이 꼽혔으며 후계자가 있는 경우에도 증여·상속세 부담(63.8%)이 원활한 승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축산 전공 대학생들은 축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경제적 안정성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특히 초기 투자비용과 축사·부지 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지목됐다.
이 같은 인력 이탈은 대규모 유휴 축사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진이 폐업 농장 부지 활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축종에서 폐축사의 80~90%가량이 재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막대한 축산시설이 방치되는 동안 신규 진입 농가들은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축사를 신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규 한우 농가의 86.4%, 젖소 농가의 80.1%가 기존 축사가 아닌 신규 부지에 축사를 건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연구진은 이 같은 문제를 개별 정책으로 접근하기보다 축산 자산의 순환을 지원하는 통합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중심에 축사은행이 있다는 설명이다.
KREI에 따르면, 축사은행은 축사 매매·임대 중개기관을 넘어 전국 축사 자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 표준 감정평가 체계를 마련해 거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법률·세무 컨설팅을 통해 고령 농가의 원활한 은퇴와 자산 이전을 지원하며, 청년 농업인의 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부족과 거래 불확실성을 줄이는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특히 연구진은 축사은행이 경제성이 있는 유휴 축사를 직접 매입해 비축한 뒤 ICT 기반 스마트축사로 리모델링해 청년 농업인에게 저리 임대하거나 분양하는 방식의 운영 모델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청년층은 축사 신축에 필요한 막대한 초기 자본 부담을 덜고, 고령 농가는 보유 자산을 현금화해 안정적으로 은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성이 낮거나 장기간 방치된 폐축사의 경우 농촌공간정비사업과 연계해 철거와 부지 재활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재 대부분 축종에서 폐업 농장이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만큼, 축사은행이 자산 순환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축사은행과 함께 스마트축산 정책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스마트축산은 자동급이기, CCTV 등 단순 자동화 기술 중심에 머물러 있어 생산성 향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데이터 분석과 현장 컨설팅을 지원하는 스마트농업관리사 육성, 축종별 데이터 표준화, 민간 AI 분석 서비스 활성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청년 인력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축사은행을 활용한 임대형 진입 모델을 마련하고, 실패 시 자산을 축사은행에 매각한 뒤 재임대받을 수 있는 금융 안전망 구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업승계를 촉진하기 위한 영농상속공제 요건 완화와 인허가를 완료한 스마트축산단지 조성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송우진 KREI 연구위원은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는 개별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축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구조적 과제”라며 “유휴 축사와 청년 인력을 연결하는 자산 순환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스마트축산과 청년 진입 정책을 연계해야 축산업의 성장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