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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악재 뒤집은 윤활기유…정유업계 실적 ‘구원투수’

입력 2026-08-09 10:02:25 | 수정 2026-08-09 10:15:48
김동하 기자 | rlacogk@mediapen.com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중동 리스크 속에서 윤활유 사업 호황에 힘입어 2분기 실적 반전을 이뤄냈다. 그동안 주력 석유제품인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을 보완하는 부업 취급받던 윤활유가 정유사들의 수익성을 굳건히 떠받치는 고부가가치 핵심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중동 지역 주요 석유제품 생산 설비가 타격을 입으면서 글로벌 윤활유 시장에 공급난이 발생했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윤활기유는 자동차 엔진오일이나 산업용 기계 윤활유의 핵심 원료로 쓰이는데 글로벌 핵심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같은 시황 변화 속에서 국내 정유 4사는 중동발 물량 공백을 신속히 메우며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 이들은 단기적인 반사이익에 그치지 않고 생산, 물류, 유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윤활유를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가 중동 리스크 속에서 윤활유 사업 호황에 힘입어 2분기 실적 반전을 이뤄냈다. 사진은 울산석유화학단지./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카타르 설비 파괴에 묶인 중동 물량…윤활기유 마진 폭등

윤활유 시장의 급격한 지각변동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중동 핵심 설비의 피해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 고성능 그룹3(Group 3) 프리미엄 윤활기유 공급량의 약 30%를 책임지던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의 '펄 GTL' 설비가 심각한 파괴를 입어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기존 생산된 물량마저 핵심 수출입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에 막혀 시장에 풀리지 못했다. 이로 인해 원유와 제품의 가격 차이를 뜻하는 윤활기유 스프레드는 1년 전 배럴당 70달러 초반대에서 올해 2분기 160달러대로 2배 이상 급등했다.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30~40%에 육박할 정도로 제품 단가가 폭등하면서 정유사들의 마진 구조가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윤활유 수출액은 약 8억748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6.4% 증가했다. 스페인 렙솔, 미국 엑손모빌 등 경쟁사들의 잉여 생산능력(CAPA)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중동산 물량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 등 서구권 기업들이 대체 공급처를 찾아 한국산 제품으로 대거 선회한 결과로 풀이된다.

◆ 정유업계 2분기 실적 견인 '효자'

그동안 윤활유 사업은 전체 정유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 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2분기 실적을 계기로 윤활유 부문은 국제유가 변동성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노출된 정유 부문의 부진을 메우는 캐시카우 입지를 입증했다.

기업별 실적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올해 2분기 윤활기유 마진 개선과 재고 효과에 힘입어 전년 동기(1345억 원) 대비 무려 414.4% 급증한 691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중동발 물량 공백을 빠르게 흡수하며 2분기 매출의 약 80%를 해외에서 창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에쓰오일 역시 2분기 전체 영업이익(9650억 원)의 절반에 달하는 4770억 원을 윤활 부문에서 거둬들이며 흑자 전환을 이끌어냈다.

HD현대오일뱅크 또한 2분기 윤활 사업에서 181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윤활기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48.6%로 정유 부문의 3배를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글로벌 물류 거점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GS칼텍스 역시 윤활 사업부에서 상당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회사 전체 실적을 방어한 것으로 추정된다.

◆ 대체재 넘어 장기 조달처로…생산·물류 전방위 투자

국내 정유사들은 단기 수익 창출에 만족하지 않고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에 돌입했다. GS칼텍스는 내년 초 전환을 목표로 인천 윤활유 글로벌 물류센터에 국내 위험물 창고 최초로 '4방향 셔틀형 자동 입출고 시스템'을 도입한다. 완공 시 제품 수용 능력은 24%, 시간당 입출고 처리량은 25% 늘어나 장기적인 수출 물량 대응력이 한층 고도화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프리미엄 윤활유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며 B2C 유통 시장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최근 고급 윤활유 제품군을 대폭 확대한 데 이어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이는 등 일반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를 확대하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동발 공급 차질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산 윤활기유의 '구조적 장기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영 카타르에너지가 펄 GTL 복구에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프리미엄 윤활기유의 공급 부족 현상은 오는 2027년까지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산 윤활기유는 대규모 생산 능력과 우수한 품질, 안정적인 글로벌 판매망을 모두 갖춰 중동 사태를 타개할 핵심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며 "글로벌 고객사들이 한국 기업을 일시적 대체자가 아닌 장기 조달처로 재평가하고 있는 만큼, 인프라 투자를 통해 고부가가치 수익 구조를 고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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