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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호남행 반도체…'예타'는? 우려의 목소리 커

입력 2026-06-26 10:53:33 | 수정 2026-06-26 10:53:22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부 주도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둘러싸고 재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리스크 관리와 시장 논리에 기반 해야 할 대규모 첨단 팹(생산라인) 투자 계획이 기업의 계획을 벗어나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는 별개로, 핵심 전략 산업의 의사결정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손익을 따져야 할 기업 경영에 시장의 판단이 아닌 정부 개입이 작용할 경우,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국가재정법상 대규모 신규 재정사업의 예산 편성에 앞서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한다. 예산 낭비를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번 호남 팹 투자는 시장타당성 조사나 기술타당성 조사 등 필요한 조치가 우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어느 지자체든 환영하는데…” 이재용-최태원 과거 발언 조명

첨단 반도체 공장의 입지 선정은 인프라와 생태계가 갖춰진 최적의 후보지를 물색해 선택하는 것이 먼저다. 그에 따른 고용 창출과 경제 활성화라는 이득은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이 내려진 뒤에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지역 발전’은 기업의 생존 조건이 충족됐을 때 달성되는 것이지 선후 관계가 뒤바뀌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7년 12월 27일 국정농단 재판 당시, 평택 공장 인프라 문제와 관련해 안종범 전 수석에게 청탁한 의혹이 있냐는 질문에 “15조 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면 세계 어느 지자체나 정부 어디든 우리에게 청탁을 하지, 우리가 청탁할 일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어느 정부나 환영할 일인 만큼 투자 결정의 주도권이 기업에 있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특정 지역을 강요하며 압박하는 모양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최근 언급 역시 ‘기업 주도 철칙’과 궤를 같이한다. 최 회장은 최근 차기 반도체 공장 입지와 관련해 한국 이외의 신규 후보지로 일본을 언급하며 ‘조건 물색’의 기준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일본은 반도체 생산국이며 전력이나 재료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생태계가 모두 갖춰져 있다”며 “한국 이외에서 생각했을 경우 충분히 훌륭한 후보지”라고 평가했다. 이는 ‘준비된 인프라와 생태계’를 기준으로 주도적인 경영 판단을 내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업이 경영 판단에 따라 최적의 땅을 물색해야 하는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지역 발전을 해야 하니 여기에 지으라”는 압박으로 특정 지역을 강요하는 현 상황에 재계의 속앓이가 이어지는 본질적인 이유다.

◆ 연쇄 회동으로 굳어지는 호남행… 속도전에 갇힌 300조원 반도체 팹

그럼에도 반도체 팹의 호남행은 가시화 되는 모습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전날 오후 5시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1시간가량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지난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단독 면담에 이은 연쇄 회동이다. 

정부가 호남 반도체 투자를 공식화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회동은 오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앞두고 대기업 총수들을 향한 막판 투자 조율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정부는 지방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호남 지역은 전력 과부하를 막기 위한 ‘출력제어’가 속출할 만큼 송전망 포화 상태가 심각하다. 한국전력이 호남 전역을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하면서 신규 발전원의 전력망 접속마저 제한되고 있다.

0.1초의 전압 흔들림으로도 수천억 원의 웨이퍼를 폐기해야 하는 반도체 공정 특성상 일조량에 따라 널뛰는 신재생에너지는 부적합하다는 기술적 한계도 뒤따른다. 

여기에 용수 확보 문제까지 겹치면서 타 지자체의 반발을 사는 등 준비 안 된 입지 선정이 불필요한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R&D급 고급 엔지니어들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현실까지 맞물리면, 장점보단 단점이 명확한 상황이다.

◆ 경제 자유‧책임 원칙 어디에…일본 엘피다가 남긴 교훈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권력을 동원해 기업의 입지를 강제 배분하려는 발상 자체가 시장 경제의 근본적 가치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일본 정부가 주도했던 반도체 산업 구조조정의 실패작인 ‘엘피다 메모리(Elpida)’의 잔혹사가 대표적인 전례다. 

일본 통상산업성은 1999년 정책적 필요에 따라 부실해진 D램 사업부들을 강제 통합해 엘피다를 출범시켰다. 이후 지속적인 정부 개입 속에 엘피다는 모바일 중심의 시장 전환기라는 신호를 읽지 못한 채 기존 PC용 D램 생산에만 안주하다 결국 2012년 파산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최근 우리 정부의 행보를 두고 엘피다의 잔혹사를 상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입하는 방식과 성격은 다르지만,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몰락한 근본적인 배경에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오판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 공장은 시장 접근성, 인력 확보,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종합 고려해 기업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생존의 문제”라며 “정권은 시한부 권력이지만 기업은 수세대에 걸쳐 존속해야 하는 만큼, 정치적 요구가 아닌 경제적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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