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를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 개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해운업계가 운임 하락 방어라는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선복량 증가에 따른 시황 악화에 대비해 HMM, 팬오션 등 국적 선사들이 대형 화주와의 장기운송계약(CVC)을 확대하고 선대 운용을 효율화하는 등 기업별 맞춤형 재정비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오는 19일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합의하고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동발 리스크 해소 기대감이 번지면서 분쟁 발생 이후 아시아 제조업체들을 압박해 온 글로벌 공급망 부담이 일정 부분 완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며 한국과 일본 주요 증시가 일제히 상승하는 등 시장이 반응했다.
◆ HMM, 컨테이너 스팟 운임 하락…장기계약 셈법 고심
호르무즈 해협 개방 시나리오는 글로벌 해운 시장의 수급 역학을 바꿀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그동안 중동 리스크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면서 컨테이너선 중심의 HMM은 수에즈 운하 노선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장거리 항로를 선택해왔다. 오는 19일 협상이 타결돼 해협 개방과 항로 조율이 정상 궤도로 회복되면 선박 회전율이 개선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HMM 입장에서는 운항 일수가 단축되면서 유류비와 해상 보험료 등 밸류체인 전반의 운항 비용(OPEX)을 효율화할 수 있는 구조적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리적 거리가 짧아지는 만큼 선박의 감가상각 비용과 승무원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을 유연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운항 시간 단축은 시장 내 실질적인 선복량 확대로 이어져 컨테이너 해상 운임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 다음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바다에 떠 있는 가용 선박 숫자가 사실상 늘어나는 공급 과잉 효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이에따라 HMM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등 현물(스팟) 운임 프리미엄이 꺼지기 전에 글로벌 대형 화주들과의 장기운송계약 단가를 고정하는 밸류체인 사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기와 맞물려 시황 급락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방 경직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팬오션, 벌크선 턴어라운드 극대화…고수익 화물 유치
철광석, 석탄, 곡물 등을 나르는 벌크선 선사인 팬오션은 컨테이너선 위주의 HMM과는 사뭇 다른 셈법을 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벌크선 시장은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형 화주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CVC) 비중이 높아 현물 운임 하락에 따른 직접적인 타격은 상대적으로 덜한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따른 중동발 원자재 공급망 정상화 흐름을 기회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팬오션은 해협 통항 정상화로 글로벌 대형 에너지 기업 및 원자재 메이저들과의 물동량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회 항로 이용으로 지연됐던 원자재 운송 주기가 짧아지면 선박 배선 효율성이 개선돼 고정된 계약 단가 안에서 수익성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확보된 선대 여력을 바탕으로 현물 시장의 고수익 화물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셈법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팬오션은 운임 방어를 넘어 밸류체인 전반의 원가 절감분을 자사 프라이싱 파워(가격 결정력)의 핵심 경쟁력으로 치환하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원자재 이해관계자들의 수급 역학 관계 속에서 철저한 선대 최적화를 통해 하방 리스크를 덜어내고 턴어라운드 시점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안보 관점에서의 국가적 지원이 국내 해운업계의 글로벌 화주 유치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안전 확보와 전후 복구 지원 차원에서 해군 기뢰제거함 파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해운업계에 영업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국가 차원의 항행 안전 보장 조치는 글로벌 화주들의 화물을 유치하고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타국 선사 대비 상대적인 신뢰 프리미엄으로 연결될 수 있다. 화물의 정시성과 안전성이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글로벌 공급망 체제 속에서, 한국 국적 선사들의 노선 안정성은 장기 계약 협상 시 프라이싱 파워로 치환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의 합의로 오는 19일 이후 해상 물류망의 숨통이 트일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줄어들면 운임 조정은 어느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별 맞춤형 밸류체인 전략이 중장기 생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