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기고] 일본은 어떻게 야근을 줄였나...답은 출퇴근 기록 인프라

입력 2026-08-10 16:22:20 | 수정 2026-08-10 16:43:38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김수현 노무사(법무법인 더보상)

'가로시(과로사)'.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전 세계에 수출했던 비극적인 단어다. 당시 일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00시간에 달했고 장시간 노동은 국가적 잔재이자 고질병이었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 간 일본 노동 현장에는 명확한 변화가 일어났다. 

연간 근로시간은 2000년 1839시간에서 2022년 1626시간으로 11.6% 줄었고 주당 평균 근로시간도 38.1시간(2023년)으로 감소하며 유럽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과로사의 대명사였던 일본은 어떻게 야근을 줄일 수 있었을까. 비밀은 특정 임금제도 '금지'가 아닌 근로시간의 시작과 끝을 남기는 '기록의 인프라화'에 있었다.

2015년 대형 광고회사 덴츠의 신입사원 과로자살 사건 이후 추진된 '일하는 방식 개혁'의 핵심은 명확했다. 몇 시간을 일했는지 따지기 전 몇 시에 시작해 몇 시에 끝냈는지 '시각'을 투명하게 남기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은 타임카드, IC카드, PC 사용기록 등 객관적 수단에 의한 시각 기록을 원칙으로 한다. 근로자가 직접 출퇴근을 적어 내는 자기신고제를 쓰더라도 PC 접속이나 출입 기록과 현저한 차이가 나면 사용자가 직접 조사해 수정해야 하는 강한 검증 의무를 부여했다. 관리감독자나 재량근로자 등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자조차 시각 기록 대상에서는 제외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조기 출근, 무급 대기, 포괄임금제 아래 묻히는 공짜 야근 등 '회색지대 노동'은 시각이 기록되는 순간 수면 위로 드러난다. 시각이 남으면 일한 '시간 수'는 자동으로 계산되는 결과일 뿐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기록이라는 인프라가 깔리자 시간외근로 상한 규제와 무급 야근 적발 등 노동 감독도 수월해졌고,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며 2000년 이후 20대 임금이 25% 상승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역시 근로시간 기록 법제화를 논의 중이지만 임금대장에 단순히 '연장근로 시간 수'만 적게 하는 안(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 발의)은 한계가 명확하다. 단순히 총 숫자만 적어서는 포괄임금 오남용과 공짜 야근을 막을 수 없다. 일본의 20년 궤적이 증명하듯, 우리가 참고해야 할 해법은 실제 일을 시작하고 마친 '시각'의 객관적 기록(더불어민주당 이용우·진보당 정혜경 의원 발의)이다.

결국 성공적인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시업·종업 시각의 객관적 기록을 법제화함과 동시에, 근로자가 자신의 기록을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는 열람권을 보장하고, 기록의 임의 수정이나 조작을 막기 위한 변경 이력 보존까지 함께 입법 틀 안에 담아내야 한다. 이러한 '일한 시간을 사실대로 남기는 인프라'가 구축될 때 비로소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근절되고 정직한 노동의 가치가 바로 설 수 있다.

[미디어펜=편집국]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