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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귀찮다고 그냥 들어갔다간…" 화학사고 88% '인적 실수', 초가성비 기계로 막는다

입력 2026-06-24 20:00:19 | 수정 2026-06-24 20:00:12
유태경 기자 | jadeu0818@naver.com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해당 지역은 개인보호구 착용 구역입니다. 반드시 개인보호구를 착용하시고 진입하시길 바랍니다."

충청남도 예산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유해화학물질 취급 전문 기업 바이켐의 제조동 입구. 왼쪽 상단에 설치된 경보 스피커에서 "해당 지역은 개인보호구 착용 구역입니다. 반드시 개인보호구를 착용하시고 진입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음성이 흘러 나오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24일 오전 충청남도 예산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산업용 세정제 전문 제조업체 바이켐의 제조동 입구. 취재진이 발을 디디자마자 머리맡에 설치된 경보 스피커가 날카로운 경고 음성을 뱉어냈다. 이선화 바이켐 대표이사가 현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세히 들으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도 경보 스피커 음성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작업자가 바쁘다고 무심코 지나치려 해도 기계가 먼저 가로막고 안전 수칙을 강제로 귀에 꽂아 넣는 셈이다.

최근 국내 산업 현장의 화학사고는 매년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사업장 화학사고는 총 354건으로, 이 중 절반이 넘는 180건(50.8%)에서 사망 19명, 부상 274명 등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연도별로 보면 2023년 104건(사상 67명)이던 사고는 2024년 114건(사상 77명)으로 소폭 증가했고, 지난해 136건(사상 149명)으로 폭증했다.

바이켐 공장 내부에는 붉은색과 초록색 바닥 사이를 가르는 하늘색 선 위로 '보행자 통로'라는 안내문이 선명하게 박혀 있어 근로자와 장비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유도했다. 보행자 통로 아래에는 화학물질 유출 시 안전하게 배수되도록 집수 시설로 연결되는 배수로(트렌치)가 설치돼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화학물질 유출 시 안전하게 배수되도록 집수 시설로 연결되는 배수로(트렌치)나 방류벽 같은 안전 설비들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의무화됐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 현장에 설치돼 있다. 즉, 최근 자주 발생하는 화학사고들은 관련 법과 규정이 없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법적 설비가 버젓이 구비돼 있음에도 현장 작업자들이 기본적인 '안전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규정 미준수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무거운 형사 처벌과 강력한 체벌을 피할 수 없음에도, '괜찮겠지'라는 현장의 방심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후부가 인명피해 사고 원인을 심층 분석한 결과, 무려 88.3%(159건)가 작업자의 안전수칙 미준수 등 '인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스 중독을 부르는 개인보호장구 미착용(44건)과 화재·폭발로 직결되는 정전기 등 점화원 관리 소홀(39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법적 강제를 넘어 작업자의 주의력을 환기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기후부 출입기자단이 찾은 바이켐이 물리적 장치의 도움을 받아 이 같은 '사람의 실수'를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현장이었다.

바이켐은 친환경 산업용 세척제와 유기용제 고순도 정제, 폐기물 원료화 리사이클(희토류, 유가금속 등)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정밀화학 기업이다. 에폭시 및 특수도료를 취급하는 도료사업부부터 유독물 대체 환경친화적 세정제를 생산하는 세척제사업부, 고순도 정제 기술 중심의 정제사업부 등을 두루 운영하는 만큼 현장의 유해화학물질 안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바이켐 입·출하 하역장. 거대한 실외 탱크들 앞 바닥에 노란색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화학안전구역'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대형 탱크로리 차량이 인화성 물질인 톨루엔이나 에나멜신너 등 가연성 물질을 주입할 때 안전거리를 강제로 확보하게 만드는 시각적 차단벽 역할을 한다. /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공장의 핵심인 입·출하 하역장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실외 탱크들 앞 바닥에 노란색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쓰인 '화학안전구역'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압도했다. 대형 탱크로리 차량이 인화성 물질인 톨루엔이나 에나멜신너 등 가연성 물질을 주입할 때 안전거리를 강제로 확보하게 만드는 시각적 차단벽 역할을 한다. 외벽에는 톨루엔과 메탄올 등 취급 물질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요약본과 유해성 그림문자가 빼곡히 붙어 있어 흡사 요새를 연상케 했다.

