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피지컬 AI(인공지능)와 음성제어, 무인 제어 솔루션을 입고 첨단 테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중장비 제조의 한계를 벗어나 진입장벽과 수익성이 높은 자율화 소프트웨어 플랫폼 시장으로 밸류체인을 재편하는 모양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밥캣과 HD건설기계는 전 세계적인 숙련공 부족과 강화되는 안전 규제를 돌파하기 위해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한 '피지컬 AI' 및 무인 자율 장비 솔루션을 실제 산업 현장에 배치하고 나섰다.
북미 건설장비 전시회인 '콘엑스포 2026'에서 리얼 엑스(Real-X) 시연을 선보이고 있는 HD현대 무인 자율 굴착기./사진=HD건설기계 제공
이러한 배경에는 하드웨어 범용 제품 위주였던 전통적 건설기계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글로벌 고용 환경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건설 현장은 심각한 인구 고령화와 3D 업종 기피 현상으로 인해 정밀 작업을 수행할 숙련된 장비 조종사를 구하는 것이 한계를 맞이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현장 안전 규제는 기업들에게 단순 장비 공급을 넘어 사고를 원천 차단하는 지능형 솔루션을 요구해 왔다. 제조업의 초과 이윤이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발생하는 시장 구조로 재편되자 국내 기업들은 독자적인 기술 진입장벽을 구축해 가격 결정력을 재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셈법을 세웠다.
◆ 소형은 음성 제어, 대형은 율업 현장 첫 실전 배치 속도전
두산밥캣은 AI가 실제 장비와 결합해 물리적 제어를 수행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산밥캣은 최근 독자적인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음성 제어 기술인 잡사이트 컴패니언을 공개했다. 작업자가 외부에서 음성 명령만으로 50가지 이상의 장비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고단수 솔루션으로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한 외딴 환경에서도 구동되는 온보드 AI 모델이다.
특히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글로벌 전시회를 직접 챙기며 기술 상용화를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을 기점으로 두산밥캣의 장비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피지컬 AI 기술을 이식하는 협력도 본격화됐다. 여기에 AI 솔루션 기업 마음AI와 비전-언어-행동(VLA) 기반 자율작업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하며 하드웨어에 똑똑한 '뇌'를 얹는 밸류체인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건설기계는 건설 현장 전체를 유기적으로 통제하는 '종합 자율 관제 시스템'을 가동하며 미래 청사진이었던 '컨셉엑스(Concept-X)'를 실제 현장 투입 단계인 '리얼엑스(Real-X)'로 구체화했다.
HD현대의 건설기계 사업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최근 AI 자율화 전문기업 그라비스 로보틱스와 손잡고 유럽 대형 건설그룹인 '키바그(KIBAG)'의 스위스 토목 공사 현장에 리얼엑스 솔루션이 탑재된 22톤급 중형 무인 자율 굴착기를 최초로 인도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드론이 3D로 정밀 측량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관제센터가 최적의 계획을 수립하면 무인 굴착기가 운전석에 사람 없이도 실시간 지형을 인식하며 토공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다. 글로벌 시멘트 업체 홀심의 유럽 광산 실증에서 유인 운전 대비 약 120%의 압도적인 생산성을 증명해 낸 이 시스템은 장비 간의 충돌을 원천 차단하는 긴급 자동 제동 기술인 'E-STOP'과 결합해 유럽 현지 고마진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 단순 장비 납품 넘어 '솔루션 플랫폼'으로… 28조 자율화 시장 정조준
결국 건설기계 업계의 체질 개선은 이해관계자 역학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단순히 장비 도입 단가를 저울질하던 건설사 및 대형 광산 발주처들을 상대로 이제는 공기를 단축하고 현장 재해율을 낮추는 높은 수익성의 설루션 플랫폼 공급자로서 가격 협상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 건설 장비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181억6000만 달러(약 28조 원)로 추산되며 연평균 9% 이상 초고속 성장 중이다.
건설기계 업계 관계자는 "이제 굴착기 하드웨어 성능만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전 세계적으로 숙련공 부족 현상이 심각해진 만큼, 누가 더 똑똑하고 안전한 무인화 솔루션을 제공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수주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