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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바다 위에 세워진 거대한 연구소 "왕돌초에서 바다를 읽다"

입력 2026-08-31 12:00:00 | 수정 2026-08-31 13:18:01
구태경 부장 | roy1129@mediapen.com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8월 28일 여름의 끝자락. 후포항을 출발한 배가 한 시간 넘게 동해를 가르자 수평선 너머로 주황색 철골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지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의 구조물이었다. 파도 위에 우뚝 선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다.

동해 한 가운데서 바다 환경 관측을 이어가고 있는 KIOST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모습./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배가 기지 가까이 다가가자 여러 층으로 쌓인 데크와 계단 그리고 각종 관측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위에 세워진 하나의 작은 연구소였다. 기지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기록하는 각종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는 이름 그대로 왕돌초 해역에 설치된 해양 관측 거점이다. 이곳의 바다는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지 아래쪽에 설치된 관측 장비였다. 해양 관측에서 널리 활용되는 CTD 장비를 수중으로 내려보내 수온과 염분 등을 측정한다. 왕돌초 해역의 수심은 약 23m로 장비는 약 20m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수심에 따른 바닷물의 변화를 기록한다.

기지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말 그대로 작은 등산을 하는 듯했다. 계단을 따라 약 15m를 올라가자 기지 운영에 필요한 설비가 모여 있는 셀라데크가 나왔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태양광 발전 장치 모습./사진=공동취재단



이곳은 태양광 발전이 기본 전력원이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는 배터리에 저장해 사용한다. 햇빛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디젤 발전기도 갖췄다. 태양광 발전 규모는 약 38kW다. 에너지저장장치에는 납축전지를 사용한다. 바다 한가운데라는 특성상 화재 위험 등을 고려해 비교적 보수적인 방식으로 전력 시스템을 구성했다.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꾸는 담수화 설비도 있다. 사람이 장기간 머물러야 하는 공간인 만큼 역삼투 방식으로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어 사용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실험실이었다.

웨트랩(Wet Lab)에서는 기지 아래의 바닷물을 직접 끌어올려 분석한다. 해수는 순환 시스템을 따라 1차 챔버와 2차 챔버를 거친다. 1차 챔버에서는 수온과 염분은 물론 형광과 생지화학적 변수 등을 측정한다.

2차 챔버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바닷물 속에는 각종 이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분석 장비로 바로 보내면 관이 막힐 수 있다. 200㎛ 크기의 메시를 이용해 이물질을 걸러낸 뒤 분석에 필요한 물을 저장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해수를 채취해 생물·화학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시료는 산성화나 영양염 등 다양한 연구에 활용된다.

바닷물 속 작은 생명체를 관찰하는 장비도 눈에 띄었다. 플랑크톤 스코프다. 현미경을 통해야 볼 수 있던 플랑크톤을 실시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까지 접목해 물속에서 촬영된 플랑크톤의 종류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관측제어실에서 바다의 상태가 숫자로 쌓이고 있는 모습./사진=공동취재단



기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메인데크의 관측제어실에서는 바다의 상태가 숫자와 영상으로 끊임없이 쌓이고 있었다. 파도와 바람 등 각종 관측자료를 확인할 수 있고 기지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살핀다.

수중에는 카메라 2대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가 포착한 물고기를 통해 어떤 어종이 이 해역에 서식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AI를 접목해 어종을 판별하는 기술도 적용하고 있다.

동해의 어종 변화도 관심 대상이다.

정진용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이 과학기지 내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정진용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은 “아직은 이 해역의 물고기 정보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며 “자료가 더 쌓이면 기존에 서식하던 어종과 새롭게 유입되는 어종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최근 동해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과거보다 큰 참치가 잡히는 사례가 늘고 있고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물고기가 어민들의 손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민들이 낯선 물고기를 발견하면 기지 연구진에게 가져와 어떤 어종인지 확인을 요청하기도 한다.

바다 위 연구기지는 예상보다 훨씬 생활공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주방과 회의실은 물론 침실과 욕실도 갖췄다. 연구자들이 들어와 장비를 점검하고 연구를 수행하며 필요한 경우 며칠씩 머문다.

문제는 바다의 날씨다. 기상 상황이 나빠지면 예정했던 일정에 맞춰 육지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른 해양과학기지에서는 일주일 정도 체류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상이 급변해 체류 기간이 2주까지 늘어난 사례도 있다. 비상식량을 비롯해 장기간 체류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연구원들이 숙식을 직접 해결하는 공간./사진=공동취재단


기지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음식부터 설거지까지 연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연구시설인 만큼 연구뿐 아니라 생활 자체가 하나의 임무가 되는 셈이다.

기지 주변 바닷속에는 인공 구조물인 ARMS도 설치돼 있다. 작은 생물들이 붙어 살아가는 일종의 인공어초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연구진은 여기에 붙는 생물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해양 생물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핀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 새롭게 적용된 연구 시스템이다.

바다 위 한 지점에서만 관측하는 한계는 드론으로 보완한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정해진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동 드론을 활용해 넓은 공간의 해양 환경을 관측한다.

기지 밖에서는 상어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로 최근 다이버들이 ARMS 관련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주변을 맴도는 상어가 관찰되기도 했다고 한다. 망망대해 위 연구기지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인지 육지의 연구실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전경./사진=공동취재단



다시 배에 오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며 뒤돌아본 기지는 처음 봤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주황색 철골 구조물 위에 놓인 실험실과 관측실 그리고 각종 설비. 겉으로는 거친 파도를 견디는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서는 수온과 염분을 재고 플랑크톤을 관찰하고 물고기를 확인하며 바다의 변화를 데이터로 쌓고 있었다.

정 본부장은 해양과학기지가 단순히 관측 장비를 모아놓은 곳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알아가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오늘 날씨가 왜 이런지, 내일 바다와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데도 결국 바다에서 쌓이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후포항으로 돌아가는 배가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서 멀어질수록 주황색 구조물은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끊임없이 쌓이고 있는 숫자와 영상은 육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눈.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는 그렇게 동해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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