공장 내부 동선도 철저했다. 붉은색과 초록색 바닥 사이를 가르는 하늘색 선 위로 '보행자 통로'라는 안내문이 선명하게 박혀 있어 근로자와 장비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유도했고, 좁은 통로 옆 철망 펜스 안에는 '디클로로프로판' 등 유독물이 담긴 파란색 드럼통들이 자물쇠를 채운 채 격리 보관돼 있었다. 탱크 주변 복잡한 배관 중심부에는 언제든 독성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비상 샤워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독성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비상 샤워기'./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눈에 띄었던 건 작업자들이 밸브를 열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손바닥 모양 '정전기 방전 패드'였다. 맨손을 대고 몸 안의 정전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비로소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전기 불꽃 하나가 공장 전체를 날려버릴 대형 폭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1차 관문인 셈이다. 야외 폐유기용제 저장소 역시 철망 펜스 사방에 '흡연금지', '화기엄금' 경고판을 대형으로 부착해 불씨 하나조차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그동안 화학사고 예방책이 법령을 강화해 업체를 압박하거나 근로자 교육 등 '정신론'에 치중했다면, 이번 대책은 '직관적이고 가성비 좋은 물리적 장치'에 중점을 뒀다는 게 기후부 설명이다. 실제로 바이켐 사업장에 도입된 방전 패드 11대와 음성 안내 장치 8대, 바닥 도색, 시각 자료 등을 모두 합친 비용은 단 146만 원에 불과하다.

이선화 바이켐 대표이사가 24일 오전 충청남도 예산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유해화학물질 취급 전문 기업 바이켐에서 '정전기 방전 패드' 사용법을 시연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손명균 기후부 화학안전과장은 "이번에 도입한 방전 패드는 개당 4만5000원밖에 하지 않고, 안내 장치나 페인트도 단가가 얼마되지 않는 초가성비 장치들"이라며 "비용 대비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는 시범 사업으로 진행하는 거라 정부가 예산을 100% 부담한다"며 "폭발 인화성 물질을 갖고 있는 고위험 사업장을 선정해 음성 안내 장치 400개와 방전패드 560개, 화학안전구역 설치 30개소 등을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45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 노후 취급 시설 개선 사업과 연계해 국고보조금 60~80%를 매칭하는 방식으로 본격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최근 산업계의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외국인 및 단기 근로자 안전 사각지대를 깨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들도 눈에 띄었다. 바이켐은 구인난으로 올해 처음 외국인 노동자 3명을 채용했다. 다만, 교육 등을 위해 방글라데시 노동자로 통일해 채용했다는 게 바이켐 설명이다. 바이켐은 한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모든 안전 안내판과 포스터를 방글라데시어로 전면 교체했다. 

이선화 바이켐 대표이사가 24일 오전 충청남도 예산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바이켐의 옥외저장탱크 주입구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 뒤로 한글·영어·방글라데시어로 쓰여진 안전 안내판이 걸려 있다./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부는 사업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점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 사고사례 포스터 등 시각자료에 영어 등 외국어를 함께 표기해 보급할 계획이다.

이선화 대표는 "직접 현장 근로자께 여쭤 보니 기존 포스터나 표지판 같은 시각 자료는 벽에 붙어 있어 바쁘게 일하다 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작업 구역에 들어설 때마다 스피커에서 확실하게 소리까지 질러주니 훨씬 더 직관적이고 순간적으로 주의가 집중돼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법에서 정한 취급 기준만 지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번 지원을 통해 근로자가 현장에서 촉각·시각·청각을 통해 위험을 즉각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며 "똑같은 알림을 매일 들으면 루틴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겠지만, 연이은 대면 교육과 타사 사망 사고 사례 공유를 통해 안전 피로감을 계속 경계하고 있고, 지원 받지 못한 다른 구역도 회사 비용을 들여 자체적으로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이켐 공장 내외부에 붙어 있는 안전 안내 문구 현수막./사진=미디어펜 유태경 기자



조현수 기후부 환경보건국장은 "화학사고는 0.1초의 방심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는 만큼, 근로자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이 먼저 안전을 강제하는 현장 중심 대책이 핵심"이라며 "대기업은 매뉴얼대로 즉시 대피해 인명피해를 막는 시스템이 정착된 만큼, 가성비 높은 저감 우수 사례를 산업계에 적극 환류해 중소기업 전반의 안전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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